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좋아하지만 몸도 형편도 따라주지 않아 상상 여행으로 대신할 때가 많다. 이번에는 고구려로 순간 이동해 즐거운 여행을 했다. 그동안 상상 여행을 거쳐 동화 《떠버리 무당이와 수상한 술술 씨》 《늑대 왕 핫산》 《반지엄마》와 청소년 소설 《루케미아, 루미》 《어느 날, 신이 내게 왔다》 등을 썼다.
그림 : 홍정선
날마다 그림으로 아이들을 만난다. 때론 어릴 적 나를 만나기도 한다. 그동안 그림으로 만난 책은 《하늘을 쫓는 아이》 《천천히 도마뱀》 《미라의 저주》 《박수근, 소박한 이웃의 삶을 그리다》 《우리 동네 전설은》 《오월의 달리기》 《준비됐지?》 등이 있다.
감수자 : 전국초등사회교과모임
전국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모여 활동하는 교과 연구 모임. 어린이 역사, 경제, 사회 수업에 대해 연구하고, 학습 자료를 개발하며, 아이들과 박물관 체험 활동을 해 왔다. 현재는 초등 교과 과정 및 교과서를 검토하고, 이를 재구성하는 작업을 통해 행복한 수업을 만드는 대안 교과서를 개발하는 데 힘쓰고 있다.
지난달 이련을 태자로 책봉하자는 말이 나왔을 때 귀족들 대부분이 반대했다. 장차 나라를 다스릴 태자는 용맹스럽고 지혜롭고 너그러운 사람이어야 한다. 이련 왕자는 아직 어리니 왕재의 자질을 보일 때까지 태자로 삼는 건 미루자. 아기 없는 왕후에게서 왕자가 태어날지도 모르니 좀 더 기다려 보자……. 한마디로 이련은 태자가 되기엔 자질이 부족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때 반대에 앞장선 사람이 바로 고추가였다. 이련은 자기가 태자가 되면 고추가가 어떤 얼굴을 할지 궁금했다. 반드시 태자가 되어 본때를 보여 주고 싶어졌다. 자질이 부족하다 했던 고추가와 귀족들 코를 납작하게 해 주리라. 이련은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 일을 훌륭하게 해내리라고. --- p.26-27
“이봐, 왕자님! 왕자라고 거들먹거리지 말라고! 태어날 때부터 하늘이 신분을 갈랐겠니? 왕족이니 평민이니 다 사람이 정한 거잖아?” 해달비는 이련이 대꾸할 틈도 주지 않고 휙 돌아서 갔다. 마로가 이련을 힐끗 보고는 잠시 머뭇거리다 그 뒤를 따랐다. 이련은 못 박힌 듯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사사건건 걸고넘어지는 해달비가 거슬렸다. 신분을 알렸는데도 말을 높이지 않는 것부터 그랬다. 하지만 그 애가 하는 말마다 가슴을 콕콕 찔렀다. 왕손은 태어날 때부터 귀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태어날 때부터 하늘이 신분을 갈랐겠냐고? 그런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다. 이련 안에서 무언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이련은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채 돌아섰다. --- p.71-72
“그래서 큰 굿을 준비하신다면서요? 태왕께서도 가뭄을 물리치고 백성들 마음을 달래려고 사무를 찾으시는 거예요. 저와 함께 가세요.” “가뭄을 끝내기 위해서라면 더욱 내가 여기 있어야지요.” “굿은 왕도에 가서 하셔도 되잖아요. 신궁의 다른 무관들과 힘을 합쳐도 되고요. 나라굿을 하자고 태왕께 말씀드릴 수도 있고요.” “그게 될 거라고 보십니까?” 마로 할아버지가 이련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이련은 그 눈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련도 자신할 수 없었다. 왕도에는 스님이 있고 형님은 백성들에게 불교를 믿으라고 했다. 아무래도 나라굿은 힘들 것이다. --- p.81-82
이련이 목소리를 높이자 아달구가 움찔 입을 다물었다. 또 성질이라도 부릴까 봐 조심하려는 눈치였다. 이련은 차분하게 말하려고 애쓰면서 자신이 내린 결정을 설명했다. “내 말 들어 봐. 나는 태왕께 사무를 지켜 달라고 부탁하려고 했어. 근데 지금 사무의 손자가 혼자 위험 속으로 뛰어들려고 해. 그럼 도와야 해? 모른 척해야 해?” “하지만 왕자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시면…….” “거란이 고구려의 변경을 약탈하고 백성들을 자기네 땅으로 끌고 가고 있어. 내가 군사를 보내 막을 수는 없어. 그런데 내 동생이 마침 멀지 않은 데 있어. 동생이 가서 백성들을 구하려고 노력한다면? 아달구라면 그 동생을 야단만 칠 거야?” 이련이 차근차근 따져 묻자 아달구의 눈이 점점 더 커졌다. 이련의 말에도 점점 더 힘이 실렸다. “부처님은 목숨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라고 해. 형님은 부처의 말씀을 나라 안에 퍼뜨리려고 해. 부처님 말씀처럼 사람을 구하는 건 옳은 일이야, 아니야?” 이련의 말에 마로마저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달구가 감탄하며 물었다. “왕자님, 어쩌다 이리 달라지셨대요? 지난 며칠 사이 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어요?”
강력한 고구려를 꿈꾸며 불교를 받아들인 소수림왕 시대를 되살려 내다! 나라에서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지독한 가뭄이 계속되자 굶주린 백성들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소문까지 나돈다. 태왕의 명으로 가뭄을 해결하기 위해 사무를 찾아간 왕자 이련은 목숨을 위협받으면서도 가뭄을 끝낼 진혼굿을 올리는 사무를 보며 부처의 가르침만이 옳다는 믿음이 흔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