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문체부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문화유산으로 한글을 꼽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문자에 관한 자부심은 한국인들만의 것은 아니다. 현재 기원이 밝혀진 세계 문자들이 크게 라틴문자 계통과 한자 계통의 두 가지로 나뉜다고 한다면, 이 두 문자와 관련된 공동체는 모두 나름대로 자신들의 문자에 대한 긍지를 가지고 있다.
우선 서양인이 분석적인 사고를 하게 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현재의 발달된 문명을 이루게 된 기저에는 음소문자인 그리스문자를 도입해서 음소 단위의 분석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있다. 음소라는 보이지도 않고 붙잡기도 어려운 체계를 추상적이고도 분석적인, 그리고 시각에 호소하는 모습으로 코드화하는 새로운 능력이야말로 음소문자의 놀라운 힘이며, 그것이 그리스문자를 통해 라틴문자에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라틴문자는 서양 문명의 출발점이다.
또한, 중국인은 한자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자이며 가장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문자라는 자부심을 표명한다. 표의문자가 표음문자보다 더 의미를 드러내는 데 적합하므로, 한자문화권 내에서 한자라는 공통 문어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힘을 중시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사용하는 문자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 나라는 찾아보면 이 외에도 더 많이 있다. 이를테면 일본인은 가나가 천 년의 역사를 갖는다는 것에 긍지를 느끼며, 두 종류의 가나ㆍ한자ㆍ라틴문자 등 여러 종류의 문자 체계를 능숙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데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에티오피아 인 역시 에티오피아 문자가 기원전 5세기부터 현재까지 쓰이고 있으므로―그들에게 낯선 한자를 제외하면―현재 사용되고 있는 문자 중 가장 오래된 문자라는 것을 자랑한다.
결과적으로 한글을 비롯하여 라틴문자, 한자 등 세계의 주요 문자 사용자들은 모두 자신들의 문자가 다른 문자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언어에 대한 자긍심을 찾아보기 쉽지 않지만, 유난히 문자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까닭은 문자와 문명을 연결시켜 생각하는 오랜 전통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천부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여겨지는 언어와 달리 문자는 인간이 애써 노력하여 누리게 된 것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그 노력의 정도가 자신들이 속한 공동체의 가치를 더 높여준다고 보는 것이다.
한글과 언어민족주의
우리가 한글에 대해 갖고 있는 자부심은 위에서 본 문자의 일반적인 특성 때문만은 아니다. 한글의 표음성에 대한 신앙적 믿음, 고유한 문자를 발명하고 그 문자로 수백 년의 문자생활을 지금도 영위하고 있는 민족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 등도 한글이 우수하다는 신념의 바탕이다. 특히 한글의 가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제고되어 온 데는 일제 강점기를 통하여 성장한 민족주의적 언어학의 영향이 깊다. 일제의 지배와 그 투쟁 과정에서 한글이 지니게 된 상징성 때문이다.
한자문화권에서 오랜 기간 한자를 사용하고 한문학을 학습하며 살아온 우리는 한글이 탄생한 후 470여 년간은 우리 문자로 마땅한 대우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근대국가의 성립과정에서 서구의 근대 문물과 지식이 들어오며 구지식과 신지식의 교체가 이루어지고 이때 신지식을 받아들일 대표문자로 한글이 부상하게 되었다. 한글에 관한 연구가 시작되고 그 연구가 깊어지기도 전에 국권을 강탈당하여 언어와 문자를 통제당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한글은 한민족 생존의 기본적 조건이 되어 한글과 한민족의 발전은 달리 떼어서 생각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더욱이 조선어학회 사건을 계기로 한글에 관해 연구하는 것이 독립운동에 버금가는 일이 되었다. 해방 이후 언어민족주의는 우리 국어학의 한 축이 되었고 한글의 규범을 정련하는 한편 한글의 우수성을 전파하는 역할을 했다.
한글에 대한 초기의 관심
초기에 서양의 한글에 관한 관심은 아시아라는 새로운 식민지의 개척 또는 그리스도교 선교를 위한 관심의 선상에 있었다. 그들의 관심은 중국과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정치적 역학관계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위치였다. 이를 위해 한국의 역사와 언어를 알 필요가 있었으므로 초기에는 선교사나 공무원 등 아마추어 연구자의 연구가 주를 이루었다. 초기의 대역사전이나 문법서 등이 한국이 아닌 곳에서 출판되었던 것도 장차 한국에 파견될 선교사나 외교관이 이용할 참고자료로서의 역할 때문이었던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반면 일본과 중국은 서양의 입장과는 조금 다르다. 일단 중국은 한국의 언어나 문자에 그리 큰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언어로도 소통하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는 한국의 문자 생활 덕분에 한국어 자체가 특별한 연구의 대상이 아니었다. 한글에 관한 위안스카이의 관심이 아마도 중국의 길고 긴 역사에서 한글에 대한 관심표명으로 가장 유명하고도 유일한 예일 것이다. 이와는 달리 일본은 한국어 학습에 적극적이었고 우리와의 외교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으므로 현대 이전에도 많은 저서가 나타난다. 메이지 유신을 전후하여 일본의 관심은 역시 서양의 그것과 같아져 한국어에 대한 연구는 한국에서의 정치적 이권을 차지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후 서구열강 및 중국의 한글연구는 식어버렸으며 일본에 의한 연구만이 본격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