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는 벽에 기대어 서 있는 남자의 다리 사이에 바싹 다가섰다. 지한은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유희는 그의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올렸다.
“당신이 탐나. 더 알고 싶어졌어. 당신의 과거가 어쨌든, 지금의 당신은 너무도 매력적이야.”
지한이 숨을 몰아쉬었다. 유희는 그의 가슴에 댄 손끝으로 그가 몹시 긴장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장난하지 마십시오, 이사님. 전 그럴 생각, 조금도 없습니다.”
유희는 재빨리 병원 복도를 둘러보고 아무도 없는 걸 확인했다. 그녀는 손을 미끄러뜨려 지한의 허리 아래를 쓰윽 훑었다. 그가 움찔했다.
“선택은 내가 해. 당신은 주변 정리나 깨끗이 하면 돼. 특히 저 고은이라는 여자, 내 눈에 거슬리지 않게 해줘, 응?”
“비, 비켜주세요.”
“둘이 있을 땐 날 여자로 봐도 돼. 만지고 느끼고 냄새 맡고…… 어때, 근사하지 않아?”
이런 경우 남자가 얼마나 흥분하는지 유희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아이까지 낳은 남자치고는 지나치게 순진한 반응이지만, 지한이 벌겋게 물든 얼굴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만족스러웠다. 기대감이 엄청난 속도로 불어났다. 유희는 의도적으로 그의 입술에 시선을 고정하고서 자신의 입술을 혀로 핥았다. 그녀의 아랫배를 찔러오는 남자의 몸이 뜨겁게 고동치는 것을 충분히 의식하고서.
“당신과 나, 오직 둘뿐이야. 게임이 끝날 때까진 아무도 우리 사이에 끼어 들어선 안 돼. 고은이라는 여자, 어서 정리하도록 해.”
그 순간 지한이 그녀를 와락 밀쳐냈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겨우 말했다.
“믿을 수가 없어. 내게…… 이런 일이…….”
유희는 머리를 쓸어 올리며 싱긋 웃었다.
“기분 좋잖아?”
“천만에요! 이 세상에 여자가 당신 하나뿐이라 해도, 당신 같은 바람둥이와는 상종하지 않을 겁니다. 제가 거절해요. 그러니 지저분한 수작 부리지 말라구요!”
악을 쓰고 바락바락 소리 지르는 지한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유희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녀의 시선을 참을 수 없는지, 지한이 사납게 날뛰기 시작했다.
“왜요! 제가 못할 것 같습니까? 전 비서이지 섹스 도구가 아니란 말입니다!”
“누가 뭐랬어? 한번 하자고 요구하면 큰일 나겠네. 순진하기는.”
“뭐라구요?”
유희는 피식 웃으며 분노에 휩싸인 남자의 어깨를 다정하게 두드렸다.
“강한 부정은 긍정의 다른 표현이라고 하지? 당신 말 잘 알아들었으니까 이젠 진정해. 애들이 듣겠어. 너무 비교육적인 대화잖아.”
유희는 키득거리며 지한의 가슴을 손톱으로 눌렀다. 그녀의 허스키한 음성은 더욱 낮아졌다.
“진지한 씨, 비겁하게 도망치지 마. 난 한 번 목표로 한 건 끝까지 갖고야 마는 여자거든? 괜히 내 도전욕을 자극하지 말고 당신은 지금처럼만 해. 진지하게, 순진하게, 매력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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