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모임은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을 중심으로 고전문학을 연구하는 젊은 학자들의 모임으로,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사문학에 깃든 보편적인 가치와 치유의 힘을 널리 알리는 데 관심을 두고 다양한 연구기획을 진행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프로이트 심청을 만나다》(공저)가 있다.
돌아보면 참으로 길고 험한 고난의 역정이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힘없이 좌절할 만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옥영과 최척은 그 고난의 세월을 관통해 마침내 보란 듯이 시련을 극복했다. 비장하고도 숭고한 싸움처럼 다가오는 그들의 남다른 인생 역정이 어떻게 가능했는가. 그것은 바로 ‘기억’에 의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기억인가 하면 첫 만남, 첫 인연의 기억이다. 힘들게 이룬 소중한 인연에 대한 기억이 그들을 지켜주고 용기와 힘을 전해주었던 것이다. 그 힘으로써 그들은 다시 일어나서 마침내 영원으로 이어진 고귀한 동반의 삶을 이루어냈다. 이것이 인생이자 사랑이다. 스스로 이루어낸 사랑이라야, 주위의 시선과 우려를 무릅쓰고 제 힘으로 이룩해낸 인연이라야, 세월을 관통해서 영원토록 빛을 발하는 법이다. ---「만남 편 ? 우연을 운명으로 바꾼 힘」중에서
(숙영낭자가 말한) 그 3년의 기다림이 뜻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표면상으로는 단순한 금지처럼 보이는 그 화소 속에 담긴 의미는 ‘사랑을 제대로 이루기 위해서는 성숙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성숙을 이루는 가운데 길이 사랑을 할 수 있는 태세를 마련하고 세상으로부터 사랑을 공인받는 그 시간 말이다. 그 3년은 또한 서로가 서로를 믿어주고 지켜주는 신뢰의 시간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상대방이 기꺼이 자기를 받아줄 때까지 믿고 기다려주는 그 마음, 그 태도가 온전한 사랑을 이루는 조건이었던 것이었다. 그것이 혼자만 행복한 사랑이 아닌 서로 함께 행복한 사랑을 이루기 위한 조건이었다. ---「좌절 편 ? 사랑을 망치는 조건」중에서
현실에서 그 믿음과 다짐은 배반당할 수 있다. 실제 세상의 걸림돌은 소설에서보다 더 크고 많으며 강력하다. 가다가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으며 내 마음과 달리 상대방은 냉정하고 무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사랑을 찾아 움직이는 (〈백학선전〉 속 조은하의) 저 걸음걸음이 허튼 것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걸어가는 과정 자체가 곧 사랑이라 할 수 있다. ‘나’라는 소중한 존재에 대한 사랑 말이다. 비록 인연을 맺기에 실패하더라도 그 여정은 그 자체로 소중한 삶의 과정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극복 편 ? 현실 앞에 물러서지 않는 용기」중에서
우리가 사랑 앞에 초라해질 때는 무게중심을 자신에게 두고 있지 않을 때다. 자기는 상대를 많이 사랑했는데 상대는 그러지 않았다는 식으로 사랑의 크기와 무게를 재는 일이야말로 스스로를 초라함으로 몰아넣는 함정이다. 그것은 타인의 손길과 관심을 바라는 의존성일 뿐 진정 자신을 위한 사랑은 아니다. 춘향이 그랬던 것처럼 진정으로 나를 위해 기다리고 또한 인내할 때 이런저런 상황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스스로 초라해지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이 망가진 몸으로 옥에 갇혀 목에 칼을 쓰고도 오히려 더 아름다울 수 있는 춘향에게서 배우는 사랑의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