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간여행에서 너희는 고구려 국내성으로 가게 될 것이다. 국내성은 고구려의 두 번째 도읍이고, 가장 오랫동안 고구려의 도읍이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고구려의 유적들도 그만큼 많이 남아 있지. 그중에서도 너희들이 유심히 보아야 할 것은 바로 무덤이다.” --- pp.14-15
아이의 이름을 듣는 순간 지오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습니다. 담덕이라면 넓은 영토를 확보하여 고구려를 대제국으로 이끌었던 광개토대왕의 어릴 적 이름이었으니까요. ‘내가 지금 광개토대왕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건가?’ 쉽게 믿기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시간여행 중이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 p.42
은솔이는 당당하게 대답을 하고 집 안 곳곳을 샅샅이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별채 앞에서 조금 특이한 옷을 입고 있는 한 무리의 여자들을 발견했습니다. 지금까지 보았던 고구려의 여자들은 은솔이처럼 길고 치렁치렁한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그곳의 여자들은 통이 넓고 편해 보이는 바지를 입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검은색 물방울무늬까지 은솔이의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 p.57
담덕이 애써 큰 소리로 웃었습니다. 그러더니 이내 의젓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지요. “왕이 되면 최고의 권세를 누릴 수가 있다. 세상 모두가 내 아래에 고개를 숙일 것이고, 나의 눈치를 살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을 다 누리기 위해서는 내가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그건 바로 이 나라를, 우리 백성을 잘 지키는 것이다.”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나는 고구려를 그 어떤 나라보다 강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백성들에게는 더 넓은 땅을 주어 풍요롭게 살 수 있게 할 것이다. 그 누구도 배고프거나 힘들지 않도록 평안한 나라를 만들 것이다.” --- p.97
“정말, 우리 집이랑 크기가 비슷한 것 같은데?” 은솔이와 찬이가 재잘거리며 방을 들락거렸습니다. “허허허, 여기가 바로 집이다.” 국상 어른이 그런 아이들을 보며 큰 소리로 웃었지요. “네에? 여긴 무덤이잖아요. 집이 아니라….” “무덤이 무엇이냐? 죽은 자들이 사는 집이 아니냐?” 아이들이 알쏭달쏭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왜? 죽은 자들이 산다고 하니까 이상하더냐?”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지요. “사람이 죽으면 그다음 세상에서도 살 집이 필요하지 않겠느냐? 죽는다는 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이승에서 저승으로 옮겨 가는 것일 뿐이다.” --- pp.102-103
마노가 한참을 머뭇거리자 감독관이 답답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습니다. “저는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돌 옮기는 일 말고, 무덤 벽에 그림 그리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으으읍!” 감독관은 인상을 찌푸리며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소리를 냈습니다. “정말 오래 전부터 마음속에 품었던 꿈입니다. 되지 않을 걸 알면서도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땅바닥에 주저앉아 그림을 그렸습니다. 당장 그림을 그리지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화공 어르신의 잔심부름이라도 하겠습니다. 제 그림을 보여드릴 수 있는 기회라도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