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안 맞나 봐…….
어쩔 줄 모르고 멍하니 선 이령은 눈앞의 남자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한 일만 연속으로 일어나다보니 이제는 아무 생각도 안 나고 그냥 멍하기만 했다.
분명 여자가 위기에 빠진 것처럼 보였는데…….
그런데 그 여자는 어디로 가버리고 눈앞의 남자는…… 왜 저렇게 쩔쩔매는 걸까? 누구랑 통화 중이길래?
“그, 그러니까 제 머리가 깨져서……. 아, 아뇨. 그건 절대 중요하지 않죠. 머리가 아니라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이 다 깨졌어도……. 아뇨 아뇨, 제가 지금 노래를 부를 리가…….”
이령도 어렸을 때 할아버지에게 혼난 적이 많다. 그러나 좀 달랐던 거 같다. 할아버지는 야단을 칠 때 치더라도 이령이 뭘 잘못했는지를 따져 묻고 어떻게 해야 할지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셨던 것 같다. 그래서 이령은 혼나면서도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었다.
“애들이 절 걱정하다 민주를 놓……쳤으면 큰일이죠.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놓친 건 절대로 민주가 날렵하고 재빠르기가 일지매 뺨을 치는 수준이라 그런 거죠. 암요. 그러믄입죠!”
그러나 눈앞의 남자는, 뭘 잘못하긴 한 건지 어떻게 할 건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냥 보기에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는 것만 같다.
“카메라 리허설이요? ……아, 시간을 끌라고요. 하, 하지만 할 애가 없는…….”
휴대전화에서 버럭 하는 큰 소리가 멀리 떨어진 이령의 귀까지 들려왔다. 그 스피커에 귀를 대고 있던 남자는 거의 귀청이 떨어질 정도의 타격을 입고 비틀댔다.
“……데 하는 게 또 제 능력이고 소임이죠. 걱정하지 마세요. 어떻게든…… 헙!”
또 소리를 지르는지 남자가 귀에서 휴대전화를 떼고 눈을 질끈 감았다.
전화 상대가 누군지는 몰라도 예의가 없다는 것은 분명했다. 윗사람이든 뭐든 사람에게 저렇게 대하는 건 옳지 않으니까.
그나저나…… 어떻게 해야 할까?
이령이 구해주려던 여자는 없고, 자신이 각목으로 때린 남자는 깨진 머리를 부여잡은 채 누군가에게 혼나고 있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고 주춤대고 있을 때였다.
“아오!”
방금 전까지 쩔쩔매던 남자의 목소리 톤이 바뀌었다. 돌아보니 전화를 끊고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은 다음이었다.
“이 성질머리! 이 못된 성질머리!”
남자는 이리 성큼 저리 성큼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전화를 안 받아놓고…… 응? 왜 그 이야기를 지금 하느냐고? 어?”
남자가 허공에 대고 주먹질을 시작했다.
“전화를 안 받는데 어떻게 말을 해? 어? 어? 어?”
뭐가 있나…… 하고 이령이 허공을 기웃거렸다. 휴대전화는 끊은 거 같은데, 누군가 대화 상대가 있는 걸까?
“지 전화 받는 때는 지가 정하고! 내가 말할 때도 지가 정하고! 민주 촬영에 민주가 튀었는데 내가 지금 카메라 리허설 할 애를 어디서 구…….”
신 내린 것처럼 떠들던 남자가 확 돌아서다 이령과 마주쳤다.
“했네?”
남자의 눈빛이 희번덕 빛났다.
신호대기에 걸린 차 안에서 세훈은 휴대전화의 주소록을 열었다.
세훈의 휴대전화에는 민주 폴더가 따로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민주가 집착하는 맛집 목록.
‘민주집착까페’, ‘민주집착주꾸미’, ‘민주집착빙수집’, ‘민주집착오겹살’ 등등 맛집 목록을 쭉 내리던 세훈이 스튜디오 가까운 집부터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난데…… 민주 거기 있지?”
“살려주세요!”
다가온 허 실장이 이령의 손목을 잡으며 무릎을 꿇었다.
“네네?”
맞는 것보다 더 놀란 이령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아니지.”
자기도 이상한지 벌떡 일어나며 허 실장이 머리를 저었다.
“아주 비는 게 몸에 뱄구만. 누구 때문에.”
이를 아드득 간 허 실장이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노려보던 살벌한 눈빛을 그대로 이령에게 향했다. 허공으로 들어 올려진 그의 집게손가락이 정확히 깨진 머리를 가리켰다.
“이거 보여요?”
안 보일 리가 없다.
“네.”
“어이구? 대답은 잘하네. 다행이네. 안 보이면 어쩌나 했는데 눈은 좋아. 눈이라도 좋아야지. 어?”
순간적으로 이령은 아까 남자를 윽박지르던 전화 상대가 왜 그렇게 무례했는지 공감할 뻔했다. 이 남자…… 참 밉살스럽게 잘 비아냥거린다.
“이거 폭행이에요.”
허 실장이 상처를 누르고 있던 피가 묻은 손수건을 과장되게 펄럭였다.
“경찰서 갈래요?”
“가야죠.”
이령이 반응에 허 실장이 어? 하고 움찔했다. 이게 아닌데?
“저는 길거리에서 여자가 납치되고 있으니까 도우려는 거였지만 뭔가 잘못했다면 시시비비를 가리는 게 맞겠죠. 경찰서에 가요.”
“납치는 무슨!”
허 실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경찰서에 가면 큰일이니까 눙치고 지나가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진짜 열 받는 것도 사실이었다.
한 번 놓쳐서 그 짜디짠 떡볶이를 먹게 한 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여기서 잡았으면 해결되었을 거다. 최세훈 모르게 넘어가는 일까지는 몰라도 욕 퍼레이드를 예약하는 일까지는 없었을 거다. 짧고 굵게 욕먹으면 끝날 일을…….
“납치 막으려다 지금 사람 죽게 생긴 거 알아요?”
“네? 누가 죽어요?”
“내가!”
허 실장이 길길이 뛰기 시작했다.
“그 인간은 날 씹어 먹고! 갈아 먹고! 뜯어 먹고! 해체해서 뼈까지 싹 발라 먹고 없는 씨까지 만들어 씨 발라 먹을 그런 놈이라고요! 왜?”
허 실장이 뒤에서 어쩔 줄 모르고 헤매고 있는 보디가드들을 가리켰다.
“쟤들이 지켜야 하는 민주를 놓쳤다고! 어? 누구 때문에?”
이번에 그 손가락은 곧장 이령에게로 향했다.
“님 때문에!”
도시가 안 맞아…….
멍하니 선 채 쏟아지는 허 실장의 웅변을 들으며 이령이 한 생각이다. 지금 그녀는 허 실장이 한 말을 절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죽으면 누가 죽는다는 건지, 사람을 씹어 먹고, 갈아 먹고, 뜯어 먹고, 뼈를 싹 발라 먹을 흉악무도한 사람이 진짜 존재한다는 건지, 민주라는 사람이 범죄자도 아닌데 왜 잡아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는데 허 실장의 눈빛이 화살처럼 이령에게 꽂혔다.
“선택해요. 경찰서 갈래요, 아니면 생명을 구하는 숭고한 일에 도전해볼래요?”
끝끝내 마지막까지 도시 사람들의 화법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하며 이령은 눈을 질끈 감았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