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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선생네 경사
피아노 치는 소년 교장선생님과 운동장 두 바퀴 두 갈래 길 한 걸음 더 세상 안으로 어른이 되고픈 소년들 으망ㄱ은 나의 운명 고도모 대장 사랑하는 어머니 현해탄을 건너 일본으로 우리 음악을 살리자 꿈을 묻은 도쿄 고등음악학원 슬픈 이별 돌아오는 사람들 민족 음악의 새 빛 해방의 날 아버지 김순남 날개 달린 음악가 도피 생활 북으로 간 김순남 민족의 비극 6.25 천재 음악가의 죽음 글쓴이의 말 김순남 선생님의 일생 |
글김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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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최초로 서양 현대 음악을 배워 온 김순남이 귀국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조선의 음악계는 떠들썩했습니다. 일본에서 이미 이름을 떨쳤던 김순남의 실력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김순남에게 거는 기대가 컸습니다. 김순남도 사람들의 기대에 못지않게 활발한 활동을 하리라고 마음 속으로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중략) 하지만, 조국의 비참한 현실은 김순남을 편안한 자리에 머무르게 하지 않았습니다. 김순남이 화려한 음악가로 남기에는 할 일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일본은 미국과의 전쟁을 하느라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동안 조선 민족도 독립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일본에 맞서 싸웠습니다. 일본은 조선이 독립하는 것을 막기 위해 눈을 새빨갛게 뜨고 감시를 했습니다. (중략) 김순남과 젊은 음악가들을 모아서 '성연회'라는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성연회'란 소리를 연구한다는 뜻을 가진 모임입니다. 하지만, '성연회'는 단순히 음악만을 연구하는 모임이 아니었습니다. 성연회는 음악가들 중에서도 조선의 독립을 바라는 음악가들이 모두 모여든 모임이었습니다. --- p.117-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