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군의 엉뚱함은 항상 나에게 신선한 놀라움pleasant surprise을 주곤 하였다. 일테면 이런 식이었다. 한번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석사 과정을 수료하고 종합시험을 보고 논문을 쓰라는 나의 성화를 뿌리치고 어느 날 갑자기 조지타운대학교 안보학 공부를 하러 떠나버렸다. 그러더니 어느 날 불쑥 찾아와서는 “선생님, 저 의용소방대원 되기 위해 자원봉사 중이에요”라고 하는 것이다. 또 언젠가 한 번은 미국 시간으로 새벽 3시경, 미국 사립정보회사 iJET에서 아시아 지역 안보분석가로 일하느라 밤낮을 바꿔 산다는 이메일을 보내지를 않나, 소방 부문 자원봉사자 상을 받고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지를 않나……. 결국 그 엉뚱한 내 제자, TEPS 점수 때문에 JPO 선발에서 고배를 마셨던 내 제자는 그 어렵다는 유엔 사무국 국가별 경쟁시험NCRE에 당당히 합격하여 유엔 정식직원이 된 것이다. 점수 인생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 박 군은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이룬 것이다.
2010년 여름부터 케냐 소재 유엔 나이로비 사무소에서 근무하게 된 박 군이 2년 정도 위험한 오지에서 일을 한 후 뉴욕본부나 아시아 지역 유엔기구로 발령을 받아 올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그러나 박 군은 케냐가 대통령선거로 정국이 불안하기 때문에 자신이 일 년 더 근무하기로 했다는 말을 전해왔다. “Here comes that man again!” 역시 박재현다웠다. 그런 박 군이 이번에는《나는 좀 더 안전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라는 책을 낸다는 연락을 해왔다. 본인은 엉뚱하고 위험하고 막연한 길을 선택해왔으면서, 박 군이 꿈꾸는 세상은 결국 안전한 세상이었나 보다. ---이신화 교수의 추천사 중에서 (5 ~ 7p)
솔직히 나도 한때는 남들처럼 스펙에 목숨을 걸다시피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어떤 일(이 일에 대해서는 이후 본문에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을 계기로 스펙이 내 인생에서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며, 이후 더 이상 거기에 연연하지 않았다. “Not to be Number One, but to achieve1등이 되기 위해 애쓰지 말고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라.” 즉,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싸움이 아닌 나 자신과의 진정한 싸움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나 자신을 이김으로써 다른 사람을 이겼을 때 얻게 되는 성취감과는 차원이 다른 성취감과 삶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누구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김으로써 얻게 된 자신감만 갖고 있다면 누군가와 경쟁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서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믿는다.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한 가지다. ‘스펙’이 아닌 ‘스펙트럼’을 보라는 것. 기계를 제작하는 과정을 한 번 생각해보자. 그 기계를 어떤 용도로 사용할 것인지를 가장 먼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다음 그 용도에 맞는 콘셉트를 잡고 ‘스펙’을 파악한 후 설계 및 제작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각자의 넓은 ‘스펙트럼’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그에 맞는 자격증이나 기술 훈련 등 꼭 필요한 스펙을 갖춰가는 것이 마땅한 순서일 것이다.
어눌한 우리 말 발음과 남들에 비해 전혀 뛰어나지 않았던 초ㆍ중ㆍ고등학교 성적, 재수로 대학 입학, 그리고 1년여 동안 좀처럼 헤어나지 못했던 지독한 게임 중독……. 전혀 내세울 만하지 않은, 아니 오히려 감출 수 있다면 감추고 싶은 이 모든 부정적인 요소들조차 나의 인생 스토리의 소중한 일부이자 중요한 ‘스펙트럼’이다. 자신에게서 한 발 물러서서 ‘스펙’이 아닌 그 ‘스펙트럼’을 볼 수 있게 도와준 스승님, 친구들, 그리고 선후배들……. 내 인생의 소중한 멘토들 덕분에 내 안에 잠재돼 있던 타고난 근성과 열정을 바탕으로 ‘위기관리’라는, 이제까지 잘 알려져 있지 않던 분야의 전문가로서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지금 이 순간에도 갈등과 방황, 좌절을 겪고 있는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다. ‘스펙’에 대한 강박관념을 과감히 버리고 좀 더 넓고 깊게 자신만의 ‘스펙트럼’을 보라고. ---저자 서문 중에서 (11 ~ 13p)
“미스터 박, 우릴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대답하기 녹록치 않은 질문이었다. 내가 당돌하게 물었다.
“제가 그곳에서 정확히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먼저 알려주시겠습니까?”
“보안대 작전담당관입니다. 보안 담당직원 150여 명에 대한 일일 작전을 관리하고 지휘하는 일이죠. 사건 수사, 교육훈련, 소방, 경호까지 모든 일을 총괄하게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이군요!”
“만약 미스터 박이 오퍼Offer of Appointment를 받는다면 얼마나 빠른 시일 내에 나이로비로 올 수 있습니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었다. 그랬기에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빈틈없이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3~4개월 뒤면 갈 수 있습니다. 7월 무렵이 되겠군요.”
그렇게 비몽사몽간에 갑작스런 새벽 두 시 반 전화 인터뷰를 마치고 난 뒤 4일이 지나 드디어 내게 정식 오퍼가 왔다. 한창 출근길을 재촉하고 있는데 블랙베리폰에 갑자기 이메일 수신 신호가 떴다. 유엔 나이로비 사무소의 인사 사무 관리관이 보낸 메일이었다.
“당신은 유엔 나이로비 사무소 초급 보안담당관으로 적합하다는 인터뷰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곳에 발령을 희망하는지 여부를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이건 뭐지? 보통 인터뷰를 하고도 3~5년은 더 기다려야 발령이 난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빨리 진행될 줄이야.’
분명 뛸 듯이 기뻐해야 할 소식이었다. 그럼에도 순간 나는 기쁨보다는 당혹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당분간 버지니아 주의 알링턴 카운티Arlington County, Virginia에 정착할 생각으로 하루 스물네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숨 가쁘게 쫓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터라 그 많은 일들을 이제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막막했던 것이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박사 과정이 우선 마음에 걸렸다. 다음으로 충분히 내 생활을 꾸려갈 수 있을 정도로 적지 않은 급여를 받고 있던 사립정보회사 일도 걱정이었다. 마지막으로, 여전히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던 의용소방관 일도 염려되었다. 다시 다음 기회를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이 기회를 붙잡을 것인가? 무려 7일 동안이나 나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했다. 그러다가 의용소방관이 될 수 있도록 나를 이끌어준 조지타운대 대학원 동기Laura Katzif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당연히 가야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나는 네가 그 기회를 꽉 움켜잡아야 한다고 생각해. 내가 알기로, 이건 유엔에서 결코 흔치 않은 기회야.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너한테 정말 잘 맞는 자리라고 생각하지 않니?” ---본문 중에서 (22-24p)
유엔 인사 관리관들 사이에서도 한국인들은 일단 뽑아놓으면 정말 열심히 일한다고 소문이 나 있다. 말하자면 유엔 내에서 한국인은 이른바 일 잘하는 민족으로 좋은 평판을 얻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런 장점의 이면에는 적지 않은 맹점도 도사리고 있다. 빈틈없이 잘 짜여진 틀에 익숙하다 보니 사고체계가 다소 경직된 면이 없지 않은 것이다. 가끔 유엔 진출을 꿈꾸는 한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특강을 나가보면 그런 우려가 새삼 피부로 느껴진다.
“저기요. 토익이나 토플은 몇 점 이상 맞아야 해요?”
“봉사활동은 몇 시간 정도 해야 되나요?”
“인터뷰할 때 주로 어떤 질문들이 나오나요?”
“영어로 논술할 때 어떻게 쓰면 점수를 좀 더 잘 받을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들은 굳이 유엔이 아니더라도 한국의 여느 취업 관련 특강에서 흔히 들을 수 있다. 그만큼 틀에 박힌 질문들이라는 얘기다. 지원자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궁금할 수 있겠지만…….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찾아와 귀를 기울이는 그들의 열정을 폄하하거나 부정하고 싶은 것은 절대 아니다. 솔직히 나는 그 나이 때 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도 알지 못한 채 끝도 없이 방황하고 다녔다. 그렇게 생각하면 관심과 열정을 갖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싸움의 반에 승리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면서 질문을 받아보면 고민의 질과 질문의 유형이 확연히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제가 2년간 아프리카 수단에서 유니세프 자원봉사 활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2011년 7월에 남수단이 유엔 회원국이 됐는데, 이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나요?”
“유니세프 활동 외에 유엔 직원으로서 그곳에서 제가 기여할 만한 분야를 찾고 있습니다.”
“저는 건축공학을 전공하고 있는데, 만일 당신이 저라면 어떤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준비하고 도전할 것 같은지 뭔가 도움이 될 만한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내게 구체적인 가상 시나리오를 먼저 던져준다. 그런 다음 유엔 직원으로서의 생각을 듣고 싶어 한다. 이미 자기 인생의 나침반 바늘을 유엔에 맞춰놓았다. 그런 다음 자신이 가진 장점들을 어떤 식으로 살릴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 최대한 집중하는 것이다. 그런 질문을 받게 될 경우, 한두 마디 오고가는 것으로 대화가 끝날 수가 없다. 묻고 질문하고, 다시 묻고 질문하고, 하는 식으로 한동안 심도 있는 대화가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질문자가 스스로 실마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166 ~ 169p)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와 나의 ‘독수리 5친구’들이 경희대 정문 근처의 모든 게임방들을 샅샅이 뒤진 끝에 결국 나를 찾아내어 집으로 끌고 갔다. 그때 이미 1년여 동안의 심각한 게임 중독 생활과 형편없는 식습관, 그리고 쉴새없이 줄담배를 피워댄 결과 체중이 50킬로그램대로 떨어진 상태였다. 그날 밤 부모님과 친구들이 나를 바라보던 그 심각한 표정들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마치 큰 죄를 짓고 판검사 앞에 서서 재판을 받는 분위기였다고나 할까. 그런데 당시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표정이 심각했던 이유가 나를 못마땅하게 여겨서가 아니라 1년여 동안의 게임방 생활 끝에 언뜻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변해버린 내 모습 때문에 충격을 받은 탓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당시 나는 게임 중독으로부터 나를 건져줄 구조의 손길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부모님과 동생 재민이, 그리고 친형제와 다름없는 소중한 친구들을 실망시켰다는 사실이 내겐 감당하기 힘들 만큼 커다란 죄책감으로 다가왔다. 아무튼 그날 밤 나는 부모님께 심하게 꾸중을 들었고, 친구들로부터 모진 소리도 많이 들었다. 더 나올 눈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눈이 퉁퉁 부을 때까지 울고 또 울었다.
내가 그토록 크게 실망을 시키고 걱정을 끼쳐드렸음에도 부모님과 친구들은 여전히 나의 든든한 조력자로 남아 있었다. 그들은 내가 게임중독에서 헤어 나와 다시금 정상적인 생활을 찾을 수 있게 되기까지 자신이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그 어떤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겠다며 나를 격려하고 안심시켜주었다. 친구들이 우리 집을 떠나 각자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간 뒤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오랜만에 내 방 침대에 편안히 누워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그때 무려 18시간도 넘게 잠을 잤다고 한다.
잠에서 깨어난 나는 잠시 멍한 표정으로 전신거울 앞에 서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제대로 음식을 먹지 못해 삐쩍 마른 몸, 헝클어질 대로 헝클어진 머리칼, 전날 밤 눈물이 말라버릴 정도로 우는 바람에 먹다 남은 라면처럼 퉁퉁 부은 눈……. 몰골이 말로는 다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문득 나 자신에게 미칠 듯 화가 났다. 전날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을 정도로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던 감정도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전날 밤 친구들이 내게 들려주던 말들을 떠올리면서 어떻게 하면 이 파멸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게임방에는 일체 출입하지 않기로 굳게 다짐하고, 제대로 된 식사를 통해 차츰 원래의 체중을 회복해가면서 며칠 동안 깊이 고민한 끝에 드디어 한 가지 결심을 했다. 그것은 바로 ‘군 입대’였다. ---본문 중에서 (147 ~ 150p)
스펙에 대한 강박관념은 유엔 진출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어쩌다가 출장이나 휴가로 한국에 돌아오면 대학생이나 유엔 취업 희망자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할 기회가 주어지곤 한다. 이때 수강자들이 내게 가장 자주 던지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영어 공부는 얼마나 해야 하나요?”, “토익·토플은 몇 점이나 받아야 하죠?”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적잖이 당혹스럽고 가슴이 답답해지곤 한다.
유엔은 서류에 기재된 영어 점수로 직원을 뽑지 않는다. 영어 논술과 장시간에 걸친 면접시험을 보기 때문에 설령 토익·토플 점수가 아무리 높다 해도 그것만으로 합격이 보장될 수는 없다. 따라서 영어만 놓고 얘기하자면, 토익이나 토플 고득점보다 논리적인 글쓰기 능력과 말하기 실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 거기에 더해 유엔이 가진 특성과 정체성의 측면에서 볼 때 다양한 문화와 정서에 대한 깊고 폭넓은 이해도 필수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교육체제나 시스템 상 각 나라와 사회가 저마다 가진 문화의 다양성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유엔 진출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그런 부분에 대한 철저한 준비와 보완도 필수적이다.
유엔 진출을 꿈꾸는 학생들의 경우, 내게 획일화된 스펙의 수준을 묻는 경우가 많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솔직히 곤혹스럽고 난감하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것은 딱히 그들 잘못도 아니다. 획일화된 교육 시스템과 그런 시스템을 만들고 시행해온 교육 당국자들에게 일차적인 원인이 있지 않을까. 대학 역시 그런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튼 스스로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을 우리나라 교육이 길러주지 못한 탓에 외교통상부 국제기구 인사센터 자유게시판에 올라오는 질문들도 하나같이 천편일률적인 스펙에 관한 질문으로 넘쳐난다. 막연하고 답답한 마음에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그런 질문을 던지는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만일 정말로 당신이 유엔직원이 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그 틀에 박힌 질문부터 바꿔보라.
유엔 진출을 꿈꾸는 많은 후배들에게서 내가 종종 발견하는 가장 큰 문제점은 자신이 왜 유엔에 진출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동기와 그 일을 향한 열정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장차 이루고자 하는 그 일이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하지 않고 불꽃을 만들어내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그리고 설령 그 꿈을 이룬다 한들 거기에서 무슨 보람과 성취감과 행복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 불꽃. 진정으로 관심이 있고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서라도 반드시 이뤄내고 싶은 일이라면 가슴에 불꽃이 피어오르게 마련 아닐까. 그런 사람이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과감히 용기를 내어 자신의 꿈에 도전할 것이다. 누군가 자기 대신 밥을 떠먹여주기만 기다리며 넋을 놓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하나 몸소 부딪치고 깨지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워나가고 차근차근 노하우를 쌓고 체계적으로 준비해갈 것이다. 왜냐하면 그 꿈을 이루고 싶은 너무도 간절한 마음이 가슴속에 불꽃을 피워 올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불꽃은 마침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전에는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191 ~ 19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