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책을 142가지에 달하는 다른 방법으로 읽을 수 있다면? 제임스 버크의 <지식혁명이 남긴 위대한 유산>이 바로 그런 책에 해당한다.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그렇게 읽을 수 있을까? 다름 아니라 인터넷의 하이퍼링크 기능을 책에 도입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 책의 65쪽에 나오는 '토머스 에디슨' 옆에는 23, 75, 207이라는 숫자가 표시되어 있다. 여기에서 23은 23번째 주석임을 나타낸다. 그리고 207은 토머스 에디슨 관련 내용이 207쪽에도 나와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가운데 숫자 75는 207쪽에 나와 있는 주석 번호이다. 이에 따라 207쪽의 '에디슨' 옆에는 75, 23, 65라는 숫자가 나온다.
이 책에는 142개의 주석(앞의 숫자 표시 가운데 맨 앞의 숫자)이 표시되어 있고, 결국 가로질러 다닐 수 있는 통로 142개가 책에 나 있는 셈이다.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 책의 원제목이 '지식의 그물'(The knowledge Web)임을 생각하면 저자인 버크의 남다른 재치와 통찰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언뜻 보면 서로 상관이 없는 것 같은 다양한 분야의 지식들이 사실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저자는 볼테르에서 YMCA 및 적십자의 탄생에 이르는 과정을 이렇게 연결 지어 이야기한다. 1765년에 프랑스 계몽사상가 볼테르는 이탈리아의 화학자 스팔란차니로부터, 달팽이, 플라나리아류, 양서류의 몸 일부를 잘라내도 잘린 부분이 다시 자라나고 심지어 두 개의 분리된 개체로 재생되기도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다. 스팔란차니의 발견은 복제 생리학의 기초가 되었다. 독일의 작곡가, 소설가, 법률가인 에른스트 호프만은 스팔란차니를 자신의 작품 등장 인물의 소재로 삼기도 했다. 호프만은 청년 체육 클럽 활동을 조직하여 독일 민족주의 운동을 전개하려 한 프리드리히 얀을 조사하는 책임을 맡았다.
결국 1819년에 얀의 체육 클럽은 문을 닫았고, 얀의 추종자 아돌프 폴렌은 재판을 받고 무죄로 풀려났다. 폴렌의 동생 카를은 형과 함께 스위스로 갔다가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리고 하바드 대학에서 체육 활동을 주도했고, 체육 클럽 활동을 조직했다. 기독청년회(YMCA) 역시 체육을 자체 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채택했다. YMCA 세계 연맹의 발족에 큰공을 세운 사람은 앙리 뒤낭이었다. 뒤낭은 1864년에 적십자를 창설하게 된다.
이 책은 서구 지성사, 사상사, 과학기술사, 발명사 등을 모두 겸하고 있다. 과학, 기술, 철학, 사상, 문학, 예술, 건축, 정치, 사회 등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역사책인 셈이다. 사실 제임스 버크는 과학기술사 분야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름이 높은 사람이다. 그의 저서 <우주가 바뀌던 날 그들은 무엇을 했나>(지호)는 과학기술사 교재로서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버크는 저술 활동 이외에 TV 과학 다큐멘터리 시리즈 진행자로서도 명성을 떨친 바 있다. Connection이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제법 오래 전에 우리 나라에서도 방영된 적이 있다. 그 TV 시리즈물 역시 이 책의 구성과 비슷하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사항들을 연결(connection)지어 설명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견이지만, 이 책은 독자의 취향에 따라서 매우 상반된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저런 잡다한 사항들을 단지 '연결 지어 놓았다'는 것이 무어 그리 대단 하느냐고 볼 수도 있는가 하면, 다양한 사항들의 연결 고리를 이렇게 적절하게 지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고 느낄 수도 있다. 어떤 평가를 내리든지 간에, 저자 버크의 '연결짓는' 능력이 남다른 것만은 부인하기 힘들다.
숨가쁘게 읽어나가도(사실 이 책은 숨가쁘게 읽을 수밖에 없다.) 막히는 부분이 별로 없을 정도로 번역 문장은 좋은 편이다. 다만 번역서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투정을 부리자면 다음과 같다. '지식의 그물'이라는 원제를 그대로 사용하는 편이 더 좋지 않았을까? 요컨대 번역서 제목에 등장하는 '지식혁명'이라는 말의 내포와 외연이 다소 불분명한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