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성령이 오셔야 합니까? 성령이 오셔야 진정한 교회가 탄생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던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기고 놀라고 충격을 받는 교회가 탄생하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오신 진정한 교회는 예수님을 닮아 끝까지 변함없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 교회를 보고 세상이 놀라며 예수님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여전히 교회만이 세상의 희망이라고 믿습니다. 성령세례를 받아 변화된 그 사람으로 인해 세상이 놀라고 충격을 받고 마침내 혼탁한 세상이 변화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 p.31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총알이 사방에서 날아다니는 전장에서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총알이 사방에서 날아다니는 전장에서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는 것입니다. 정죄라는 총알, 죄를 묻고 죄를 따지고 죄 값을 요구하는 정죄의 화살은 오직 예수 안에 있는 자들만이 안전하게 피할 수 있습니다. ‘예수 안에’란 바로 그런 뜻입니다. 왜 성령입니까? 성령님이 참호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보내주신 까닭이 바로 사방에서 날아오는 정죄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 p.103
왜 성령을 받아야 합니까? 육신으로 살면 육신으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왜 성령이어야 합니까? 성령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하나님과 소통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접속하려면 아이디와 패스워드가 필요합니다. 아이디는 예수님이고 패스워드는 성령입니다. 이것이 교회와 크리스천의 비밀입니다. 이것을 깨닫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교회를 다녀도, 몇 대에 걸쳐 믿음의 가문을 만들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 p.120~121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신 것과 성령님께서 나를 인도시하는 것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오시는 것도 나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것 역시 매 순간 나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내 안에 계시지만 내가 성령님의 인도받기를 거절하면 그분은 내 안에서 잠잠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그분의 뜻과 다른 결정을 내가 계속하게 되면 그분 내 안에서 근심하실 것입니다. 이따금 그래선 안 된다고 말씀하시지만 내가 귀 기울이지 않으면 성령의 음성은 내 목소리에 묻히고 맙니다. --- p.149
성령님이 바울이 가는 곳마다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위로와 환대가 아니라 결박과 환난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한 가지를 발견합니다. 성령님은 결박과 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알려 주시면서 그걸 피하라고 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앞에 있을 사실을 알려 주실 뿐 그것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바울에게 맡기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핍박을 받고 환난을 겪게 될 것이라는 음성은 여러 사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에 대한 반응과 해석은 각자 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