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서부 어딘가에는 터너가 떠날 만한 미지의 세계가 정말로 존재할지 모른다. 목사의 아들로 산다는 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눈곱만큼도. 터너는 떠나고 싶었다. 여기에서는 목사의 아들로 산다는 게 중요하기 이를 데 없으며, 그럼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살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벌써부터 터너의 영혼을 쪼아 댔기 때문이다. --- p.7
고래는 기다려 주었다. 터너는 고래의 눈을 보았고, 둘은 서로를 마주보았다. 그들은 서로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은빛 달 아래에서 바다 위를 뒹구는 두 영혼이 서로의 눈을 응시했다. 터너는 지금껏 가졌던 그 어떤 소망보다 더 큰 소망으로, 자신의 영혼을 떨게 만드는 고래의 눈 속에 담긴 의미를 알고 싶었다. --- p.136
“터너, 책은 불이 될 수도 있다.” 목사가 말했다. “불이요?” “그래, 불. 책은 네 마음에 불을 붙일 수 있다. 책이 전달하는 생각은 불쏘시개가 되고, 문학성은 성냥이 되기 때문이지.” “종의 기원.” 터너가 소리 내어 책 제목을 읽었다. “이게 불이에요?” --- p.202
그 순간 터너는 알았다. 터너는 알았다. 아버지의 눈과 고래의 눈에 담긴 의미를. 세상은 돌고 빠르게 회전하며, 조수는 흘러 들어왔다가 흘러 나가니, 이 세상에는 모든 진화된 형태들 가운데 서로를 똑바로 바라보는 두 영혼만큼 더 아름답고 더 경이로운 것은 없다. 그리고 그 두 영혼이 헤어지는 것만큼 비참하고 슬픔을 주는 일도 없다. 이 세상 모든 것은 함께함에 크나큰 기쁨이 있으며, 서로를 잃음에 크나큰 비탄이 있음을 깨달았다. 터너는 말라가를 잃었다. 그래서 터너는 울었다. 고래에게서 손을 떼지 않은 채 고래의 눈을 응시하며 흐느껴 울었다. 허드 할머니 때문에 울었고, 콥 할머니 때문에 울었으며, 아버지와 리지 브라이트 때문에 울었다. 탁 트인 바다에서 눈에는 푸른 땅을 담고, 손에는 푸른 바다를 안은 채 터너는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