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잠 김미희는 부산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동국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환경 디자이너로 활약하고 있다. 자신이 ‘의식 있는 꽃과 나무들이 자라는 아름다운 언덕(미잠 美岑)’일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그녀는 항상 자연과 가까이 하면서 꽃과 나무와 함께 살고 있다. 이 책 『그대로 정원』은 그녀의 첫 번째 책이다.
사진 : 장나무별
장나무별은 부산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일본에서 보냈으며 부산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구 미래대학 원예디자인과 강의 전담 교수로 활약하고 있다. 또 한국 원예 치료 복지 협회 울산지부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이곳은 부산이라고 해도 고지대라 벚꽃이 다른 곳보다 늦게 피는 편이다. 진해의 군항제가 끝나고 경주 보문단지의 벚꽃이 필 무렵이면 우리 집의 벚나무들이 처음에는 팝콘처럼 하나둘 피기 시작한다. 급기야는 뻥튀기 장사가 하얀 쌀 튀밥을 뻥하고 튀겨내듯 확 피어나 온 마을을 꽃 속에 파묻어 버린다. 가만히 벚꽃 아래에 서서 하늘을 쳐다보면 꽃잎들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왜 그렇게도 푸르고 아름다운지 가슴이 두근거려서 누군가에게 들킬까 사방을 둘러보기까지 하였다. 철학자 헤겔은 자연을 인공물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이 착각이라고 말했지만 정말 그럴까? --- p.26
조촐한 차실 앞에는 작은 물 항아리가 놓여 있다. 수련도 심고 부레옥잠도 넣어두었더니 오늘 아침에 수련이 앙증맞게 꽃을 피워 정말 사랑스럽다. 그런데 모기들이 알을 낳아 장구벌레들이 많이 생겨 자주 물을 교환해 주지 않으면 장구벌레 천지가 된다. 그래서 적어도 이삼일에 한 번씩 물을 갈아주고 가꾸다 보니 어느 사이에 잎이 무성해지고 개구리밥도 많아져 물을 갈아주기가 점차 어려워졌다. 걱정만 하다가 오늘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렇게 많던 장구벌레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자세히 보니 참외씨만 한 올챙이들이 헤엄을 치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작은 올챙이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너무나 신기하였다. 언제부터인가 청개구리가 턱 자리 잡아 살고 있었으니 이건 분명 청개구리 올챙이일 것이다. 오후 내내 올챙이를 보고 있다가 해가 서산 넘어가는 줄도 몰랐다. --- p.65
지난밤 바람 소리 간간이 들리더니 새벽에는 그 바람 소리가 갑자기 커져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나 창밖을 내다보니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바람이 잦아들자 풀벌레 소리가 아침을 연다. 오늘은 가을맞이 하려고 들로 나가 보았다. 들녘은 곡식이 풍성하게 무르익고 길가에는 꽃 향유와 물 억새가 한들거리며 춤을 추고 있다. 귀엽게 생긴 자주강아지풀과 오죽 며느리가 미워서 그 이름이 붙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 며느리밑씻개 그리고 꽃잎이 봉선화 꽃잎을 닮고 씨방을 손대면 씨앗이 사방으로 터져버리는 물봉선화도 마냥 이 가을이 좋다며 야단이다. 밭에는 가을 무, 배추가 줄을 나란히 맞추고 자라는 모습에서 밭주인의 정성이 느껴지고 들깨는 아직 하얀 꽃들을 매달고 있다. 메밀밭은 하얀 눈꽃으로 덮어 온 세상을 은세계로 만들고 있었다. 문득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 생각나서 이 가을에는 봉평 장에라도 한번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p.152~153
그 화려했던 꽃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정원에는 나무들도 벌거벗고 훤한 속살을 그대로 보이고 있다. 봄부터 그렇게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느라 수고를 했으니 이 긴 겨울은 그들을 위로하는 축제이며 다음 해를 위하여 자연이 잠깐 숨을 고르는 시간이다. 겨울 동안 정원이 잠들어 한가해지면 그림을 그리거나 옷을 만들고 악기 연습을 하며 내년 봄을 기다린다. 내가 꽃을 사랑하고 정원 가꾸기를 즐겨하는 것은 어쩌면 이 겨울의 적막함을 좋아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p.196
새해를 맞이하고 나흘째가 되는 오전 10시쯤 창문 앞 오디나무에는 딱새 두 마리가 서로 희롱을 하며 놀고 있었다. 매화는 작년 11월부터 꽃 봉우리를 터뜨릴 기색이었지만 아직 소식이 없다. 아마 이번 추위가 지나고 나면 며칠 내 꽃잎을 살짝 열 것 같다. 바람에 소나무 가지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있자니 몸이 저려 운동이라도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벌떡 일어나 어깨를 흔들어 보았다. 지난여름 장마 때 소실된 밭을 보수하려고 며칠간 무리하여 흙을 나르고 돌을 쌓고 하였더니 어깨가 아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는데 이제 좀 가뿐해진 것 같았다. 차 한 잔 하고 어깨 운동 한 번 하고 또 한 잔하고 어깨 운동을 해보았다. 오디나무에서 놀던 딱새는 보이지 않고 어디서 날아왔는지 때까치 한 마리가 나를 훔쳐보고 있다. 매섭기만 한 겨울 바람도 얼마 있지 않으면 그 기운을 잃고 이곳 그대로 정원을 방문하여 매화꽃을 피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