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99년 장편소설 『괴력들』을 발표한 이후로 장편소설 『슬픔장애재활클리닉』 『사랑, 그 녀석』 『변신』 『숨은 새끼 잠든 새끼 헤맨 새끼』 『여관』 『왼쪽 손목이 시릴 때』 『영광전당포 살인사건』! 와 장편동화 『세상 끝에서 온 아이』, 작품집 『내가 꾸는 꿈의 잠은 미친 꿈이 잠든 꿈이고 네가 잠든 잠의 꿈은 죽은 잠이 꿈꾼 잠이다』 『대답해 미친 게 아니라고』 『사랑이라니, 여름 씨는 미친 게 아닐까』 등을 펴냈다. 이즈음 북한산이 몇 걸음 거리인 서민 아파트에 거주하며 다음 소설을 구상 중이다. 그의 작품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드디어 사랑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급기야 이처럼 선언할 수 있음에 얼마나 가슴 벅찬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맙소사 방금 내가 뭐라고 했죠? 사랑. 사랑. 오마이갓 이게 얼마만인가! --- p.8
외로움을 잘 타는 편은 아니었어요. 20대까지만 해도 분명히 그랬어요. 또 하루 저물어가는 서른 즈음 되어서도 마찬가지. 외로움에의 내성이 누구보다 강한 편이었지요. 어쩌다 여자를 만나고 어쩌다 연애를 하고 어쩌다 멀어지는 일들이 어쩌다 반복되었지만 어쩌다 혼자되었을 때도 외롭다는 생각은 그다지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이렇게 평생 혼자 살아도 크게 나쁠 것이 없겠다고 믿던 때였으니까. 그런데 불과 얼마 전부터, 30대 중반 접어들면서, 뭔가 달라지더군요. 이따금씩, 비로소 외롭더군요. 외로움이란 이를테면 서러움 아니면 가려움 같은 것이더군요. 제기랄 슬프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 p.12
누군가와 깍지 껴서 굳게 잡은 손을 그네처럼 흔들며 거리를 활보했던 게 언제던가. 곁에 있는 누군가가 좋아서 흐뭇하고 곁에 없는 누군가가 그리워서 흐뭇하던 게 도대체 어느 시절 추억이던가. 가련하구나 인생이여. 병신 같은 마지막 청춘을 병신같이 흘려보내고 30대 아니라 40대 50대가 되어서도 다만 외로움을 친구 삼아 병신같이 늙어갈 운명이란 말인가. --- pp.53-54
어쩌면 나는, 빌어먹을, 주영을 사귀면서 선희 같은 여자를 꿈꾸었던 것일까. 지민을 사랑하며 제니 같은 여자를 꿈꾸었던 것일까. 민조의 손을 잡고 거리를 걸으며 채환 같은 여자를 꿈꾸었던 것일까. 선희를, 지민을, 주영을, 제니를, 채환을, 민조를, 이연을 그토록 열심히 사랑했지만 결국 남남이 되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을까. 한때는 진심으로 진심이었건만 결국은 헤어지고 말았던 것이 모두 그 때문이었을까. --- p.87
서로 아끼는 상대임에도 지나치게 많이 아는 대신 아는 게 별로 없는 상황만큼 진귀한 관계가 없음을 내가 그렇듯 그녀도 잘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애써 알려고 하거나 알려주려고 하지 않을 뿐 서로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 그보다 중요하고 반가운 행사들이 둘 사이에 너무 많아서 문제일 따름이니까. --- p.117
간섭. 집착. 착각. 편견. 오해. 갈등. 거짓. 회피. 불신. 의심. 질투. 불만. 증오. 권태. 망각. 사랑에 빠진 이들이 너무도 허술하게 빠져들곤 하는 마음의 질병 관계의 그늘. 세상에 흔해빠진 연애소설과 일일연속극 가운데 저 질병 저 그늘의 힘을 빌지 않고 줄거리를 이끌어가는 작품이 있을까요. --- p.120
세상 무엇보다 나를 들뜨게 했던 대상이 세상 무엇보다 처절한 상실의 고통으로 변해가는 일련의 과정. 나 아닌 누군가에게 얼마나 미치도록 미쳤었는지를 가장 어이없는 방식으로 입증하는 관계 변화. 집착이 클수록 뒤에 가 망각 또한 깊어짐을 알지 못하는 한 시절. 이별. --- p.155
언젠가 내가 약해지고 느려지고 블편해지고 사라진 이후에도 내게 더없이 완벽한 그녀는 끝내 세상에 남아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겠지. 언젠가 늙고 약해지고 느려지고 사라질 걱정 없이 부조리한 생을 부조리하게 비웃으며 이겨내겠지. 그렇겠지, 그녀라면. --- p.236
잠깐 달고 오래 짠 것이 사랑이니까. 그것에 이 소설에서 그려져야 할 사랑의 숙명이니까. 설탕 같고 소금 같은 사랑에 오이처럼 올리브처럼 푹 절어진 채 살아가야 할 차연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