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후는 외로움과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이 난관을 뚫고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가족과 모든 분들의 사랑 덕분이었습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죽을 병 가운데 있고, 외롭고 좌절할 때, 나보다 더 아파하시며 울고 계셨던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복을 많이 주셨습니다. 나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사랑해주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투병하면서 다시 확인했습니다. 모든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사망의 골짜기에서 건져내진 나」중에서
조개가 이물질을 안고 오랜 시간 참아내고 견뎌내서 마침내 아름다운 진주를 탄생시킨 것처럼, 서연이나 나는 뇌종양이라는 고난을 안고 오랜 시간 참아내고 견뎌내고 있습니다. 마침내 우리도 진주조개와 같은 고백을 탄생시키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는 연세암병원이 아니고, 하나님의 병원에 입원해 있으니 주여,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나님의 병원에 입원했습니다」중에서
힘든 시기를 참고 견디는 동안 내 기도 제목도 바뀌었습니다. 나 낫게 해달라는 기도를 이제는 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뜻이 있는 곳을 바라보게 하시고 주님의 마음이 있는 곳에 제 마음이 있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합니다. 딸애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게 해 달라는 기도도 하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 제 딸을 만나주시고 제 딸이 주님을 영접하고 주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항상 감사하고 기쁘게 살게 하시고 주님의 나라에 쓰임 받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나의 마음까지 치료해주신 명의」중에서
나는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지 않았다고 여긴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구하지 않은 더 많은 것을 주셨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 나를 치료해준 의료진이 있고, 나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가족이 있고, 격려와 기도로 함께하는 수많은 천사들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창문 밖에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아름답게 피어날 꽃들도 있었습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중에서
우리는 누구나 언제든지 환자가 되거나 환자 가족이 될 수 있습니다.누구든지 한 번은 꼭 가야 하는 길, 삶의 마지막 시간에 대해 더 자주 더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면 합니다. 열린 시각으로 이 세상의 마지막 시간을 맞이하고, 도와주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죽음은 삶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함께 살아갑니다」중에서
“왜 우리 아이가 먼저 가면 안 되는 거지?”, “우리 애가 먼저 가면 안 되는 이유들이 뭐지?”하나님께서 부르시면 누구나 가는 건데 내 아이는 예외여야 한다고 여겼던 겁니다. 저는 어리석었습니다. 이유보다 의미를 묻고 찾아야 했습니다. ‘아이가 저에게 오고, 그것도 미숙아로 태어나고, 수술도 할 수 없는 병에 걸려 먼저 간’ 사건의 의미를 묻고,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려고 하시는 게 무엇인지 물었어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