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들에 관한 소문은 학교 전체에 가십처럼 떠돈다. 그 애들은 학교라는 사회에 기생하는 일종의 유명 인사들이다. 보통 아이들은 그 애들처럼 살지 못한다. 그러려면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다. 어떤 선을 넘어야 한다. 다시는 평범한 삶으로 돌아올 수 없는 그들만의 세계로 완전히 들어가야만 한다. 그래서 보통 아이들은 그 애들처럼 살지 못하지만, 그 애들에 관한 소문에는 열광한다. --- p.23
나는 조를 좋아했다. 조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조와 함께 몰려다니는 패거리들은 싫었다. 조를 뺀 나머지 아이들은 사실 조처럼 치명적이지 못했다. 조 같은 불량기도, 표독한 눈빛도, 그래서 선생님마저 주눅 들게 하는 어떤 무시무시한 분위기가 없었다. 그 애들은 그저 조의 시녀들이다. 다만 거칠 뿐이었다. 싸구려 불량기를 흘리고 다닐 뿐이었다. 그 패거리에서 조가 빠진다면, 바로 시시하고 껄렁한 그저 그런 집단으로 전락할 것이었다. --- p.24
나는 조가 지금껏 아무 처벌도 받지 않고 학교에 다닐 수 있었던 이유는, 이 모든 소문 속의 사건 전면에 조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조는 언제나 베일 뒤에 숨어서 ‘지시’를 내리는 쪽이지, 직접 나서지는 않았다. 조는 영리하다. 그리고 예쁘다. 어른들은 이런 점 때문에 조를 좋은 아이로 오해하기도 했다. 저렇게 예쁜 애가 설마!하는 식이다. --- p.32
조의 뻔한 의도를 알았지만, 나는 마음 저 밑바닥에서 칼날이 서서히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상하게도 조의 말에는 마음속에 숨어 있던 사악함을 건드리는 무엇이 있었다. 나는 조의 의도를 다 알면서도 조가 노린 바로 그 지점에서 흔들렸고, 날카로워졌다. 하지만 겉으로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썼다. --- p.56
‘나는 왜 조의 부탁을 들어주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스스로를 납득시킬 만한 답을 찾아야 했다. 내가 왜 조의 일에 동참해야만 하나? 생각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왜 조를 좋아하는가를 생각해야 했다. 조. 나는 무엇 때문에 조를 경멸하면서 조가 가까이 접근하는 것을 허용하나? --- p.72
우리가 왜 그렇게 뭉쳐 다니는 줄 알아? 그래야 너 같은 보통 애들한테 겁을 줄 수 있거든. 니들 같은 보통 애들이 겁먹지 않으면 우리가 재미없지. 우리는 보통 애들은 갖기 힘든 걸 가져야 하고, 보통 애들이 생각지 못한 짓을 할 수 있어야 해. 그래서 죽이게 멋있어 보여야 돼. 니들도 우리처럼 되고 싶어서 환장하도록. 우리도 알아. 우리한텐 아무것도 없다는 거. 고등학교 졸업하면 아무것도 아니란 거. 너도 마찬가지잖아. 다만 우리처럼 살 용기가 없는 거지. 너 같은 애들은 미래에 뭐라도 될까 싶어서 꼼짝도 못하지. 우린 안 그래. 우린 미래 따위 생각 안 해. 지금 여기만 생각해.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 갖고 싶은 거 가져야 되고, 하고 싶은 거 해야 돼! --- p.157
내 생각엔 말이지, 싸움을 겁낸다는 건 죽도록 원하는 건 아니라는 말이지. 다시 말해 이래도 좋고, 저래도 큰 불만 없고. 그런 정신이면…… 죽도록 원하는 쪽이 이기게 되어 있어. 착한 정신이 이기는 게 아니고요? 나는 생각지 못한 말을 불쑥 뱉었다. 어떤 게 착한 정신인지 분별해 내는 건 쉽지 않아. 세상은 그리 단순하게 굴러가는 게 아니니. 그래도 못된 건 못된 거 아닌가요. 못된 일은 명백하게 알 수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