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적으로, 우리 전통사회에서 선비는 자신들이 처한 시대에 따라 그 현실을 직시하고 대응하는 모습에서 서로 다른 양상을 드러냈다. 즉, 삼국과 고려시대의 선비들은 뛰어난 문장을 연마하는 사장학에 치우친 반면, 성리학적 유교사상을 받아들인 선비들은 도덕적 의리와 절의에 근본하는 도학(道學)을 지향하는 면이 강했다. 때문에 그들의 시국관이나 출처관은 분명 다르게 전개되었다. 우리가 말하는 참다운 선비상이란 바로 도학을 지향한 선비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국가에 대한 의리나 절의를 지키며 자주적 시대의식을 표명하였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그들의 학문과 사상을 통해 민족의 문화적 정체성과 정신적 가치, 나아가 그들이 지향한 현실의식이 무엇인지를 더 구체적이고 치밀하게 연구해야 할 것이다. ---「2장. 선비의 유형과 현실 대응 양상」중에서
그들이 꾸려갔던 삶은 학문을 통해서 수신하고 실천하는 존재로서의 선비의 그것이었다. 말하자면 그들은 여성선비였던 것이다. 여성선비 혹은 여성학자로서 그들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문제로부터 출발하였다. 그 연장선상에서 여성 역시 유교의 이상적인 인간으로서의 ‘군자’,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이미 당대의 학자들에게 여성군자로 평가 받고 있었다. 궁극적으로는 여성들도 끊임없는 학문과 수양을 통해서 요임금·순임금·주공·공자와 같은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지식인 여성이었던 임윤지당과 이사주당. 그들은 끊임없는 심성 수련과 도덕 실천을 통해 현실에서의 여성을 넘어 보편적인 인간으로 나아가고자 하였다. 또 남성과 여성은 다르지 않다는 강한 의지로 자아의식을 구축해가고 있었다. 이처럼 조선후기에 들어서면서 유교적 세계관이라는 큰 틀 속에서이긴 하지만 여성들, 특히 지식인 여성들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일어났으며, 학문을 통해서 수신하고 실천하는 존재로서의 여성선비를 인정하게 되었다 ---「3장. 여성선비와 여중군자: 조선후기 지식인 여성의 자의식」중에서
시대가 아파하면 지식인의 고뇌도 깊어가기 마련이다. 물론 어느 시대를 가리지 않고 정당성이 없는 정권에 영혼을 판 지식인들(spiritual homeless)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식인들은 늘 남들보다 더 아파했다. 그 가운데서도 국난기 문인의 삶은 더욱 고통스러웠다. 그들은 투사들이 아니다. 문인들은 “서로를 가볍게 여기는 경향” 때문에 조직을 갖추지 못한 인문주의자일 뿐이었다. 서양의 경우에 문인들은 정치 고문이 되거나 군주의 사관(史官)이 될 목적으로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배우던 시대가 있었다. 중국의 사대부는 서양 문예부흥기의 고전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고전에 관한 인문주의적인 교양을 지녔으며 아울러 일정한 시험을 거친 문학자와 비슷했는데, 한국사에서 문인도 중국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치 혼돈의 시대가 오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문제로 고민하기 시작하고 그 시대의 추앙받는 지식인들의 입을 바라보며 그 대답을 기다린다. 지식인이라고 해서 그런 대답을 늘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고단한 시대를 살아야 했던 황현(黃玹)의 절명시(絶命詩)가 당대 지식인의 어려움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