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잊고 있던 많은 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가 서성였을 코너, 그녀가 퍽 마음에 들어 했을 신간, 당신과 내가 그냥 넘기지 못하고 한참을 들여다보았을 페이지. 서점에 가면 그날의 내가 보이고, 그 언젠가의 당신이 보인다.--- p. 26
그녀의 말이 옳았다.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던 때에 가장 필요한 말은 무척 가까운 곳에 있었다. 친구의 결정에 망설임 없이 잘했다고 말해준 것처럼 내게도 ‘괜찮아, 그 길이 맞아’라는 확신의 답을 들려줄 필요가 있었다. 넌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니까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그래도 괜찮다고. 누군가에게 했던 그 응원의 말을 내 마음 곳곳에도 새겨둘 필요가 있었다. 그날, 그녀의 말대로 나를 조금 더 믿어보기로 했다. 그래, 우리는 우리 자신을 조금 더 믿어봐도 괜찮을 것 같다. --- p. 76~77
나는 회사를 빠져나오며 문자를 적었다. 상대방의 진짜 마음이 무엇인지는 그 사람이 되어보지 않고서야 결코 알 수 없기에 줄곧 혼자 있고 싶다 했던 그의 말이 진심이라고 믿는 수밖에 없었다. 지나고 보니 그게 옳은 것 같았다. 내가 바라는 것과 당신이 바라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비비 꼬인 말들은 필요치 않았다. 이 감정을 어떻게 하면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그것만이 필요할 뿐이었다. 같이 있고 싶을 때 같이 있자 말하는 것, 보고 싶을 때 보고 싶다 말하는 것. 우리 사이에 다른 건 필요하지 않았다.--- p. 158
그 시간들을 우연히 마주한다는 게 얼마나 소박한 재미가 있는지. 어린 시절 주고받은 편지를 펴보듯 꺼내 읽다 보면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 아프고 괴로웠던 그때를 잘 견뎌냈네. 행복했던 그때를 후회 없이 잘 보냈네. 저만치 미뤄두었던 생각을 떠올려보게 된다. 내일은 뭘 해야 할지 생각하기 바쁜 요즘, 이 시간은 꽤나 큰 의미를 안겨주었다. 스르르 잠이 들락 말락 노곤한 상태가 되자, 쓸데없을 거라던 점원의 무뚝뚝한 말이 다시 떠올랐다. 이걸 어찌 쓸모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게 쓸모없다면 과연 어떤 걸 쓸모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아무래도 이 버릇은 쉽게 고치지 못할 것 같다. 미련하다고 해도.
필름 카메라 같은 그녀는 매일 보통의 순간을 찍는다. 모든 것들에 눈을 마주치고 귀를 기울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정성스럽게 기록한다. 그렇게 그녀가 담은 장면들은 우리가 잠시 잊고 살았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 기억들은 공들여 인화한 필름 사진처럼 조금 색이 바랬을지 몰라도 순간의 느낌만은 선명하다. 그리고 따뜻하다. - 고수리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 작가)
그녀의 이야기엔 내 또래가 공유하는 보편성이 있다. 한 번쯤 겪어봤을 상황과 그래서 한 번쯤 떠올렸을 생각들을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리고 진득하게 건드린다. 뻔한 소재들 사이에 우리가 잊고 사는 진솔한 의미들을 그녀는 발굴했고 기록했다. 그것은 공감대가 되었다. 그녀의 기록을 따라가는 것은 어쩌면 그동안 쓰지 못한 내 자신의 일기를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김관 ( 팟캐스트 [이게, 뭐라고]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