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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아린느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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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아린느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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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6년 08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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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EPUB(DRM) | 0.46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5.7만자, 약 1.8만 단어, A4 약 36쪽?
ISBN13 9791130010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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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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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이 대체 무슨 말로 해적들을 구워삶은 것인지, 해적들은 항복한 이후로 저 멀리 샤르데냐의 항구가 보이는 곳까지 세아린느 일행이 탄 배를 호위했다. 기사들은 ‘세아린느의 안전에 위협이 되지 않는 한 상관하지 말라’는 공왕의 말에 충실히 따르고 있었지만 세아린느는 칼이 대체 어떤 조화를 부린 것인지 궁금했다.
세아린느는 갑판에서 바다와 가까이 보이는 샤르데냐를 구경하다가 선원들과 즐겁게 대화하는 칼을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저렇게 보면 절대 광인이라는 소문이 날 사람 같지는 않은데…….’
소문. 소문이라는 것의 속성이 그렇다. 사람들의 입을 타고 전해지면서 없던 일도 생겨나고 있었던 사실도 사라지는. 누군가 나쁜 의도를 갖고 말을 전한다고 해도 말을 퍼트리는 사람들은 그걸 알지 못한다. 언제, 어디서 소문이 왜곡되고 얼마나 다르게 전해지는지 절대 알 수가 없다.
‘나도 지금 그렇게 사람들의 입을 오르내리고 있겠지.’
처음에는 사람들의 앞으로 나가는 게 무서웠다.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날 비웃고 있지는 않을까.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어느 정도 포기하게 됐다.
‘친구한테 남자나 빼앗기는 매력 없는 여자라고 떠들어대라지!’
사실 세아린느는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이 안시아에 비해 매력이 없어서, 안시아에 비해 아름답지 않아서, 안시아가 가진 신비로운 분위기를 갖지 못해서. 그래서 레온이 그녀를 택한 것이라고. 자신이 잘못해서라고 여겼다.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지?”
문득 들려온 칼의 목소리에 세아린느는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아니에요. 잠시 바다를 본 것뿐이에요.”
“이 아름다운 바다를 보고 그런 표정을 짓는다니……. 공주는 귀여운 강아지를 보고도 울음을 터트리겠군.”
“강아지를 보고 우는 사람이 어딨어요?”
칼의 짓궂은 말에 세아린느는 팩 고개를 돌렸다. 칼은 부드럽게 웃으며 세아린느에게 손을 내밀었다.
“에메랄드빛 바다를 보고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 여자도 없지.”
“……그런 표정 지은 적 없어요.”
세아린느는 칼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칼은 그녀의 손을 잡고 갑판 더 앞쪽으로 그녀를 데려갔다. 기사들의 눈이 둘에게 꽂혔다.
‘이렇게 대놓고 쳐다보면 오기가 생겨서라도 뭔 짓을 하고 싶어지는군.’
칼은 세아린느를 보며 말했다.
“이봐, 공주님.”
“왜요 3황자님.”
“우와. 굳이 3자를 붙일 필요가 있나?”
“지금까지 이름을 부르다가 갑자기 공주, 공주 거릴 필요도 있나요?”
세아린느가 퉁명스럽게 말하자 칼은 그 말을 파고들었다.
“그럼 내게 이름을 허락해주는 건가?”
그 말에 세아린느의 뺨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애칭은 연인과 직계 가족을 위한 것이지만 지위를 나타내는 수식어 없이 부르는 이름 또한 친밀한 사람들에게만 허락되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란 사이라면 모를까, 이렇게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이에 이름을 허락하다니. 칼의 말은 세아린느에게 마치 ‘나를 허락하는 건가?’라는 말처럼 들렸다.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내게는 그런 뜻으로 들렸지만…… 아니라니 할 수 없지. 더 노력하는 수밖에.”
칼의 능청스러운 대꾸에 세아린느는 기가 찼다. 더 노력이라니. 언제 노력을 했다고 더 노력을 하느니 마느니 하는 것인가?
레온이라는 약혼자가 있을 때도 자신에게 다가왔던 남자들은 다정한 말을 해주고 선물을 사서 마음을 사고 싶어 했다. 그에 비해 칼은 세아린느를 짓궂게 놀리기나 할 뿐. 세아린느는 자신도 모르게 볼을 부풀리며 칼의 에스코트에 따라 갑판 끝까지 걸어갔다.
“지금까지 한 게 노력이라면 정말 큰 노력을 하셔야겠군요.”
“당신의 이름을 허락받기 위해 노력하지. 그러니 약간의 무례는 용서해주면 좋겠는데. 그렇게 해줄 건가?”
그 말에 세아린느는 놀란 눈으로 칼을 바라보았다.
“여기서 더 무례해질 수 있나요?”
“그럼 당연하지!”
칼은 환하게 웃었다. 순간 세아린느는 그의 웃음에 덜컥, 숨이 막혔다. 칼의 등 뒤로 보석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바다와 맑은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그런 풍경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칼의 적발이 태양의 이글거리는 불길처럼 바람에 흩날렸다. 짓궂은 장난을 칠 때조차 어딘가 서늘해 보이던 잿빛 눈은 자신을 향해 따뜻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의 환하게 웃는 얼굴은 칼을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 제국을 갖기 위해 정략결혼을 계획하는 야심가가 아니라, 연인에게 달콤한 말을 속삭이며 당신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말을 하는 다정하고 순한, 사랑에 빠진 남자처럼 보였다. 더 무례해지겠다고 외치는 순간인데도.
“내가 잘 잡을 테니 너무 놀라지 마! 자, 간다!”
“뭐, 뭐 하는……! 꺅!”
칼은 세아린느의 팔을 잡아당겨 그녀의 무릎 아래에 손을 넣어 번쩍 들고 난간을 올라 배에서 뛰어내렸다.
“공주님!”
“세아린느!!”
저 멀리에서 둘을 지켜보고 있던 기사들과 이스란이 경악하며 소리를 질렀다. 꺄아악! 세아린느는 찢어져라 소리를 질렀다. 아래로 떨어지는 감각에 눈을 꼭 감고 손에 닿는 걸 무작정 꼭 붙들었다. 떨어진다! 바다에 빠진다! 벌벌 떨고 있는데 귓가에 칼의 목소리가 닿았다.
“걱정 마. 하늘 꼭대기까지 데려가 줄 테니까.”
그 말과 함께 떨어지던 감각이 사라졌다. 세아린느는 조심히 눈을 떴다.
“꺅!”
발 바로 아래에 바다가 있었다. 세아린느는 자신을 안은 칼의 품 안으로 더 파고들었다. 칼은 세아린느를 안은 채로 수면에서 손바닥 한 뼘만큼 떠 있었다. 맞다. 그는 바람의 능력을 갖고 있지. 세아린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칼은 세아린느에게 속삭였다.
“내 목에 팔을 두르고 좀 더 단단히 잡아.”
세아린느는 칼의 말대로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옳지. 잘했어.” 칼은 아까 세아린느의 혼을 빼놓았던 미소를 다시 지으며 그녀를 칭찬했다.
“추락해봤으니 이젠 올라갈 때야.”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솟구쳐 올라갔다.
쐐애액! 귀에 울리는 바람 소리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것인지 알려준다. 세아린느는 센 바람 때문에 눈을 꼭 감고 칼을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칼은 마치 무서워할 것 없다는 듯이 세아린느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세아린느는 칼의 단단한 팔이 자신을 받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자 약간 공포심이 사라졌다. 얼마나 올라갔을까. 바람 소리도, 상승하는 느낌도 사라졌다. 너무 높이 올라왔는지 귀가 먹먹하다. 세아린느는 침을 꼴깍 삼켰다.
“자. 이제 눈 떠봐.”
칼의 목소리에 세아린느는 천천히 눈을 떴다.
“와……!”
눈앞에는 새하얀 구름밭이 펼쳐져 있었다. 언제나 땅에서 올려다보기만 하던 구름이 마치 풀밭처럼 내려다보인다. 세아린느는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주변을 바라보았다. 온통 새파란 하늘뿐,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다. 새조차 날아다니지 않는 가장 높은 하늘. 마치 신의 세계와 같은 시린 아름다움.
“너무…… 너무 아름다워요…….”
세아린느는 칼을 보며 말했다. 칼은 그녀를 다정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가끔 고민이 있을 때 하늘 위로 올라와. 여기에 있으면 내 고민도 하잘것없어지는 기분이지. 그렇다고 고민하던 걸 전부 내려놓을 순 없지만, 이렇게 기분전환을 하고 나면 머리가 맑아져.”
세아린느는 칼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이곳에 데려와줬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이렇게 아름다운 장소로 데려와 준 것이다. 세아린느는 문득 그가 자신에게 해줬던 것들을 떠올렸다.
실연에 빠져 이성을 잃고 정원에서 땅을 팔 때 자신을 대신해 땅을 파서 상자를 꺼내줬고, 레이디에게 더럽다는 무례한 말을 하긴 했지만 정신이 번뜩 들게 해줬다. 사과를 요구하자 먹는 사과를 내미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긴 했지만 그 일을 혼자 생각할 때마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오곤 했다.
다른 남자들처럼 무작정 다정하게, 무작정 자신의 마음에 들려고 굴지 않았다. 하지만 그랬기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세아린느는 자신이 더 이상 우울해하지는 않는지 세심히 살피는 칼의 얼굴에 뺨이 달아올라 시선을 돌렸다.
“고마워요…….”
“그거 말고 다른 말이 듣고 싶어. 이제 우울한 게 좀 풀렸어?”
“……네.”
“그럼 됐어.”
칼은 대수롭지 않은 일을 했다는 듯이 가볍게 말하고 세아린느를 안고 천천히 하늘에서 내려왔다. 구름 속을 지날 때 세아린느는 탄성을 터트리며 손을 뻗어 구름을 잡아보려 했지만 구름은 잡히지 않고 그저 손 안에서 흩어질 뿐이었다. 세아린느가 구름의 맛을 알고 싶다고 혀를 내밀자 칼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구름층을 지나 내려오자 바다와 샤르데냐의 땅이 멀리 내다보였다. 그들이 타고 있던 배는 아주 조그맣게 보일 뿐이었다.
“와…… 정말 작네.”
세아린느는 한 손을 뻗어 세상을 가늠하며 웃었다. 그녀의 말에 칼은 대꾸했다.
“그렇지? 내가 제국을 갖고 싶어 할 만도 하지?”
칼이 반역의 말을 농담처럼 건넸다. 하지만 이렇게 높은 곳에서 보면 제국도 작을 것 같아서, 세아린느는 그의 말이 약간은 이해가 되었다.

칼은 세아린느를 안고 천천히 갑판 위로 내려왔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위치의 높은 하늘에서 내려올 때부터 갑판에서 지켜보던 가문의 기사와 이스란이 세아린느와 칼에게로 뛰어왔다. 이스란은 칼의 품에서 세아린느를 빼앗다시피 잡아당겨 자신의 등 뒤로 숨기며 칼에게 말했다.
“황자님. 다시는 이런 돌발행동을 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세아린느는 이스란의 이런 목소리를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화를 참는 듯한, 이를 악물고 말하는 듯한 목소리는 칼을 향해서 날카로운 가시를 세우고 있었다. 칼은 그런 이스란을 보다가 끄덕였다.
“그러도록 하지.”
이스란은 칼의 대답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등을 돌려 세아린느의 어깨를 감싸 안고 그녀를 객실 안으로 데려갔다.
“세아린느 이제 곧 항구에 도착할 거야. 옷이 좀 젖었구나. 갈아입어야겠네.”
“으응…….”
세아린느는 뒤를 돌아 칼을 살폈다. 아무리 자신을 위험한 상황에 몰았다고는 하나 칼은 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알고 있었기에 그리 위험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지켜보는 사람이야 놀라고 무서웠겠지. 하지만 당사자인 세아린느는 오히려 칼의 마음씀씀이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아직도 화가 나고 놀랐는지 어깨를 감싸 안은 이스란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세아린느는 작은 손으로 이스란의 손을 조심스럽게 쥐었다.
“난 괜찮아 오빠. 많이 놀라지 않았어. 오히려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간 건 처음이라 즐거웠는걸?”
세아린느의 말에 이스란은 피식 웃으며 그녀의 이마에 꿀밤을 놓는 시늉을 했다.
“오빠 심장 떨어져 죽는 줄 알았는데 넌 재밌었어? 응?”
“헤헤, 미안.”
일부러 더 천진한 미소를 짓자 이스란이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며 바닷바람으로 헝클어진 세아린느의 금발을 쓰다듬었다.
“옷 갈아입고 나와. 오빠 마음 풀어주려면 예쁘게 입고.”
“응. 알겠어!”
객실로 들어가는 세아린느를 보며 이스란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사교의 장인 수도에서 벗어난 남부 지역에서 자란 세아린느는 또래 귀족가의 영애들에 비해 순진하고 어린 구석이 있었다. 그럴 법도 했다. 이제 혼인을 할 성년이 다 되어가는 나이인데도 레온과의 소꿉장난 같은 연애 외엔 다른 남자를 만나본 적도 없으니 칼에게 휘둘리는 것이 당연했다.
공왕은 칼을 묵인하되 세아린느의 뜻을 따를 것이고 이스칸은 칼과 대련을 해서 그런지 그에게 호의적이다. 이스만은 칼을 별로 탐탁지 않아 한다. 꿍꿍이가 있는 놈이라며 말이다. 모두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이스란은 생각했다.
칼은 황태자가…… 아니, 황제가 되고 싶어 하는 야심가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세아린느를 원하는 것이 아주 분명하다. 그 누구보다 빨리 세아린느를 만나러 모데나에 온 것을 보면 확실했다.
사람이 나빠 보이진 않는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칼은 잘 보이기 위해서 성격을 꾸며내지는 않는다. 다 보여주지 않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가 세아린느에게 잔인하게 굴지는 않을 것 같다. 세아린느를 사랑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존중은 해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세아린느의 행복은? 그녀가 정략결혼이 아니라 진심으로 칼을 사랑하게 된다면 그녀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그가 제국을 갖겠다는 야심을 이루고 난 후 세아린느가 버림받거나 하지는 않을까?
이미 한 번 파혼을 당한 막내 여동생을 향한 이스란의 걱정은 태산 같았다. 그런 이스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람은 세아린느 일행을 태운 범선의 돛을 밀어 항구에 데려다 주었다.
“항구에 정박합니다!”
세아린느는 이스란의 에스코트를 받아 배에서 내리며 사람들이 북적이는 항구를 벅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소금 냄새!”
물자가 오가고 바다에서 나는 해산물들이 오가는 항구이니만큼 육지에서는 맡을 수 없는 비릿한 냄새가 풍겼다. 하지만 모데나의 항구와는 약간 다른 냄새가 나서, 세아린느의 가슴이 세차게 두근거렸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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