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감동적인. 입은 크게 벌어졌고 피로 범벅이 된 몸은 뜨겁게 달아오른다. 몸뚱이 안에서는 거센 소용돌이가 일고 있다. 그렇게 속과 겉이 바뀌어버린다. 너무도 빨리 끝이 나버렸다. 그녀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 정상적인 반응도, 흔히 있는 일도 아니다. 그녀는 옷을 조금 벗어본다. 아니, 꽤 많이 벗어젖힌다. 필요 이상으로 많이. 그리고 그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벌인다. 칼이 다시 꿈틀거린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는다. 그녀는 이 부분을 좋아하지 않는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물론 과거에는 지금보다 훨씬 심했다. 마침내 그녀가 이를 드러내고 허연 배에 박아 넣는다. 있는 힘껏 물어뜯고 나서 늘 그러듯이 속삭인다. “이건 게임일 뿐이야.” --- p.15
런던은 리버스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곳이었다. 어차피 자주 찾을 일도 없었지만. 그는 관광이 아닌, 업무차 온 것이었다. 로디언과 보더스 경찰을 대표해서. 진중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의 보스는 리버스를 떠나보내며 신신당부했다. “일을 망치지 마, 존.” 그는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었다. 특별히 할 일은 없겠지만. 깨끗한 셔츠와 넥타이, 공들여 닦은 구두와 고급 재킷으로 치장하고 다니는 것쯤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 “티켓을 보여주시겠습니까?” 리버스가 티켓을 건넸다. 앞쪽 통로 어딘가에서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예루살렘」의 한 대목이 들려왔다. 1등칸과 2등칸 사이에 낀 식당차에서 들려오는 소리인 듯했다. 리버스 맞은편의 잉글랜드 남자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 봤자 게임일 뿐입니다.” --- p.18
리버스는 막다른 골목을 바라보다가 첫 번째 건물의 한쪽 모퉁이로 시선을 돌렸다. 명판에는 골목의 이름이 흐릿하게 새겨져 있었다. 울프 가 E1. 경찰이 킬러를 울프맨이라고 부르는 이유였다. 그의 흉포한 범행 수법이나 현장에 남겨진 이빨 자국 때문이 아니라 이 골목이 바로 그가 탄생한 곳, 그가 처음으로 범행을 벌인 곳이기 때문에. 울프맨의 행방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했다. 그보다는 이 도시의 천만 개 얼굴 중 누구라도 그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훨씬 더 중요했다. “이제 어디로 갈까요?” 리버스가 조수석 문을 열며 말했다. “킬모어 가.” 플라이트가 대답했다. 아이러니한 거리명에 두 남자의 시선이 마주쳤다. “킬모어 가. 좋습니다.” 리버스가 차에 오르며 말했다. --- p.69
메이 제솝은 2월 5일, 월요일에 살해되었다. 보름달이 뜨기 나흘 전에. 셸리 리처즈가 살해된 날은 2월 28일, 수요일. 보름달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날이었다. 모리슨은 그녀에게 남겨진 이빨 자국이 나머지 피해자들과 다르다고 했다. 그리고 진 쿠퍼는 3월 18일, 일요일 밤에 살해되었다. 춘분을 불과 이틀 남겨둔 시점에. 그가 달력을 책상 위로 휙 던졌다. 패턴도, 깔끔한 수학적 해법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이건 영화가 아니잖아. 운에 기대려 하지 마. 수사에 지름길이란 없으니까. 법의학적 증거를 따라 차근차근 나아가야 한다는 플라이트의 말은 옳았다. 게다가 심리학은 지름길이 아니었다. 달을 보고 짖어대는 것 역시 지름길이 아니었다. 울프맨이 언제 또 범행을 저지를지는 아무도 몰랐다. 리버스는 여전히 원점에 서 있었다. --- p.129
“난 그를 알아볼 수 있어요.” 그녀가 속삭이듯 말했다. 그리고 블라우스 소매에서 티슈를 꺼내 코를 풀었다. 눈물 한 방울이 그녀의 한쪽 무릎에 툭 떨어졌다. “그를 알아볼 수 있다고요.” 그녀가 다시 말했다. “만약 그가 여기 있다면, 당신들이 잡아놓은 게 맞다면.” 리버스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녀의 갈색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는 지금껏 별의별 괴짜를 다 보아왔다. 하지만 눈앞의 여자는 괴짜가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잰?” 그녀가 코를 훌쩍이며 다시 창문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하마터면 그에게 당할 뻔했어요.” 그녀가 말했다. “내가 첫 번째 희생자가 될 뻔했다고요. 그 여자들이 죽기 전에. 그가 날 거의 죽일 뻔했어요. 내가 첫 번째 희생자가 될 수도 있었어요.” 그녀가 고개를 뒤로 살짝 젖혔다. 순간 리버스는 흠칫 놀랐다. 그녀의 오른쪽 귀밑에서 시작해 하얀 목으로 이어지는, 3센티미터 정도 되는 초승달 모양의 분홍색 흉터. 칼이 만들어놓은 게 분명한 흉터. 울프맨의 첫 번째 표적. --- p.200
“그는 내가 어디 사는지 알고 있어요, 존. 아침에 이걸 받고 열어봤는데…… 하마터면 심장이 멎어버릴 뻔했어요. 집에 있을 수가 없어 부리나케 뛰쳐나오긴 했는데 어딘가에서 그가 날 지켜보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오싹하더라고요.” 그녀의 눈가가 다시 촉촉해졌다. 그녀는 눈물을 쏟지 않으려 고개를 뒤로 살짝 젖혔다. 그녀의 손이 가방을 뒤적여 티슈를 찾아냈다. 리버스는 티슈에 코를 푸는 그녀를 말없이 지켜보았다. “살인 협박이에요.” 그녀가 설명했다. “살인 협박?”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보낸 거죠? 보낸 이가 누군지 적혀 있습니까?” “오, 분명하게 적혀 있어요. 울프맨. 이건 울프맨이 보내온 편지예요, 존. 내가 다음 표적이 될 거라는 내용이에요.” --- p.244
그는 본부로 돌아가 작별인사를 하고 싶었다. 서둘러 짐을 꾸려 북쪽 나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가 없어도 그들은 서로 잘 지낼 것이다.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고, 울프맨은 또다시 일을 벌이게 될 것이다. 경찰이 우왕좌왕하는 동안 리사 프레이저를 깨물려고 달려들겠지? 은신처에 조용히 숨어 있을 것이지 대체 올드 베일리에는 왜 간 거야? 그는 플라이트와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지 듣고 싶었다. “될 대로 되라지 뭐.” 그가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으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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