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람이 다른 동물보다 뛰어난 큰 차이점이라면서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천직이라고 믿는 직업을 꼭 선택할 수 있다고 할 수 없다. 한 사회에서 우리가 직업을 결정할 수 있기 전에 이미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고 날카롭게 분석했다. 직업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는 동물적 삶, 바로 그게 마르크스가 해부한 자본주의 체제 아래 대다수 사람의 운명이었다. 그럼 현대인의 운명은 거기서 얼마나 벗어나 있을까. 오늘날 누가 비정규직노동자를, 대졸 백수를, 대졸과 임금 차이가 큰 고졸 노동자를 선택하겠는가. ---「계급의 해방을 주장한 천 년이 빚은 사상가 | 카를 마르크스」중에서
소로는 “온몸으로 투표하라. 단지 한 조각의 종이가 아니라 당신의 영향력 전부를 던지라”고 강조했다. 어떤가. 오늘날의 투표를 보아도 ‘시민불복종’의 창안자가 던진 경구 “정의를 운수에 맡기려고 하지 말라”는 말은 촌철살인이다. 정의가 투표라는 ‘내기’를 통해 실현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소로의 토로는 대한민국의 정치 사회 현실에서 깊이 새겨야 할 말이다. ---「시민불복종으로 시민저항권의 길을 열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중에서
20세기 후반에 새로운 사상과 이론들이 연이어 나타났지만, 정작 ‘대항 헤게모니’를 이루는 데 실패한 까닭은 무엇일까. 바로 그곳에서 ‘곱사등이의 두뇌’는 여전히 살아 있지 않을까. 사람은 누구나 철학자라는 그람시의 믿음에 기대어 현재를 살아가는 민중 개개인에게 정중히 묻고 싶다. “세상에 가장 무서운 것은 민중인데 언제나 부림을 당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민중이 만드는 새로운 헤게모니 | 안토니오 그람시」중에서
헬렌은 스콧과 더불어 텔레비전도 전화기도 세탁기도 없이 소유와 소비 지향적인 삶을 버리고 존재 중심적인 삶을 살았다. 스콧은 특히 텔레비전을 “이류의 사람들이 공급하는 맛없는 음식”으로 불렀다. 헬렌과 스콧은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갖고 있는 유물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라며 “단지 생활하고 소유하는 것은 장애물이 될 수도 있고 짐일 수도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느냐가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짓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헬렌은 “소음의 폭격에서 벗어난 삶을 살라”고 권고한다. 생태 혁명으로 새로운 사회를 | 헬렌 니어링」중에서
스웨덴에서 엘란데르와 사민당이 연 새 길은 21세기인 지금도 여전히 실험 중이다. 그 과정에서 엘란데르가 한, 스웨덴에서는 이미 상식이 된 그 말이 한국을 비롯한 지구촌의 상식으로 구현될 그날은 언제쯤일까. “육아, 의료, 교육, 주거의 기본적인 문제가 사람들의 발목을 잡지 않아야 한 개인이, 한 나라가 최대한 성장할 수 있다.” “국가는 민중을 위한 좋은 집이 되어야 한다.” ---「복지국가 스웨덴을 만든 민중의 아버지 | 타게 엘란데르」중에서
튀니지와 이집트 젊은이들은 시위 장면을 휴대 전화에 담아 전송했다. 어떻게 시위를 조직하면 좋은지, 어찌하면 정부 검열을 피하고 안전하게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지 여러 정보를 주고받았다. 튀니지에서 독재가 무너지는 장면은 “무엇을 해도 변화하지 않는다”라며 자포자기에 빠져 있던 청년들의 의식을 단숨에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