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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드라마로 읽는 성경 신약 편 1부
eBook

역사 드라마로 읽는 성경 신약 편 1부

: 주전 331~주전 4년

[ EPU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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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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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6년 07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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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EPUB(DRM) | 21.94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14.5만자, 약 4.3만 단어, A4 약 91쪽?
ISBN13 9788953125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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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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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원정을 마친 이듬해인 주전 331년, 알렉산더는 겨울을 가사에서 보냈는데, 이때 성지 이스라엘 역사와 관련된 두 개의 재미난 에피소드가 전해져 온다.

첫 번째는 사마리아인들과 관련된 에피소드다. 사마리아인들은 알렉산더가 7개월간 두로를 포위 공격하고 있을 때 자진 항복의 뜻으로 군사 8,000명을 지원한 바 있다. 당시 사마리아 총독은 산발랏(느헤미야서에 나오는 산발랏과는 동명이인)이었는데, 이 일로 알렉산더의 환심을 산 산발랏은 사마리아의 그리심 산에 성전을 건축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산발랏에게는 므낫세라는 이름의 사위가 있었는데, 그는 당시 예루살렘의 대제사장인 얏두아(구약성경에 등장하는 마지막 대제사장, 느 12:11)의 동생이었다. 므낫세는 이방인인 사마리아 총독의 딸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예루살렘 성전에서 더 이상 직무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장인을 졸라 사마리아 지방에 자신이 직무할 수 있는 자체적인 성전을 지어 달라고 떼를 썼고, 산발랏은 알렉산더의 허락을 받아 그리심 산에 사마리아 성전을 세웠다. 하지만 사마리아인들은 이후 변심해 알렉산더가 파견한 총독을 산 채로 불에 태워 죽임으로써 알렉산더를 격노케 했다. 이에 알렉산더는 군사를 보내 사마리아를 파괴하고 그곳에 마케도니아의 퇴역 군인들을 정착시켰다. 이때 마케도니아인들은 세겜을 거쳐 여리고까지 깊숙이 침투해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는 유대인들과 관련된 에피소드다. 1세기 당시 유대 역사가인 요세푸스는 가사에 있던 알렉산더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대제사장 얏두아를 만났다는 어메이징한 기사를 전하고 있다. 사마리아인들이 두로를 포위 공격하던 알렉산더에게 자진 항복한 것과 달리 유대인들은 계속 페르시아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를 밝혔기 때문에 대제사장 얏두아는 알렉산더가 예루살렘으로 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공황 상태에 빠졌다. 하지만 얏두아는 담대하게 대제사장복을 입고 성대한 행렬과 함께 알렉산더를 맞으러 나갔다. 이때 놀라운, 그리고 믿기 어려운 일이 그의 눈앞에서 펼쳐졌다. 알렉산더가 대제사장 얏두아를 보자마자 유대인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얏두아와 함께 성전에 들어가서 희생제사를 드린 것이다. 알렉산더의 측근들이 그의 행동을 기이하게 여기자 알렉산더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내가 마케도니아에서 어떻게 하면 세계 정복을 이룰 수 있을까 궁리하던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저 얏두아 대제사장과 똑같은 옷을 입은 노인을 만났소. 그 노인은 자신이 도와줄 테니 지체하지 말고 세계 정복의 뜻을 이루라고 격려해 주었지!”
이 에피소드는 알렉산더의 일대기를 다룬 그리스의 역사책에는 나오지 않고 유대 역사가인 요세푸스의 기록에만 나온다. 그런 탓에 알렉산더와 관련된 요세푸스의 전승은 한 번쯤 걸러서 이해하는 게 좋을 듯싶다. --- p. 39-41

제2막: 폼페이우스의 해적 소탕 작전
주전 1세기 초반의 혼란스런 상황에서 등장한 폼페이우스는 자신의 꼭두각시 노릇을 해오던 호민관 가비니우스를 내세워 민회에서 해적 소탕안을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시킨다(주전 67년) . 통과된 해적 소탕안의 핵심은 앞으로 임명될 해적 소탕 총사령관에게 국가 로마의 1년 예산 중 절반이 넘는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고 3년 이상의 절대 지휘권을 부여한다는 것이었다. 공화정 로마에서 최고 통치자인 집정관의 임기는 1년에 불과했다. 전쟁과 같은 국가 비상사태에만 임시로 선출돼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독재관의 임기도 고작 6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그런데 로마에서 선출된 독재관이 이탈리아 본토를 넘어 그 바깥 영역까지 실력 행사를 하고, 그것도 모자라 국가 예산의 절반이 넘는 자금을 임의로 주무르는 것과 함께 무려 3년의 임기를 보장해 준다는 것이 이때 통과된 해적 소탕안의 획기적인 골자였다. 폼페이우스를 총사령관으로 하는 해적 소탕안의 통과는 말 그대로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는데, 이것은 당시 해적들의 문제가 로마에 얼마나 심각한 골칫거리였는가를 보여 준다.
폼페이우스의 해적 소탕 작전은 가히 군사 작전의 교과서에 실려도 좋을 만큼 치밀하고도 용의주도하게 펼쳐졌다. 폼페이우스는 지중해를 크게 동부와 서부의 두 개 권역으로 나누어 먼저 서부 지중해의 해적들을 소탕했다. 그리고 마치 어부가 그물을 당기듯 남은 해적들을 동부 지중해로 몰아넣었다. 이렇게 해서 서부 지중해의 해적 소탕에 40일, 해적의 소굴인 길리기아를 포함하는 동부 지중해의 해적 소탕에 49일, 합쳐서 불과 89일 만에 작전을 완수했다.
이로써 주전 67년 여름 그동안 신출귀몰하며 지중해를 주름잡던 해적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자취를 감추었다. 폼페이우스의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해적들에게 신전의 보물까지 분탕질당하던 그리스의 여러 폴리스에서는 폼페이우스를 신으로 추앙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당시 폼페이우스와 관련해서 유행하던 말이 있다.
“폼페이우스, 내가 제일 잘나가!” --- p. 150-151

카이사르는 싸움이 종결된 이듬해 3월 말부터 두 달 동안이나 애인 클레오파트라와 나일 강 유람을 즐기며 휴가를 보냈고, 같은 시간에 도미티우스는 카이사르를 기다리며 시리아의 안디옥에서 초조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도미티우스가 보낸 급보를 받은 것은 카이사르가 휴가를 마치고 알렉산드리아로 돌아오고 난 후였고, 그가 원군을 이끌고 안디옥에 나타난 것은 6월이 되어서였다. 이 여섯 달 동안 파르나케스는 소아시아의 절반가량을 야금야금 집어삼키고 있었다.
급보를 전해 받은 카이사르는 펠루시움, 아스겔론, 욥바, 도라 등 동부 지중해 해변에 있는 항구 도시들을 거쳐 시리아로 향했다. 카이사르의 배가 돌레마이 항구에 잠시 정박했을 때 안티파터, 힐카누스 2세, 안티고누스 등 유대 속주를 대표하는 유력 인사들이 카이사르를 찾았다. 먼저 아리스토불루스 2세의 아들 중 유일한 생존자인 안티고누스가 카이사르 앞에서 자신의 억울한 심정을 일목요연하게 호소했다.
첫째, 자신의 부친인 아리스토불루스 2세와 형인 알렉산더가 죽은 것은 단지 폼페이우스와 적대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그리고 폼페이우스 역시 카이사르의 적이었음을 상기시켰다. 곧 폼페이우스라는 공동의 적을 가진 자신과 카이사르는 친구가 아니냐는 논리였다.
둘째, 로마가 폼페이우스를 통해 유대 국가의 내정에 개입하기 전까지만 해도 유대 국가의 합법적인 왕은 자신의 아버지였다는 점을 피력했다.
셋째, 알렉산드리아 전쟁에 안티파터와 힐카누스 2세가 참전해서 카이사르를 도운 것은 이전에 폼페이우스와 맺은 돈독한 관계로 인해 카이사르에게서 화를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한 것이지 결코 카이사르에 대한 충성심에서 한 것이 아님을 지적했다.
안티고누스의 항변이 끝나자 곧 안티파터가 카이사르 앞에 섰다. 그는 긴 말보다 웃통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몸에 난 수많은 상처를 내보이면서 카이사르의 감정에 호소했다.
“카이사르에 대한 저의 충성심은 굳이 말로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의 몸에 난 이 수많은 상처들이 소리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고소하고 있는 저 안티고누스의 아버지와 형은 이미 로마에 대항해 세 차례나 반역을 일으킨 전력이 있습니다. 만약 안티고누스가 왕이 된다면 그는 아버지의 피를 받아 로마에 대항해 다시 한 번 반역을 일으킬 것이 분명합니다.”
양쪽의 호소를 들은 카이사르는 안티파터의 손을 들어 주었다. 사실 듣기 전부터 카이사르의 마음은 이미 안티파터 쪽으로 기울었을 것이다. 안티파터는 알렉산드리아 전투에서 카이사르를 도운 결정적인 공훈이 있었고, 안티고누스 집안과 달리 로마에 대항해 반역을 일으킨 전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안티파터의 호소에 깊은 감명을 받은 카이사르는 그에게 로마 시민권을 주고 이전에 유대 속주의 ‘행정관’이던 그의 직위를 한 단계 올려 ‘행정장관’으로 임명했다. ---p. 225-227

헤롯, 영욕의 세월을 뒤로한 채 마침내 눈을 감다
안티파터를 처형한 후 헤롯은 유언장을 다시 고쳐 썼다(여섯 번째 유언) . 안티파스에게 왕국을 통째로 주려던 애초의 마음을 고쳐먹고 안티파스에게는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만 떼어 주고 왕국은 아켈라우스에게 주기로 한 것이다. 헤롯은 또한 가울라니티스, 트라코니티스와 바니아스 지역은 빌립에게 주었다. 이렇게 유대 왕국은 마지막까지 정쟁에 휩싸이지 않은 헤롯의 세 아들이 어부지리로 차지하게 되었다. 헤롯은 끝까지 자신을 배신하지 않은 누이동생 살로메에게 현금 50만 드라크마와 함께 얌니아, 아스돗, 파사엘리스 지역을 별도로 떼어 주었다. 이렇게 해서 야만스럽고 의(義)와는 완전히 담을 쌓은 인물이던 헤롯은 34년간의 장기 집권을 끝으로 외롭고 비참한 종말을 맞게 되었다.
유대 역사에서 최고의 격변기에 태어난 헤롯은 분명 억수로 운이 좋은 인물임에 틀림없다. 일개 평민으로 태어나 왕의 지위까지 올랐고,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며 천수를 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정치적 행운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정은 왕위 계승 문제를 둘러싸고 불화가 끊이지 않았다. 사랑하는 아내인 마리암네를 처형한 후부터 헤롯은 후회와 자괴감으로 인해 반쯤 미친 상태로 살았다고 보는 것이 옳다.
살로메와 알렉사스는 왕이 죽었다는 소식이 알려지기 전에 경기장에 갇혀 있던 유대 유력 인사들을 모두 풀어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각자 고향에 가서 열심히 일하시오. 그것이 바로 나라를 위하는 일이오. 이것이 헤롯 왕의 명령임도 명심하도록 하시오.”
시간이 지나면서 왕이 죽었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져 나갔고, 살로메와 알렉사스는 병사들을 여리고의 경기장에 집합시킨 후 헤롯의 유언장을 읽어 주었다.
“그대들이 내게 보인 충성과 호의에 감사하노라. 내가 후계자로 아켈라우스를 임명했으니 그대들은 아켈라우스에게도 변함없는 충성과 호의를 바치도록 하라.”
이에 경기장에 모인 병사들은 “아켈라우스 왕, 만세”를 연호했다. 헤롯의 장례식은 참으로 성대하게 치러졌다. 관은 각종 진귀한 보석이 박힌 금으로 씌워졌고 시신은 자주색 천으로 감쌌다. 헤롯의 머리에는 금 왕관이 씌워졌고 오른손에는 홀이 쥐어졌다. 헤롯의 시체는 임종 직전에 남긴 유언에 따라 여리고에서 가까운 헤로디움 요새에 묻혔다. 이로써 한 시절을 풍미하던 헤롯은 역사의 뒷안길로 사라지고 아켈라우스를 중심으로 한 헤롯의 세 아들이 통치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p. 328-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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