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신라 진성여왕 등극 초, 세 인물의 청년시절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가은에서 상경한 핫바지 병정 견훤은 서해안에 출몰하는 해적을 토벌하면서 두각을 나타내지만 부패한 신라 군을 떠나 당시 전국에 할거하던 군웅의 하나가 된다. 궁예는 홀어머니와 떠돌면서 밑바닥 삶을 살던 중 신라 왕실의 핏줄이라는 자신의 출생 비밀을 알게 되고 세달사에 들어가 학문과 무예를 익힌다. 선종으로 개명한 그는 큰 꿈을 품고 북원의 양길 장군 아래서 자신의 세력을 정병으로 키워낸다. 아버지와 함께 해상무역에 종사하던 바닷가 소년 왕건은 선종의 세달사 시절 인연을 맺게 되고, 이후 선종이 한반도 북반의 맹주로 떠오르면서 그 휘하에 들어가 무장으로 입신양명하지만 장래를 약속했던 설리를 선종에게 뺏기는 아픔도 겪게 된다.
2권 서남해에서 일어선 견훤은 900년 완산성(전주)을 도읍으로 삼아 후백제를 건국한다. 견훤보다 일 년 늦게 나라를 연 선종은 선정을 베풀어 명군 소리를 듣지만 연호를 수시로 바꾸고 신라에 대한 지나친 증오심을 보인다. 왕건은 선종의 명에 따라 해군대장군이 되어 나주 정벌에 나서 대승을 거두고 시중이 되어 쇠둘레로 돌아온다. 하지만 외로운 선종은 은부라는 간신에게 휘둘리고 설상가상 사냥 길에 머리를 다쳐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는데 왕건은 견훤이 수복을 노리는 나주를 방어하기 위해 다시 먼 길을 떠난다. 나주장군이 된 왕건이 능산, 금언 등 선종의 신하였던 명장들의 보필을 받으며 야전의 명수 견훤과 팽팽하게 대적하고 있는 동안 쇠둘레는 선종의 병증과 더불어 점점 더 어둠으로 빠져든다.
3권 왕건이 처음 살림을 차린 여인 오씨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행동으로 왕건을 곤혹스럽게 하고, 쇠둘레로 진격할 것을 주장했던 죽마고우 종희는 임금의 경호실장격인 내군장군이 되어 상황을 통제해보려 하지만 다시 선종의 신임을 얻은 은부가 내군장군 자리를 꿰찬다. 은부 일당이 선종의 옛 신하들을 축출하는 가운데 비룡성룡으로 있던 종희도 연금상태에 처해지는데 왕후이자 사촌누이인 설리가 찾아와 선종과 태자가 은부 일당에게 갇혀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한편 은부는 왕건에게 시중을 제수하여 무장해제시킨 뒤 쇠둘레로 유인하려는 계책을 꾸미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종희는 천신만고 끝에 탈출하여 정주까지 올라온 왕건에게 알린다. 수적으로 열세인 왕건측은 궁리 끝에 능산이 나서 상황 파악차 쇠둘레로 먼저 떠난다.
4권 선종의 신하였던 능산의 옛 동지들에게 실상을 알려 협조를 얻은 왕건 일행은 드디어 쇠둘레로 진격하고 궁성에 갇혀 폐인이 되다시피 한 선종과 그 가족을 구해낸다. 죽음을 눈앞에 둔 왕후 설리는 종희와 함께 마지막 고향길을 떠나고 정신이 잠깐 든 선종은 양위를 결심하며 은부의 처리는 그 이후로 미뤄달라고 부탁하는데 결국 은부는 양위식 전날 선종을 추동하여 설리와 왕자들을 처참하게 살해한다. 이제 상황은 돌이킬 수 없게 되고 원로들의 추대를 받아 42세의 왕건은 대위에 오른다. 등극 초기 기반이 미약했던 왕건은 껍데기뿐인 신라에도 칭신을 마다치 않으며 평화를 위해서라면 누구에게라도 고개를 숙이는 겸손을 보인다. 항복해 오는 장군들은 그대로 머물게 하고 각 지방 호족들의 딸을 비로 맞아들이는 등 통합을 위한 행보를 멈추지 않는다. 한편 견훤은 고려에 붙은 신라를 징치함으로써 왕건을 유인하는 전략을 구상한다.
5권 왕건은 독립왕국 명주의 존재 등 천하통일을 위해 해결해야 할 난제로 머리가 아프다. 그 와중에도 북방을 회복하기 위해 서경을 건설하는 등 긴 안목으로 정사를 꾸려나가는데 견훤과의 길고 긴 전쟁이 마침내 시작된다. 견훤과 같은 전법을 써서는 당할 수 없다는 주위 사람들의 충고를 새기지 못한 왕건은 몇 차례 크게 패한 끝에 견훤을 상보(아버지)로 모시고 서로 인질을 내어 화의를 맺는다. 그러나 견훤측 인질의 변사로 두 나라 간 화평은 깨지고 견훤이 신라 금성을 쳐서 경애왕을 죽이고 김부를 경순왕으로 앉혔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신숭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친정에 나선 왕건은 결국 부하들을 잃고 간신히 살아 돌아오는데 뜻밖에도 견훤의 후백제는 왕위 계승 갈등으로 내부 분열이 일어난다. 아들들에게 내쫓긴 견훤은 왕건에게 몸을 의탁하고 자신의 백성들을 보호하겠다는 생각으로 왕건의 통일전쟁에 협력한다. 후백제 멸망 직전 경순왕이 나라를 들어 바치니 만 47년에 이르는 난세는 고려태조 왕건에 의해 끝나고 왕건은 발해의 멸망으로 북방 개척의 꿈이 무산된 것을 아쉬워하며 67년의 생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