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내 방에 온 날이었다. “평생, 네가 끓여주는 커피를 마시면 좋겠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그는 나른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순간, 시간이 멈췄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가 돌아간 뒤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렸다. 오래 기억하고 싶은 이 순간을 위해 건전지를 빼두었다. ---「Monday March 22 2010」중에서
[no_where] 어디에도 없는 혹은 [now---「here] 지금 여기에 한 단어를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다른 의미가 된다. 중요한 것은 바라보는 시선. 그러나 시선을 달리하면 움직임도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 ---「Friday June 11 2010」중에서
“외로움이란 한 생을 이해하는 데 걸리는 사랑”이라고 그가 말했다. ‘그러니 사랑하면서도 외로울 수 있는 거구나.’라고 나는 생각했다. ---「Saturday June 26 2010」중에서
그는 생각 없이 걷다가 길을 잃는 것을 좋아하고 그녀는 지도를 보고 어디쯤인지 알아차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녀는 좁은 골목에서 만나는 사소한 풍경을 좋아하고 그는 좁은 골목에서 풍기는 일상의 냄새를 좋아한다. 사랑은 사이좋은 동행자가 되는 조건을 발견해가는 여행이 된다. ---「Monday July 5 2010」중에서
그때 나는 알았다. 지킬 게 없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다는 사실을. 그때 나는 알았다. 자존심을 버릴 줄 아는 사람이 사랑도 할 수 있다는 것을. ---「Tuesday December 21 2010」중에서
제법 쌀쌀해진 날이었다. 그는 밤늦은 시간에 생각이 많은 표정으로 내게 왔다. 자신의 기분에 대해 떠들지 않았다. 단지 피곤하다는 말로 자신의 상태를 알렸다. 그는 힘든 시기를 지내고 있었다.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가 그의 삶을 흔들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는 내가 내온 따뜻한 꿀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잠시 눈좀 붙이겠다며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붉은색 기운이 감도는 이불이었다. 이불 속에 폭 잠긴 그는 몸을 벽 쪽으로 돌렸다. 내가 만질 수 없는 슬픔 같은 것이 차오른 뒷모습이었다. 울 공간을 찾지 못한 한 마리 짐승이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듯한.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나는 하던 일을 정리하고 그의 곁에 누웠다. 그의 숨소리에 맞춰 잠을 청해보았지만 딴생각으로 잠이 오질 않았다. 딴생각의 대부분은 그에 대한 생각이었다. 짐작할 수도 없는 그가 하는 생각에 대한 생각이었다. 나는 그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내가 가진 사소함이었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고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감정이 있기에 그저 손을 잡는 행위가 위로의 전부였다. 깊이 잠든 줄 알았던 그가 내 손을 꾹 잡아주었다. 마치 대답이라도 하듯이. 이불 안은 우리의 체온으로 따뜻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이불 속에서만 손을 잡는 버릇이 생겼다. ---「November, Picante, p293」중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과의 사계절을 겪어보라고 이야기한다. 봄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 같은 설렘, 한여름 태양의 뜨거움 같은 열정, 깊어가는 가을을 닮은 감정의 무르익음, 그리고 칼바람이 매섭게 불어오는 겨울의 혹독함을 말이다.
(……)
연인의 사랑스런 구석을 사랑하는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사랑할 수 없는 부분까지도 사랑하는 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수만 있다면, 그 사람과의 사계절을 어쩌면 평생 함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