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이중언어 연구가인 그로장(Francois Grosjean: 1946~ )은 이중언어와 이중언어자에 대한 학술적인 이야기를 쉽게 전달해 준다. 그는 사람들이 이중언어를 대할 때 흔히 보이는 현상을 신화라 부르며 다음과 같이 거론했다(Grosjean, 2012).
- 이중언어는 흔하지 않은 현상이다.
- 이중언어자는 매일 두 가지의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 이중언어자는 귀찮으면 다른 언어로 바꾼다.
- 이중언어자는 어렸을 때 두 가지(혹은 그 이상) 언어를 배운다.
- 이중언어자가 되면 자아가 분열되기 쉽다.
- 이중언어자들은 감정표현만은 모국어로 한다.
- 이중언어자는 다문화자이다.
- 집과 학교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다른 이중언어자의 경우, 학교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집에서도 사용하게 해 주는 것이 좋다.
이런 신화가 모두 현실과 맞을까? 단적으로 말하자면 이중언어는 세계적으로 흔한 현상으로, 세상에는 이중언어자가 드글드글하다.
31~32쪽, 제1장 이중언어 어린이에 대한 오해와 신화
류메이의 진술은 이중언어자가 흔히 겪는 정체성(identity)과 관련된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류메이의 딸은 인터뷰날에 중국 여성의 전통 의상인 치파오와 중국식 조끼를 빨간색으로 곁들여 입고, 중국 여자아이들이 흔히 동그랗게 말아 올리는 양갈래 머리를 하고 찾아왔다. 하지만 류메이의 딸이 스스로가 중국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그런 차림을 한 것이 결코 아님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수줍음을 많이 탄다며 아이는 처음에는 마이크 앞에서 계속 웃기만 했는데, 그런 와중에도 처음으로 건넨 인사는 “니하오(?好!)”가 아니라 “안녕하세요”였다.
65쪽, 제3장 한-중 이중언어 어린이의 분포와 이들의 언어
이중언어 어린이의 가장 큰 장점은 단순하게 두 가지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능력보다, 메타언어적 지식 체계를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한-중 이중언어 어린이에게서도 이런 예는 숱하게 보인다. 예를 들어, 중국어에서는 전기 기구를 뎬(?)이 들어간 어휘로 곧잘 표현한다. 중국어로 컴퓨터는 ‘??’, 전화는 ‘??’, 텔레비전은 ‘??’, 영화는 ‘?影’이라 하는데, 굳이 의미를 따져 보면 각각 전기두뇌, 전기말, 전기보기, 전기그림자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겨우 네 살밖에 되지 않은 한-중 이중언어 아이가 e-book을 처음 보고서 한 말이 바로 ‘??’이다. 즉 ‘전기책’이라는 의미를 자기 나름대로 표현한 것이다.
114쪽, 제5장 이중언어라는 과정에 대한 사회적 무시
맥마혼(Ben Mcmahon)이라는 호주 출신의 한 학생은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졌는데, 깨어났을 때에는 모국어인 영어가 아니라 잠시 배운 적이 있었던 중국어로 의사 표현을 했다고 하여 화제가 되었다. 만약 중국어를 배우지 않았다면 의식을 회복한 뒤 어떻게 의사소통했을지 궁금해지는 사건이다. 이런 특이한 경험으로 인하여 중국 사회에서 맥마혼은 꽤 유명한 외국인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잠시 배운 외국어라고는 하지만 위기의 순간에 모국어를 제치고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가 되려면 어떤 요소가 필요할까.
183쪽, 제8장 이중언어 어린이의 언어 발달
EBS에서 제작한 언어발달과 관련된 프로그램에서는 한국인이 외국어 학습과 관련하여 얼마나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어수룩해 보이는 한국 중년 남성의 화면을 보면서 이 사람의 영어 실력이 어떤지를 평가해 달라는 부탁에, 한국의 학부모들은 발음이 딱딱 끊어졌다, 발음이 좋지 않다, 우리 아이가 저 사람보다는 영어를 잘했으면 좋겠다 등으로 답변을 내놓았다. 반면에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은 같은 화면을 시청한 후, 의사도 잘 전달하고 내용이 분명했다, 높은 수준의 단어를 사용했다 등으로 후하게 평가했다. 점수로 평가해 달라는 부탁에 한국의 학부모는 40~50점, 영어가 모국어인 한 교사는 90점대 후반의 점수를 주었다. 뒤이어 밝혀진 진짜 화자는 바로 반기문 UN 사무총장이었으며 이 화면 내용은 바로 21세기 명연설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UN 사무총장 연설이었다.
215~216쪽, 제9장 이중언어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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