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는 힘에의 의지라는 원리로 모든 시대의 현상을 설명하려고 하지만, 하이데거는 힘에의 의지라는 개념은 특정한 역사적 조건에서만 나타날 수 있는 개념이며 또한 특정한 역사적 시대의 현상들만을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라고 본다. 이와 관련하여 하이데거는 니체의 힘에의 의지의 형이상학은 근대에서만, 더 나아가 근대의 완성기에서만 나올 수 있는 사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니체가 세계를 힘에의 의지로서 기투함에 있어서 단지 서양의 오랜 역사, 특히 근대의 역사가 그것의 가장 은폐된 진행에 있어서 지향하고 있었던 것을 말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 p.115
니체가 니힐리즘을 궁극적으로 초감성적 가치의 설정과 구체적인 인간과 대지의 경멸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았던 반면에, 하이데거는 현대의 니힐리즘은 현대의 특정한 존재 이해, 즉 존재자 전체를 기술적 지배의 수단으로 보는 존재 이해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있다. 니체는 니힐리즘의 극복을 위해서 초감성적 가치라는 기만의 폐기와 인간이 적극적으로 주체가 될 것을 요구한 반면에, 하이데거는 인간이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주체로 자처하는 현대 기술문명에서 오히려 인간을 비롯한 존재자 전체의 고유한 가치와 의미는 박탈되었고 모든 것은 양화 가능한 에너지의 담지자로 전락하게 되었다고 보고 있다. --- p.136
하이데거는 “고상한 인간은 자신을 모험자로 느낀다”라는 니체의 말에 입각하여 융거의 모험의 사상과 니체의 사상이 상통한다고 본다. 이와 함께 하이데거는 ‘노동자’와 ‘군인’이라는 용어들은 형이상학적인 용어들이며 존재자 전체에 대해서 인간이 취하는 특정한 태도를 가리킨다고 보면서, 니체가 이미 19세기에 사회적·정치적 상황에 대한 관찰에 의해서가 아니라 존재자 전체의 본질을 힘에의 의지로 보는 형이상학적 인식에 입각하여 그러한 인간 형태가 나타날 것을 분명하게 예견했다고 본다. --- p.187~188
1938년에 하이데거는 나치 운동과 히틀러에 대해서 환멸을 느끼게 되고 더 이상 기대를 품지 않게 된다. 1939년부터 쓰인 하이데거의 글에서는 니체의 ‘힘에의 의지’를 규정하기 위해서 결의성이라는 개념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고 있다. 니체는 현대 기술문명을 극복하는 데 방향을 제시해 주는 사상가가 아니라 오히려 현대 기술문명을 정초하는 사상가로 해석되며, 니체의 ‘힘에의 의지’도 현대 기술문명을 근저에서 규정하는 맹목적인 지배의지로 해석된다. 그리고 나치즘도 자유주의나 볼셰비즘 못지않게 이러한 맹목적인 지배의지가 자기 확장을 위해서 사용하는 세계관으로 간주된다. 이때부터는 오직 횔덜린만이 현대 기술문명을 극복하는 참된 방향을 제시하는 시인으로 간주된다. --- p.437
최근에 니체의 철학을 민주주의와 다원주의를 철학적으로 정초하고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해석하면서 니체의 철학이 오늘날 갖는 의의를 모든 시민이 주권적인 개인으로서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다원성을 존중할 것을 주창한 데서 찾으려는 시도들이 여러 니체 연구자들에 의해서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니체가 오늘날 우리들에게 갖는 의의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고통을 근절해야 할 악으로 보는 오늘날의 정신적 상황에서 고통이 갖는 긍정적 의의를 설파하는 동시에 투쟁과 갈등의 바람직한 방식을 제시하면서 사람들을 강하면서도 기품 있는 인간으로 육성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했다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