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현실을 떠나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에만 묻히거나 갇혀 있으면 안 됩니다. 현실 너머의 세계를 바라보며 새로운 꿈이 춤추게 하고, 그 꿈이 현실이 되는 경험을 자꾸자꾸 해야 합니다. 꿈은 영혼이 살아 있음을 드러내는 증표이기 때문입니다.
몸이 굳어지고 생각이 굳어지면 꿈도 사라집니다. 지나간 경험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감각에 몰두하고, 과거의 시간에 머물지 않고 미래의 시간을 향해 걸어가는 것… 나이를 잊고 계속 살아가십시오. 꿈이 그대를 춤추게 하십시오.
지금 잠시 지쳐 있는 이들에게, 삶의 우선순위를 잊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 책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열심히 내일을 향해 뛰어가는 이들에게는 더운 날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주는 한 줄기 바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뭐든지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가슴 뛰는 꿈이 있고, 마음 나눌 좋은 사람이 곁에 있다면 언제나 청춘처럼 힘이 넘칠 것입니다.
꿈이 그대를 춤추게 하십시오. ---머리말 중에서
꿈이 있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다시 꿈이 자라게 하는 꿈아저씨 고도원의 마음마사지
배움의 길에 서 있는 청년들에게, 특히 어려운 현실을 뚫고 가야만 하는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1807년,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 독일의 대학교수 피히테가 베를린 대학에서 강연을 했다. 제목이 그 유명한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다. 그날의 강연은 오늘 우리 젊은이들에게도 꼭 필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19세기 당시 독일은 나폴레옹의 군대가 휩쓸고 지나가 초토화된 상황이었다. 지금 우리나라가 경제위기, 실업 문제 등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당시의 독일은 완전히 폐허 상태였다. 온 나라가 잿더미가 되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마저도 극한으로 내몰린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그런 절망 속에서 피히테 교수가 일어섰다.
“절망의 시대에 공장 몇 개 짓고 경제를 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정신이고 꿈입니다.”
피히테 교수의 강연에 담긴 핵심 메시지였다. 정신도 보통 정신이 아니라 ‘순결한 정신’, 꿈도 보통 꿈이 아니라 ‘좋은 꿈’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메시지를 어떤 이들은 애국이라고도 하고 애족이라고도 표현하겠지만, 가장 핵심은 바로 독일 청년들에게 ‘꿈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1장 꿈도 자란다 : 좋은 꿈을 찾아서」 중에서
나는 도시락을 싸지도, 제대로 된 양말을 신지도 못하고, 하루 왕복 20킬로미터, 50리 길을 왕복 두 시간 반씩 모두 다섯 시간 넘게 걸어 학교를 다니던 아이였다.
초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이었던 권금순 선생님은 점심시간이면 선생님 댁에 가서 도시락을 가져오라는 심부름을 시키셨다. 선생님 댁에 도착하면 선생님의 어머님께서 따뜻하고 하얀 쌀밥에 맛있는 반찬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도원이 왔구나.”
눈물 나게 맛있는 밥으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교실로 돌아가는 길, 볼록해진 건 배만이 아니었다. 따뜻한 포만감과 행복감으로 가슴까지 부풀어올랐다.
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 한글을 깨우쳤다. 초등학교 3, 4학년 책까지 다 읽고 학교에 들어갔으니 겨우 ‘기역’ ‘니은’ 하던 아이들하고는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반장이 되긴 했는데, 숫기가 없는 학생이었다.
반장이다 보니 수업 시간에 책을 읽게 되었다. 한자리에 똑바로 서서 책을 읽는 내게 선생님은 “도원아, 반장은 이렇게 선생님처럼 왔다 갔다 하면서 책을 읽는 거야”라면서 내 등을 밀어주셨다. 그 말씀과 손짓이 내게는 엄청난 전환점이 되었다. 숫기 없던 내게 부족한 통솔력이랄까, 담력을 키워주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 것이다.---「1장 꿈도 자란다 : 나의 초등학교 1학년 선생님, 권금순 선생님」 중에서
바이칼 명상 여행 때의 일이다. 겨울 바이칼 호수를 뒤로 하고 귀국 준비를 하게 되었다. 일
행들이 시베리아에서 몽골 울란바토르로 돌아와 비행기를 타기 전 잠시 휴식공간에 모여 쉬고 있었다. 그때 오랜 여행의 피로가 쌓인 탓에 한 목사님께서 몸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러자〈깊은산속 옹달샘〉에서 향기명상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김윤탁 박사가 그분의 손과 머리를 부드럽게 만져드렸다. 한 곳 한 곳 사랑과 정성이 담긴 손길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목사님이 오열을 터트렸다. 가슴속에서 맺혀 있던 무언가가 터져 나오듯 격렬한 울음이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하고 크게 놀랐다. 하지만 나는 그 눈물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남자로 산다는 것, 이 시대의 책임 있는 목회자로 살아가는 삶의 고단함과 무게감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고단하고 긴장된 삶에서 맺혀 있던 것들이 따뜻한 사랑의 손길에 녹으며, 왈칵 눈물로 터져 나온 것이다. “제 평생에 이런 눈물을 처음 흘렸습니다. 어떤 힘이 있기에 이렇게 눈물을 흘렸는지 모르겠네요.”
남자는 울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통념을 깨고 가슴 깊이 쌓여 있던 찌꺼기를 모두 털어내서일까. 목사님의 목소리는 한결 가벼웠다. ---「2장 좋은 사람을 만나라 : ‘좋은 사람’을 만나는 비결」 중에서
단거리 육상의 신기록 제조기라 불렸던 칼 루이스에게는 잘 알려진 일화가 있다. 그는 100미터 경주에서 80미터 지점에 오면 항상 씨익 웃었다. 그 이유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말했다.
“나머지 20미터는 웃기 때문에 더 잘 달릴 수 있다.”
단거리 선수에게 마지막 20미터는 이를 악물고 죽어라 달려야 할 최후의 순간이다. 잔뜩 찡그리기 쉬운 그 고통의 순간을 오히려 웃으며 달리면 더 잘 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좋으니까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니까 좋은 일이 생긴다”는 말과도 통한다.
매일〈아침편지〉에서 마지막에 보내는 인사가 있다.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어떤 이는 “딱히 웃을 일도 없는데 억지로 웃으라는 거냐”라고 말하기도 하고 “형식적이고 가식적으로 웃는 게 무슨 의미가 있죠?”라고 묻기도 한다. 물론 일부러 웃는 것보다는 정말 즐거워서, 기쁨이 차올라서 웃는 웃음이 더 아름답고 행복하다. 그렇다면 ‘기쁨이 차오르는’ 웃음은 언제 가능할까? 바로 자기 안에 웃음의 저장고가 있고, 의식의 수준이 높을 때이다.---「3장 나는 내가 좋다, 나는 네가 좋다 :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중에서
이처럼 많은 양의 강물을 품으면서 어떻게 바이칼 호수는 그 오랜 세월 맑음을 유지하는 걸까.
그 해답은 ‘에피슈라’에 있다. 에피슈라는 바이칼에 살고 있는 작은 새우다. 육안으로 보면 미세한 모래알갱이처럼 작아서 잘 보이지 않는다. 현미경으로 봐야만 비로소 새우 모양의 에피슈라들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그 에피슈라들이 호수를 더럽히는 이물질을 다 삼켜서 정화시킨다. 어떤 강력한 약품이나 전기 등을 이용해서 물을 정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육안으로도 보이지 않는 그 작은 생명체들이 물을 맑게 하는 정화의 주인공인 것이다.
바이칼 호수에서 만난 이 에피슈라는 나에게 강한 영감을 주었다.
‘내 영혼의 우물에도 에피슈라가 필요하다.’
바이칼 명상 여행에서 얻은 화두였다.
가뭄이 들면 보통 우물은 바싹 마른다. 흐르던 강물도 끊기고 연못의 바닥도 갈라진다. 영혼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메마르면 영혼의 우물에 물이 고이지 않는다. ---「4장 천천히, 자연의 품에서 걷기 : 바이칼 호수의 에피슈라」 중에서
어느 유명 골프선수가 긴 슬럼프에 빠져 있을 당시 이런 말을 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운동하는 법을 알려주셨지만 휴식하는 법은 가르쳐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슬럼프를 이겨내기가 어렵다는 고백을 했다. 최고의 골프선수에게도 휴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말이다. 높은 산에 오르는 사람일수록 쉼이 필요하다. 쉬지 않고 오르기만 하면 어느 순간 갑자기 강제로 멈춰 서게 되는 순간이 온다. 쥐가 나거나 심각한 근육통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도전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지금은 살벌한 경쟁의 시대여서 사람들은 남보다 더 열심히 뛰려고 애쓴다. 그래서 시간에 쫓겨 주위를 둘러볼 여유조차 없이 달려나간다. 사람이 시간을 관리하는 게 아니라 시간이 사람을 쥐고 흔든다. 이른바 ‘시간병’에 걸리는 것이다. 이는 마치 시간이 달아나는 것 같아서 가속 페달을 밟으며 시간을 따라잡으려는 강박증이다. 그 시간병이 몸과 마음에 병을 일으키고 인생을 나락으로 몰고 간다.
속도와 경쟁만으로 인생의 승자가 될 수 없다. 열심히 달리는 중에도 틈틈이 잠깐 멈추어 휴식의 시간을 만들어야 슬럼프, 위기의 순간을 이겨낼 수 있다. 몸과 마음이 방전되어 한 걸음도 뗄 수 없는 상황이 오지 않도록 미리 충전하는 것이다. 더 멀리 더 오래 가기 위해서다.---「4장 천천히, 자연의 품에서 걷기 : 휴」 중에서
2010년 4월 23일 꿈에도 그리던〈깊은산속 옹달샘〉의 개원을 하루 앞두고 충주에서 구제역이 발생했다. 충주시청에서도 대책회의를 열었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모든 준비는 완료되었고, 모든 비용도 지불되었다. 만반의 준비를 마쳤으므로 1만 2천 명이나 모이는 행사를 내일 치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필 충주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것이다. 서둘러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날 밤 11시 30분, 눈물을 머금은 결정을 내렸다.
‘개원식 무기 연기!’
마치 예전에 톱기사를 5분 만에 쓰던 기자가 된 기분으로 서둘러 밑글을 다시 썼다. 그때 느낀 것이 고독감이었다. 온전히 혼자 판단하고 감당해야 했을 때, 더구나 갑작스레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는 기도할 시간조차 없음을 느꼈다.
‘아! 기도는 미리 해야 하는구나.’
꿈을 가진 사람에게는 절대고독의 순간이 올 수밖에 없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기 때문이다. 처음 길을 만드는 사람이 맞닥뜨려야 하는 숙명의 시간인 것이다. 꿈을 가진 사람, 처
음 길을 내는 사람은 도처에 장애물도 많고, 사고의 점핑이 크기 때문에 혼자 동력을 만들고
혼자 꿈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모두 혼자 책임져야 한다. 그때 고독감에 뼈가 시린다.
---「5장 꿈의 영토를 넓혀라, 마음의 영토를 넓혀라 : 꿈을 가진 사람은 고독하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