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위기 상황의 주된 원인이 기업, 가계 등 각 경제 주체들의 투자·소비 심리가 위축된 것에 있다고 가정해보자. 즉 기업, 가계 등 각 경제 주체들이 ‘실물경제’ 속에서 투자하고 소비할 동기를 발견하지 못했고, 경제활동이 부진한 탓에 경기가 침체에 빠졌다는 것이다. 이 같은 분석 하에서는 세계 경제가 언젠가는 성장세로 돌아설 것이므로 기업과 가계의 투자, 소비 심리를 부추겨 더욱 왕성한 경제활동을 유도해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가 먼저 솔선수범하여 빚을 내서라도 각종 국가 정책(가령 과도한 복지 정책, 대규모 토목공사 등)을 벌임으로써 시중에 인위적으로 돈을 풀어 각 경제 주체들이 ‘실물경제’ 속에서 소비하고 투자할 동기를 부여해야 하며,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최대한 낮추고 대규모 양적완화를 통해 시중 통화량을 늘림으로써 기업과 가계가 쉽게 돈을 빌려 소비하고 투자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 대안을 지지하는 전문가들은 과도한 재정적자나 적극적인 통화정책도 단기적으로는 오히려 미덕일 수 있으며, 중장기적으로도 일단 경제 성장세가 회복되기만 하면 가계와 기업으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걷어 정부 부채를 청산할 수 있으므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과도한 빚을 내서라도 돈을 풀어 이를 국가 정책에 적극 투자함으로써 경제 전체의 성장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얻어진 수익을 처음의 빚을 갚는 데 사용한다면 모든 문제가 선순환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입장은 그동안 각국 정부, 중앙은행, 세계 주류 언론에서 크게 지지받아왔다. 세계 주요 국가들의 경제·재정·통화 정책에 그대로 반영되었으며, 현재 세계 경제위기 상황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마련하는 데 주요한 이론적 토대를 이루었다.
그러나 경기가 침체될 때마다 써왔던 재정적자 정책, 금리 인하와 양적완화는 결과적으로 실물경제 발전에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 채 오히려 금융경제만 살찌워, 금융경제와 실물경제 사이의 괴리감만 늘리는 결과를 낳았다. 분명 그들의 진단에는 문제가 있었고, 오진(誤診)에 기댄 처방전 역시 치명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의 잘못된 처방이 결과적으로 환자(세계 경제)의 병세(경제위기)를 더욱 악화시켜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 1장. 이번 위기는 단순 감기가 아니다
아시아권 국가들의 급격한 수출 증가는 미국, 유럽 등 선진국으로서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무역적자 폭이 나날이 늘어남에도 잘나가던 시절의 생활수준을 포기하지 못한 국민들 때문에 이들 정부는 무리하게 복지 규모를 늘려갔고, 이로 인해 정부의 재정적자 폭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수출 부진과 수입 급증에 따른 무역적자와 무리한 복지 지출에 따른 재정적자, 이른바 ‘쌍둥이 적자’가 발생한 것이다. 1970년대 이후 선진국들의 경제·재정·통화 정책은 결국 이 쌍둥이 적자를 어떻게 해결할지의 문제로 귀결되었다.
만약 미국, 유럽 등 선진국들이 이러한 경제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자 했다면 근본적인 산업 경쟁력 강화, 기술개발, 재정적자 폭 축소 등을 통해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꾀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들 국가 지도자들은 자신의 정치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쉽고 달콤한 길’을 택했다. 그들은 국내 수출산업 부진에 따른 공백을 금융산업으로 대체했고, 복지 예산 규모는 무계획적으로 늘어만 갔다.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미국과 유럽은 이후 금융산업의 거품에 기댄 불안한 번영을 누리다 2008년 미국 부동산 위기로 거품이 터지며 결국 나라 경제 전체가 주저앉고 말았다. 이들의 사례는 근본적인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지 않는 경제정책이 얼마나 허망한 결과를 낳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 2장. 알려지지 않은 위험, 앞으로 닥칠 위기
2013년 중국의 새로운 정치 지도자 시진핑(習近平)이 등장하며 중국 경제는 크게 달라지기 시작한다. 특히 중국 경제의 수장이 된 리커창(李克强)이 내놓은 일련의 경제정책은 전 세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리커창의 이름을 따 리커노믹스(Likonomics)로 이름 붙은 중국의 새 경제정책은, 미래 중국을 위한 근본적인 경제 개혁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현재의 경제성장률 둔화는 용인하겠다는 것을 주된 취지로 한다.
리커노믹스는 3가지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인위적인 경기 부양책을 동원하지 않겠다는 것(No Stimulus), 중국 정부, 기업, 가계의 부채를 축소하겠다는 것(Deleverage), 지속적이고 근본적인 구조개혁을 단행하겠다는 것(Structural Reform)이 바로 그것이다. 그동안의 양적 성장에서 벗어나 구조와 체질을 바꾸는 질적 개선에 초점을 맞춘 리커노믹스는 수출·제조업·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에서 벗어나 내수·서비스업·중소기업 중심의 경제성장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 정부는 월 매출 2만 위안 미만 영세 중소기업들의 거래세 및 부가세를 일시 면제해주고 개인이 가전제품을 구입할 때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중소기업 성장과 내수 진작을 위한 조세 정책과 보조금 정책을 유효 적절히 사용하고 있다. 또한 그동안 상대적으로 낙후됐던 중국 중서부 지역에 대한 집중적인 개발투자, 도농 간 빈부격차 해소 방안 등을 내놓으며 중국 경제의 시한폭탄과도 같았던 극심한 소득 불균형을 극복하려는 의지도 피력하고 있다.
실제 이 같은 정책은 시행한 지 불과 몇 개월 지나지 않았음에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2013년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8월 소매 판매는 전년보다 13.4% 늘어 중국 내수시장이 상당히 활성화되었음을 보여준다. 리커창이 근래 영국〈파이낸셜타임스〉기고문을 통해 밝힌 담화에 따르더라도 리커노믹스 출범 이후 중국 연간 GDP는 7.6%, 실업률은 5%, 인플레이션은 2.4%로 예상되어 주요 경제 지표가 중국 정부가 관리 가능한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순항 중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앞으로 리커노믹스는 여러모로 적잖은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우선 예전과 같은 두 자리 수 경제성장률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을 것이며, 과거 제조업 중심의 ‘세계 하청공장’의 위상도 크게 흔들릴 것이다. 혹독한 구조조정과 근본적인 규제 혁신 속에서 이미 과잉투자 상태에 놓인 기업들이 무너지고, 정부의 비호 하에 있던 많은 국영기업들이 개혁의 칼날에 찢겨나갈 것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중국 내 과열되었던 부동산 시장과 물가는 점차 안정을 되찾아가고 내수를 중심으로 한, 고용 효과 높은 서비스업이 성숙하면서 실업률은 크게 개선될 것이다. 고용이 늘고 가계 소득이 늘면 가계의 소비·투자 의욕이 왕성해질 것이며, 가계 부채가 줄고 저축이 늘어나 기업 대출과 국가 재정 문제 또한 한결 숨통이 트일 것이다. 무엇보다 그동안 중국 사회의 고질과도 같았던 극심한 빈부격차, 사회갈등이 해소되어 중국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단합된 힘으로 모두가 더불어 살 만한 공동체를 꾸려나갈 것이라 기대된다.
― 3장. ‘깡통 걷어차기’는 어떻게 세계 경제를 망쳐왔는가
최근 기업 경영의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는 준법경영, 윤리경영, 사회공헌(CSR)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새로운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주주 이익 극대화 이론에 매몰된 기업들에게 준법경영, 윤리경영, CSR은 성가신 문제이겠지만 오늘날 이는 분명한 주류적 기업문화가 되었다. 특히 최근에는 불법을 자행하는 기업에 대한 대중의 감시와 비난이 쇄도하고 실질적인 타격을 주는 상황이 왕왕 발견되면서, 이를 도외시하는 기업들은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몇 가지 대표적인 예를 들어보자. 우선 2001년 미국을 뒤흔든 엔론(Enron)사의 부정회계 사건을 들 수 있다. 1990년대 미국 에너지 시장의 규제 완화 바람을 타고 에너지 유통 업체에서 에너지 중개 업체로 급성장한 미국의 엔론사는 업계에 등장한 지 15년 만에 1,700%의 초고속 성장, 매출액 1,010억 달러, 자산 473억 달러를 기록하며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꼽힘과 동시에 미국 7대 기업에 등극했다. 엔론사는 기업이 몰락하던 2001년까지만 해도 6년 연속 ‘미국인들이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으로 선정되었다. 창업 당시 엔론사는 유능하고 총명한 인재들로 가득한 똑똑한 에너지 기업이었다. 하지만 탄탄한 재무구조와 뛰어난 기술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해이, 장부조작, 분식회계, 정경유착으로 인해 사회적 정직과 신용을 잃고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나이키는 1997년 한때 미국 운동화 시장의 35.3%까지 점유율을 높여가다 제3세계 국가 아동 노동 착취 논란에 휘말려 1년 만에 미국 내 운동화 시장점유율이 5% 이상 하락하며 창립 이래 최대 위기에 몰렸다. 1996년 6월〈라이프〉지에 나이키의 축구공을 바느질하는 12세 소년의 사진과 함께 파키스탄 아동 노동 착취에 관한 기사가 실리자 각 매체가 이를 대서특필했다. 미국 내 시민단체, 노동조합, NGO 등은 나이키 불매운동에 적극 나섰다. 이 탓에 세계적으로 나이키의 브랜드 이미지가 곤두박질치자 나이키는 사회공헌 전문가인 마리아 메이텔 부사장을 전격 영입했다. 2000년 기업윤리 부서 신설, 세계 각국 하청업체들에 대한 모니터링 강화, 개발도상국의 노동환경과 청년 근로자들의 교육훈련환경 개선 활동을 하는 이들을 위한 국제 연대를 공동 창립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나서야 간신히 예전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 4장. 한국 경제, 쓴 약을 삼켜라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