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녀에게 상처를 다루는 법은 혼자서는 배울 수 없다고 말해주었다. 그렇다. 상처를 이기려면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그 가운데서 얽히고설켜 살며 배워야 한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있지만, 나쁜 사람도 있고, 내게 무심한 사람도 많다. 사람에게서 희망과 사랑만을 배울 수는 없으며, 때로는 거짓과 미움, 실망과 체념도 배워야만 한다. 상처 다루는 법은 책이나 손안의 스마트폰에 적혀 있지 않다. 내가 몸으로 마음으로 겪은 꼭 그만큼만 알 수 있다. ---「프롤로그」중에서
최근 매체를 도배한 ‘먹방’은 균형 잃은 우리의 자화상이다. 의식주는 생존의 기초이니 방송에서 먹는 모습을 만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요새는 ‘먹방’이 많아도 너무 많다. 우리는 누가 맛있게 음식을 먹는 모습만 보아도 기분이 좋아진다. 누군가가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대리 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게걸스러운 탐식은 정신에 해롭다. 음식은 천천히 음미할 대상이다. --- p.48
“남자친구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셨나요?” “아뇨, 그러지 못한 것 같아요. 제 자신도 사랑하기 힘든데 누구보고 사랑한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은 거잖아요.” “그 때문에 남자친구들과 잘 지내지 못했다거나 헤어졌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하지만 정아 씨는 사랑에 너무 수동적이에요. 상대가 3 정도 사랑을 표현하면 1이나 2 정도는 내어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정아 씨…… 사랑은 주는 만큼 받는 거예요.” 연애를 위해서가 아니라 즐거운 인생을 위해 몇 가지 강력한 실천을 독려했다. 여행, 독서, 공연 관람, 동호회 가입 같은 거였다. 새로운 친구부터 몇 명 사귀라는 취지였다.--- p.80
“세상에서 기득권을 쥐고 있는 이기적이고 사악한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 과연 저에게 행복한 일일까요?” 희망을 상실해가는 젊은 세대의 전형처럼 여겨지기도 했지만, 그의 질문은 때때로 긴 여운을 남겼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던진 질문은 나의 의표를 찌르기에 충분했다. “상처투성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선생님은 과연 괜찮으세요? 잘 지내시나요?” 나의 대답은 물론 ‘괜찮지 않다’였다. 겉으로는 세상살이의 흐뭇함이나 생의 가치, 목적의 중요성처럼 상담가다운 내용을 쉬지 않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는 그래서 방문을 걸어 잠그고 세상과 연을 끊은 채 살아가고 싶다고 했다. 아무리 좋게 보아주려 해도 세상에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더럽고 야비한 일만 가득한 것처럼 느껴졌던 까닭이다. --- p.99
“경은 씨, 마지막으로 준영이를 안아주면서 ‘사랑해’라고 말했던 게 언제인가요?” 이 질문에 경은 씨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드라마 주인공들의 수많은 사랑 고백을 들으면서도 정작 가장 가까운 이에게는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던 것이다. 미움은 작지만 사랑은 크다. 작은 미움에 갇히면 그것이 자신을 집어삼킬 것처럼 커다랗게 보이지만, 실은 개미만큼 작디작다. 미움이 덮쳐올 때 사람을 살리는 건 일상적이고 흔한 사랑일 때가 많다. “경은 씨에게는 작은 그 사랑이 준영이에게는 인생의 전부일 수도 있거든요.” 경은 씨와 가족에게는 새롭고 흥미진진한 진짜 드라마가 필요했다. 헤어진 연인과 가족이 다시 사랑하게 되는 해피엔딩의 드라마. --- p.130
하나 씨를 상담하면서 세상의 메마름을 다시금 실감했다. 그녀는 주변에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고 했다. 아픈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3년 전 병실에서 “아이구, 내 새끼 힘들어서 어쩌누?” 해줬던 말 이후로는 처음이었다고 했다. 상담 때마다 “많이 힘들죠?” 하는 별것 아닌 내 말에 매번 눈물을 멈추지 못했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만약 당신이 지치고 힘들 때, “괜찮아”, “잘될 거야”, “많이 힘들었지?” 하며 관심 갖고 위로하는 존재가 주변에 단 한 명도 없다면 과연 어떻겠는가? 아마 당신의 마음은 곧 위태로워질 것이고, 삶의 의미를 잃을지 모른다. 그것이 우리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가족과 친구, 이웃이 꼭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