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뭐야? 이리 내.” 짝! 엄마가 내 등짝을 때리고는 강제로 휴대폰을 빼앗았다. “이게 왜 너한테 있어? 선생님이 잃어버리셨다며?” “다 알면서 뭘 물어?” 잘못했다고 싹싹 빌어도 모자랄 판에 나는 그런 말이나 하고 있었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니까 들통 나는 건 시간문제였는지도 모른다. 내 이야기를 다 들은 엄마의 표정은 싸늘했다. --- p.23
“엄마 아빠도 인정할 거야. 주말 부부로 지냈을 때가 훨씬 행복했다는 걸. 덕분에 내 피부 닭살로 변한 적 많았고 가끔 내가 친딸 맞나 싶은 생각도 들긴 했지만 나름 괜찮았어. 근데 이게 뭐냐고. 나도 더 이상 스트레스 쌓여 못 살겠어. 공부에도 방해되고 내 정서에도 엄청 안 좋은 영향을 끼쳐. 보고 배운 게 엄마 아빠 싸우는 거뿐이라서 나도 점점 폭력적으로 변하는 거 같다고. 공부하다가 쉽게 짜증나고 안 된다 싶으면 막 집어 던지기 일쑤라고.” --- p.45-46
늘보는 나보다 일찍 학교에 나와 있었다. 말짱해 보였다. 나는 늘보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봤다. 늘보는 공부하다가 앞에 앉은 애가 지우개를 떨어뜨리자 느릿느릿 지우개를 주워 주었고, 쉬는 시간에 느릿느릿 칠판을 닦았고, 청소 시간에 느릿느릿하지만 꼼꼼하고 깨끗하게 청소를 했다. 문득 느리다는 건 사는 데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왜 나는 느리다는 이유만으로 늘보를 장난감 취급했는지 모르겠다. --- p.72-73
나는 밥맛이 싹 달아나고 속도 메슥거리는데 아빠는 방귀 냄새가 향기롭다며 코를 큼큼거렸다. 심지어 바깥에서도 남을 의식하지 않았다. 엄마 아빠한테 나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벌써부터 그러는데 동생이 태어나면, 도형이 말마따나 나는 완전히 찬밥 신세! 아니 내다 버릴 쉰밥이 될지도 모른다. 으악, 생각하기도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