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후반전을 이제 막 시작한 대한민국의 중년 가장이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YTN 개국방송 앵커, 청와대 출입 기자를 하며 잘나가나 싶더니 2008년 10월 신임 사장 임명에 반대하다 회사에서 해고됐다. 6년이 넘게 회사를 쉬면서 해직 기자의 신분으로 기자협회장에 당선되어 일했고, 제빵사 자격증을 땄고, 소설을 썼다. 이때 쓴 소설 회중시계가 2015년 9월 출간돼 늦깎이 소설가로 데뷔했다.
스물아홉 때 제주도를 처음 가봤을 정도로 여행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런데 해직이라는 날벼락과 배낭여행을 윤허한 부인의 은총 덕분에 남미에서 30일 동안 가장이란 짐을 벗고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갖는 축복을 누렸다. 2014년 12월, 남미에서 돌아온 지 한 달 만에 대법원의 해고무효소송 최종심에서 승소하면서 YTN으로 다시 복직해 평범한 가장으로 복귀했다.
대한민국 ‘중년 가장’과 ‘자유’는 절대 연관 검색어가 될 수 없는 단어가 아니던가? 하지만 우연치 않게 나는 중년 가장의 한 사람이면서도 이 자유라는 단어와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마흔넷에 해직되면서 떠밀리듯 자유로운 시간의 바다 한가운데 놓였기 때문이다. ‘언론의 자유’라는 너무나 당연한 가치를 지키려다 얻은 것이니 참으로 자유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밖에 없겠다. 그리고 그 시간의 바다에 내동댕이쳐진 덕분에 여느 중년 가장이라면 언감생심 넘볼 수도 없는, ‘나’를 위해 떠날 자유를 꿈꾸게 됐다. - P12
세르조와 구이도 부자는 앞뒤로 앉아서도 끊임없이 대화를 나눈다. 옆집 개가 강아지를 낳았다는 식의 대수롭지 않은 화제로도 재미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녀 사이 같다....때로는 부자가 친구처럼 큰 소리로 격론을 벌이고, 때로는 사이좋은 연인처럼 대화를 이어간다.
아마 세르조와 구이도에게는 틀림없이 ‘저녁이 있는 삶’이 있었을 것이다. 가족 모두 고된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밥상머리에서 함께 따뜻한 음식과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저녁 말이다. 그런 수많은 저녁이 있었기에, 아버지와 아들의 시간이 이토록 깊어지고 부자의 대화가 무르익었을 것이다. - P54
어느새 나도 오십 줄에 들어섰다. 삶이란 본디 내던져진, 서글픈 것이므로 나이가 든다고 더 서글프지는 않다. 어느 시에서 말한 것처럼 “오십은 말랑하고 구수하고 정겹지만 누구도 선뜻 손을 내밀지 않는 화려한 뷔페상의 콩떡 같다”는 정도의 느낌일 뿐이다.......나는 어쨌든 아직 잔칫상에 남아 있다는 데서 의미를 찾는 낙천주의자니까. -P109
라이헤는 소원대로 지금은 박물관 정원이 된 나스카 땅에 묻혔다. 그녀의 묘는 봉분 하나 없이 나스카 평원처럼 평평하다. 갈색 묘비에는 나스카 지상화 가운데 하나인 거대한 새 콘도르가 새겨져 있다. 어쩐지 라이헤의 영혼까지 죽어서도 이곳을 떠나지 않고 콘도르처럼 하늘을 훨훨 날고 있을 것만 같다. 그녀의 무덤 앞에서 생각해 본다. 나도 나 자신과의 즐거운 싸움을 이어가며 오십의 강을 건너겠노라고. -P116-117
해직 기자의 처지는 돈은 없고 시간은 남아돌던 20대 때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야간 버스를 이용하면 무엇보다 잠잘 시간에 버스를 타니 숙박비도 들지 않는다. 한마디로 일석이조다. 그러나 버스 안에서 12시간 이상 버틸 수 있는 느긋함이 없다면, 일석이조를 선택한 대가는 고통이 될 것이다.......오후 2시 코스코에 도착했다. 2시간이 연착되어 16시간이 걸렸다. 대한민국의 국방부 시계나 페루의 야간 버스 시계나 거꾸로 매달아도 돌아가기 마련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지루한 버스 여행도 다윗 왕의 기나긴 영욕의 시절처럼 지나갔다. 덕수와 나의 해직의 시간도 더디게 지나가고 있다. - P183
이쯤 되니 지사장과 민박집 주인은 덕수와 내 정체가 몹시 궁금한 눈치다. 사오정 아저씨 둘이 출장도 아니고, 안식년도 아닌데 남미로 여행을 왔다는 것이 수상할 수밖에. 덕수와 나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본다. 실업자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해직 기자라고 말해야할까? 실업자든, 해직 기자든 구차하기는 매한가지다. 태평양을 건너 남미로 온 해직 기자 둘! 21세기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 군사정권 때나 있었던 해직 언론인이 존재한다는 건 불편한 진실이다. 그 불편한 진실을 이역만리에서 만난 해외 동포에게 밝히는 것이 구차하다. 우리는 말없이 코카차를 마셨다. - P192-193
이 푸른 장관을 담아야 할 내 카메라는 지금쯤 볼리비아 중고시장에 나와 있을 것이다. 에콰도르에서 소매치기의 손에 들어간 덕수의 아이폰도 이미 다른 사람 명의로 사용되고 있겠지. 덕수가 셀카 봉을 꺼내 들었다. 카메라 두 대를 도난당했지만 우리에겐 아직 한 대의 카메라가 남아 있다. 나는 복대에서 아이폰을 꺼냈다. 덕수가 셀카봉에 아이폰을 장착한다. 티티카카 호수를 뒤에 두고 셀카봉 끝에 달려 있는 휴대폰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 본다. - P254-255
1년 동안 남미만 여행하겠다니? 여행지를 돌며 인증 사진 찍기에 바빴던 한국 아저씨들은 어쩐지 초라해진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다. 한국 아저씨의 옹졸함을 보여 주겠다. 삶의 여유가 물씬 풍기는 그녀를 꼭 시험해 보고 싶었다. “프랑스 사람이라면, 레지스 드브레 아니?” “레지스 드브레? 아니, 몰라.” “여기는 어떻게 왔어?” “체가 좋아서.” “그가 잘 생겨서 좋아?“ “아니.” “I like him because he is right!" 우문현답(愚問賢答)이 달리 없었다. 웃자고 한 질문에 정색하며 답한 그녀의 한마디가 심장을 파고든다. -P288-290
한 장 한 장을 마무리할 때마다 남미의 풍광보다 우리 사회의 모습이 더 떠오르는 건 내 선입관 때문일까 아니면 저자의 글재주 때문일까? 정작 그가 여행한 곳은 안데스의 산과 호수가 아니라 40대에서 50대로 건너가는 강가 아니었나 싶다. 그는 스스로의 자유 뿐 아니라 함께 세상사는 사람들의 자유에 대해 무거운 성찰을 하면서 그 강을 건넌 기자다. ‘나 자신과의 즐거운 싸움을 이어가며 오십을 넘기겠다.’는 저자의 결심에 마음이 든든하다. - SBS 8시 뉴스 김성준 전 앵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