패랭이꽃
살아갈 날들보다
살아온 날이 더 힘들어
어떤 때는 자꾸만
패랭이꽃을 쳐다본다
한때는 많은 결심을 했었다
타인에 대해
또 나 자신에 대해
나를 힘들게 한 것은
바로 그런 결심들이었다
이상하지 않은가 삶이란 것은
자꾸만 눈에 밟히는
패랭이꽃
누군가에게 무엇으로 남길 바라지만
한편으론 잊혀지지 않는 게 두려워
자꾸만 쳐다보게 되는
패랭이꽃
--- p.23
파도가 바다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그 속에서 장난치는 어린 물고기 때문이다
바다가 육지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모래에 고개를 묻고 한 치 앞의 생을 꿈꾸는
늙은 해오라기 때문이다
--- p.12
잔 없이 건네지는 술
세상의 어떤 술에도 나는 더 이상 취하지 않는다
당신이 부어 준 그 술에
나는 이미
취해 있기에
--- p.72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살고싶다.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사랑하고싶다.
두눈박이 물고기처럼 세상을 살기 위해
평생을 두 마리가 함께 붙어 다녔다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사랑하고싶다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을 뿐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그렇게 살고싶다.
그 혼자 있음이 금방 들켜버리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싶다.
--- p.
얼마나 많은 날을 나는
내 안에서 방황했던가
8월의 해시계 아래서 나는
나 자신을 껴안고
질경이의 영토를 지나왔다
여름의 그토록 무덥고 긴 날에
--- p.27, --- '질경이' 중에서
신비의 꽃을 나는 꺾었다
밝음의 한가운데로 나는 걸어갔다
그리고 빛에 눈부셔 하며
심비의 꽃을 꺾었다
그순간 나는 보았다 갑자기
화원전체가 빛을 잃고
폐허로 변하는 것을
둘레의 꽃들은 생기를 잃은채 쓰러지고
내손에 들려진 신비의 꽃은
아주 평범한
시든 꽃에 지나지 않았다
--- p.18-19
소금이
바다의 상처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금이
바다의 아픔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상의 모든 식탁위에서
흰 눈 처럼
소금이 떨어져내릴 때
그것이 바다의 눈물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눈물이 있어
이 세상 모든 것이
맛을 낸다는 것을..
* 소금이라는 첫번째 시 입니다..
--- p.9
빈 둥지
고요한 숲
나뭇가지 위에 둥지가 하나 있다
어느 여름날 나는 그곳으로 다가갔다
발소리를 죽이고
가시나무에 찔리지 않게 조심하면서
한낮에 잎사귀가 넓은 식물들 곁을 지나
아무도 몰래 나무 밑으로 접근했다
새는 그때까지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듯했다
언젠가 입은 상처로
나무둥치에 생긴 흉터자국에 한쪽 발을 걸치고
나는 나무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숨을 죽인 해
한낮의 고요 속에
마치 금지된 열매를 다려는 사람처럼
손을 뻗어 둥지 밑 나뭇가지를 붙잡았다
한쪽 발로는
몸의 균형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나는 나뭇가지를 붙잡은 손에 힘을 주어
둥지가 있는 곳까지 몸을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고개를 빼고 재빨리
둥지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빈둥지였다
--- p.62-63
물안개...
세월이 이따금 나에게 묻는다
사랑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안개처럼
몇 겁의 인연이라는 것도
아주 쉽게 부서지더라
--- p.37
들 풀
들풀처럼 살라
마음 가득 바람이 부는
무한 허공의 세상
맨 몸으로 눕고
맨 몸으로 일어서라
함께 있되 홀로 존재하라
과거를 기억하지 말고
미래를 갈망하지 말고
오직 현재에 머물라
언제나 빈 마음으로 남으라
슬픔은 슬픔대로 오게 하고
기쁨은 기쁨대로 가게 하라
그리고는 침묵하라
다만 무언의 언어로
노래부르라
언제나 들풀처럼
무소유한 영혼으로 남으라
--- p.10
눈 물
슬픔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이 환하다
누가 등불 한 점을 켜놓은듯
노오란 민들레 몇 점 피어 있는 듯
슬픔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민들레밭에
내가 두 팔 벌리고
누워 있다
눈썹 끝에
민들레 풀씨 같은
눈물을 매달고서
눈을 깜박이면 그냥
날아갈 것만 같은
--- p.98
넌 알겠지
인간으로 태어난 슬픔을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을 사랑하는
무한 고독을
넌 알겠지
그냥 계속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그것만이 유일한 진실이라는 것을
--- p.59
구름은 비를 데리고
1
바람은 물을 데리고 자꾸만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새는 벌레를 데리고 자꾸만
어디로 가고자하는가
구름은 또 비를 데리고 자꾸만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나는 삶을 데리고 자꾸만
어디로 가고 있는가
2
달팽이는 저의 집을 데리고 자꾸만
어디로 가고가 하는가
백조는 언 호수를 데리고
자꾸만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어린 바닷게는 또 바다를 데리고 자꾸만
어디로 가고자하는가
아, 나는 나를 데리고 자꾸만
어디로 가고 있는가
(200자가 안되지만 그냥 올립니다. 시는 글자수로 세는게 아니라 마음을 얼마나 채워줄 수 있느냐에 따른거지요^.^)
--- p.78-79
고구마에게 바치는 노래
고구마여
고구마여
나는 이제 너를 먹는다
너는 여름 내내 땅 속에서 감정의 농도를 조절하며
태양의 초대를 점잖게 거절했다
두더지들은 너의 우아한 기품에 놀라
치아를 하얗게 닦지 않고서는
네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도 넌 네 몸의 일부분만을 허락했을 뿐
하지만 이제는 온 존재로
내 앞에 너 자신을 드러냈다
남자고구마여
여자고구마여
나는 두 손으로 너를 감싼다
네가 진흙 속에서 숨쉬고 있을 때
세상은 따뜻했다
난 네가 없으면 겨울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하다
쌀과 빵 만으로 목숨을 연명한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슬픈 일
어떻게 네가 그 많은 벌레들의 유혹을 물리치고
돌투성이의 흙을 당분으로 바꾸는지
그저 놀랍기만 하다
고구마여, 나는 너처럼 살고 싶다
삶에서 너처럼 오직 한 가지 대상만을 찾고 싶다
고구마여
우리가 외로울 때 먹었던 고구마여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무엇이고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결국 무의 세계로 돌아갈 것인가
그러나 내 앞에는 고구마가 있다
생명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고
넌 말하는 듯하다
모습은 바뀌어도 우리 모두는
언제까지나 우리 모두의 곁에 있는 것이라고
아무것도 죽지 않는다고
--- p.44-45---고구마에게 바치는 노래 中
<자살>
눈을 깜빡이는 것마저
숨을 쉬는 것마저
힘들 때가 있었다.
때로 저무는 시간을 바라보고 앉아
자살을 꿈꾸곤 했다.
한 때는 내가 나를 버리는 것이
내가 남을 버리는 것보다
덜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무가 흙위에 쓰러지듯
그렇게 쓰러지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당신 앞에
한 그루 나무처럼 서있다
<두 사람만의 아침> 중에서
나무들위에 아직 안개와 떠나지 않은 날개들이 있었다 다하지 못한 말들이 남아 있었다 오솔길 위로 염소와 구름들이 걸어왔지만 어떤 시간이 되었지만
떠날 각을 하지 않았다 그사람과 나는, 여기 이눈을 아프게 하는 것들 한때 한없이 투명하던 것들 기억 저편에 모여 지금 어떤 둥근세계를 이루고 있는 것들 그리고 한때 우리가 빛의 기둥들 사이에서 두팔로 껴안던 것들
말하지 않았다 그사람과 나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숲의 끝에 이르러 나는 뒤돌아본다
--- p.87 p.14-15
[소금]
소금이
바다의 상처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금이
바다의 아픔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상의 모든 식탁 위에서
흰 눈처럼
소금이 떨어져 내릴 때
그것이 바다의 눈물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눈물이 있어
이 세상 모든 것이
맛을 낸다는 것을
--- p.9
<자살>
눈을 깜빡이는 것마저
숨을 쉬는 것마저
힘들 때가 있었다.
때로 저무는 시간을 바라보고 앉아
자살을 꿈꾸곤 했다.
한 때는 내가 나를 버리는 것이
내가 남을 버리는 것보다
덜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무가 흙위에 쓰러지듯
그렇게 쓰러지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당신 앞에
한 그루 나무처럼 서있다
<두 사람만의 아침> 중에서
나무들위에 아직 안개와 떠나지 않은 날개들이 있었다 다하지 못한 말들이 남아 있었다 오솔길 위로 염소와 구름들이 걸어왔지만 어떤 시간이 되었지만
떠날 각을 하지 않았다 그사람과 나는, 여기 이눈을 아프게 하는 것들 한때 한없이 투명하던 것들 기억 저편에 모여 지금 어떤 둥근세계를 이루고 있는 것들 그리고 한때 우리가 빛의 기둥들 사이에서 두팔로 껴안던 것들
말하지 않았다 그사람과 나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숲의 끝에 이르러 나는 뒤돌아본다
--- p.87 p.14-15
[소금]
소금이
바다의 상처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금이
바다의 아픔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상의 모든 식탁 위에서
흰 눈처럼
소금이 떨어져 내릴 때
그것이 바다의 눈물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눈물이 있어
이 세상 모든 것이
맛을 낸다는 것을
--- p.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