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장면을 생각하고 있었다.
순간 노인이 갑자기 신사역 사거리로 들어섰다.
그러더니 자동차들이 저돌적으로 달리는 도로 한가운데를
목발을 짚은 채 건너가는 것이었다.
놀란 차들이 급정거를 하고 클랙슨을 울리고 난리가 났다.
노인은 그 소리와 동요에도 아랑곳 않은 채
절룩이는 발로 도로를 건너갔다.
그 황망함은 설명할 길이 없었다.
이런 무모한 횡단은 처음 본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희열이 있었다.
어떤 의미 모를 통쾌한 자유가 전해왔다.
도대체 이 노인은 어떤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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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거칠고 특이한 맨발의 소유자로만 알고 시작한 이 만남은 갈수록 이해하기 힘든 경지를 지향하고 있었다.
"동경에서 공부할 때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게 되었지요."
"그럼 김교신 선생이라고 아시겠네요?"
문득 이 노인이 꾸며낸 이야기는 아닐까 하여 슬쩍 물어본 것이다. 그럴 리는 없지만 하고 말이다.
"네, 그 이 이름은 들어 보았지요. 만나지는 못했지만."
"함석헌 선생하고 같이 동경 유학한 분인데..."
"우치무라 간조, 절대 평화, 절대 영생, 절대 자주, 자유."
우치무라 간조? 노인이 갑자기 우치무라를 외치는 순간, 그 동안 노인의 행태들에 대한 궁금증의 줄기들이 하나로 모아지면서 그 이유와 근원들을 알게 된 것 같은 기분에 젖었다. 신기하게도 그 이름 하나로 모든 것이 모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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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아무 상관 없다는 듯이 자신의 일에만 열중햇다.
"미스 춘향이, 미스터 이순신, Why two Korea."
이제는 촬영을 하면서 노인의 말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의 행색에만 치중하는 게 아니라
전하는 메시지에 관심과 귀를 기울이자,
그 내용들이 의미있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 딸. 아버지가 해방시키셨으니
영생, 자유, 자주. 그 사랑이 우릴 부르시네."
특히 학생들에게 많이 들려주는
"미스 코리아 유관순, 춘향이.
미스터 코리아 안중근, 이순신, Why two Korea"
이것도 가만 생각하니 매우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겉을 화려하게 꾸민 것이 미스, 미스터 코리아가 아니라
유관순, 안중근같이 나라를 사랑하고
진리와 자유를 위하여 자기를 내던져 희생한 분들이
진정한 한국인이며, 그런 분들이 있다면
왜(Why) 두개의 코리아(two korea),
즉 분단된 조국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노인은 젊은이들을 격려하지만
외제 모자라든지 비싼 귀걸이를 지적하고,
어린 학생들에게
유관순, 안중근, 이순신을 닮으라고 외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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