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좋아해서 주우를 맴돌다 보니 동화 작가가 되었어요. 마음을 움직이고 가슴을 울리는 아름다운 동화를 쓰고 싶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곤 한답니다.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었으며, 샘터동화상과 푸른문학상, 미래의 작가상을 수상했어요.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5학년 5반 아이들』, 『조나단은 악플러』, 『도깨비, 파란 불꽃을 지켜라!』가 있습니다.
그림 : 김희경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금속공예를 전공했습니다. 그림책의 매력에 빠져 한겨레그림책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서울문화재단의 예술가 교사, 예술교육연구소 ‘넘나들이’의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림을 그린 책으로 『스토리텔링 초등 우리말 교과서』, 『앨리스의 소보로 빵』 등이 있습니다.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노란 우비를 입은 이 아이가 시리우스에서 온 외계인이라는 거다. 거기다 길을 잃은 우주 미아. 영화에서 본 이야기 같다. 아니 만화에서 봤던가. (…) 나는 배를 잡고 한바탕 웃었다. 하지만 그 애는 웃지 않았다. 무척 진지한 눈빛으로 천천히 입을 떼었다. “믿기 싫으면 믿지 않아도 돼. 사람은 원래 믿고 싶은 것만 믿는 동물이니까.” --- p.20
나는 아빠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다섯 살 때 돌아가시는 바람에 아빠에 대한 기억이 없다. 엄마랑 똘똘 뭉쳐서 나를 따돌리는 누나를 볼 때마다 아빠가 살아 있으면 내 편을 들어 줬을 텐데 하는 생각에 더 그립고 보고 싶다. --- p.42
엄마가 다시 회초리를 매섭게 들어 올렸을 때였다. (…) 다섯 살쯤 된 꼬마 아이가 울고 있었다. 그 순간 뜨거운 열기가 가슴을 뚫고 확 올라왔다. 뜨거운 불길에 휩싸이기라도 한 듯 온몸이 후끈거렸다. 특히 목덜미의 흉터가 타는 듯이 아팠다. --- p.46
“힘들지? 그래도 당당하게 맞서 싸워야 한다. 아픈 기억은 잊고 싶다고 잊히는 게 아니거든.” --- p.171
(…) 아빠도 어쩌면 그림자 괴물과 싸우고 있었는지 모른다. 술에 취했을 때는 그림자 괴물에게 이리저리 끌려 다니고 조종당했지만, 결국은 그림자 괴물을 물리치고 우리를 구한 것이다. 우리를 살린 것이다. 아빠를 미워했던 마음이, 두려웠던 감정들이 스멀스멀 기어들어 가고 있었다. --- p.176
“난 알고 있어. 네가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지구를 떠나고 싶을 만큼 수이 막히고 답답해서…… 외계인이 되고 싶어 했다는 거.” --- p.182
“네가 왜 시리우스로 가고 싶은지 솔직하게 말해. 우주 악당이 아무리 무서워도 피하지 말고, 두려워도 도망치지 말고 당당하게 맞서 싸워 봐. 내가 도와줄게.” (…) 시몬이 아프지 않게 도와주고 싶었다. 굳이 시리우스에 가지 않아도 지구에서 얼마든지 즐겁게 살 수 있다는 걸 알려 주고 싶었다. --- p.185
“때리는 건 나빠요. 아무리 화나도 때리면 안 돼요. 아빠가 그러면 안 돼요!” --- p.186
그림자 괴물이 다시 나타나면 나는 제대로 한번 붙어볼 것이다. 시몬도 그랬으면 좋겠다. 우주 악당이 나타나도 겁먹지 않고 당당하게 물리쳤으면 좋겠다. 그래서 하루빨리 웃음을 되찾으면 좋겠다. 다시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 p.188
“괜찮아요. 이제 괜찮아요.” 바로 그 순간 그림자 괴물이 아빠로 바뀌었다. 더 이상 아빠가 무섭지 않았다. 두렵지도 않았다. 나는 울고 있는 아빠를 가만히 안았다. 그러자 아빠가 아이처럼 흐느끼며 울었다. 나는 그런 아빠를 힘주어 더 꼭 끌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