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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시간 그리고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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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시간 그리고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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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7년 10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139쪽 | 328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01071916
ISBN10 8901071916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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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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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감각이 뛰어나거나 없거나
자동차 한 대가 도로를 따라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장님 영화감독, 벙어리 오페라 가수, 귀머리리 지휘자, 그리고 미각도 후각도 잃어버린 요리사가 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출연한 연극을 만든 작가의 집까지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자동차에 탈 다섯번째 사람입니다.!”
위의 글에 비추어보면 작가에게는 감각이 없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 p.18

07 사과
마침내 모든 사람이 문상을 마치고 자기 차례가 왔는데도 남자가 침묵을 지키고 있자 친구의 아내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남자는 간신히 말을 꺼냈습니다.
“부인, 오랫동안 생각해 봤지만 어떤 위로의 말이 적절한지 찾을 수 없었어요. 처음에는 제가 소심해서 그러려니 했습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상당히 내성적인 사람이거든요. 이런 저의 모습이 옳지 못하다는 건 잘 알고 있답니다. 제가 부끄럼을 많이 타는 건 사실이지만 상황에 어울리는 말 정도는 고를 줄 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오늘은 정말 예외군요. 그 이유도 모르겠고 말예요. 슬픔에 빠져 계신 부인 앞에 지금 멀거니 서 있는 제 기분이 어떤지 당신은 모르실 겁니다. 분명 위로의 말을 기다리고 계실 텐데 말예요. 솔직히 저는 지금 이 상황이 아주 난감하고 불편합니다. 오늘 안타까운 심정으로 장례식을 죽 지켜봤지만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몰라 그냥 이렇게 제 입장을 부인께 말씀드리고, 저 역시 몹시 당혹스럽다는 점을 알리는 것이 맞는 거겠죠. 슬픈 눈으로 말없이 앉아계신 부인을 지켜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상상조차 못하실 겁니다. 차라리 제가 부인의 입장이 되었더라면 이렇게 애타는 일도 없었겠죠. 오늘처럼 난처한 입장에 놓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정말, 정말로 몰랐습니다.”
남자의 말을 듣고 있던 부인이 대답했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 pp.30~32

20 뛰어난 마술사
몹시 화가 나 심한 모욕감마저 느낀 마술사는 자신의 솜씨를 마음껏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번개의 신이 뭔가 일이 못마땅할 때 세상을 향해 벼락을 날리듯이 심술 난 마술사는 토끼도, 모자도, 극장 주인도, 조명기사도, 매표소 직원도, 관객도, 의자도, 은막도, 심지어 무대를 비롯해 마을 전체를 자신의 마술로 사라지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아직 분노를 삭이지 못한 마술사는 이 이야기의 결말도 사라지도록 마술을 부렸습니다. 따라서 저는 친애하는 독자 여러분에게 얼른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시라고 알려드리는 바입니다. 이제 다음 몇 줄까지 사라지고 나면 백지만 남게 되어 독자님들을 허탈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죠. 여전히 자신의 일에 충실한 마술사가 저렇게 건재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 pp.56~57

40 우정
어떤 남자가 있었습니다. 남자는 자신과 가장 절친한 친구와 일주일에 한 번씩 카드놀이를 즐겼는데. 게임을 할 때마다 단 한 번도 친구에게 져본 일이 없어 마음 한구석이 늘 불편했습니다. 그러나 친구가 자신에게 늘 게임에 져준다는 사실을 남자는 꿈에도 알지 못했습니다. 친구는 게임에서 이겼을 때 느낄 수 있는 희열을 남자에게 선사하기 위해 게임에 져주는 거였죠.
두 사람은 일요일 오후마다 게임을 즐겼는데, 둘의 목표는 언제나 같았습니다. 바로 카드놀이에서 지는 것이었답니다.
--- pp.96~97

46 꿈
옛날에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꿈에서 깨어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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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트리아스 데 베스의 이 책은 미니픽션의 특징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작가는 프롤로그를 통하여 이 작품이 뒤집어보기, 아포리즘, 미니픽션이라는 장르를 통해 탄생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 ‘뒤집어보기’는 다양성의 관점으로 연결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았던 자신의 방에서 물구나무서기를 했을 때, 그 방이 어떻게 보였는가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아포리즘’은 이 책이 우리 인식의 일대 전환을 통해 삶의 지혜를 선사하고자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미니픽션’은 작가가 경제적인 언어와 열린 결말을 통해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제공하려고 시도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한 가지 예를 들겠다. 본문에는 〈꿈〉이란 제목의 작품이 있다.

옛날에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꿈에서 깨어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위의 글을 읽는 독자는 ‘도대체 이게 무슨 작품인가?’ 하며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왜냐하면 꿈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 내용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보르헤스를 연상한다. 그리고 여기서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과연 그 남자는 누구일까? 꿈에서 깨어난 꿈이란 무슨 의미일까? 어떤 꿈을 꾸다가 깨어난 꿈을 꾼 것일까? 누군가강 옛날의 한 남자가 굼에서 깨어나는 꿈을 꾼 것은 아닐까? …
특히 마지막 질문의 경우처럼 한 남자를 현실이 아니 또 다른 꿈의 존재로 인식할 경우, 꿈꾸는 주체를 찾는 작업이 무한대로 확장될 수 있다.

독자는 미니픽션의 특징일 수 있는 내용의 모호함, 그 여백을 스스로 채워야 한다. 이런 작업은 작품 속에 숨어 있는 암시를 찾아내어 그것을 문학 외적인 요소와 결부해야 하는 독자의 몫이다. 이렇든 이 작품은 독자가 상상력을 통해 보완할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이 책은 즉각적인 결말을 기대하는 독자들에게 ‘황당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황당한 이야기’ 들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찾아낸다면 기존의 책과는 달리 아주 풍부하고 풍성한 책이 될 것이다.
송병선 (울산대학교 스페인 중남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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