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에서 여행 기사를 쓰고 산다. 사주가 늘 같게 나온다. 이른바 기자 사주. 부지런히 사람을 만나고 다녀야 평생 아프지 않고 산다고 나온다. 그 사주대로 산다. 악착같이 돌아다니고 정성을 다해 사람을 만난다. 신문기자로 15년 가까이 여행판과 문학판에서 살았다.
밥벌이로 전락한 여행은 서글프지만, 하여 나의 여행기는 짐짓 까칠하지만 여행 본래의 의미를 찾으려는 몸부림에는 한 번도 거짓이 없었다고 믿는다. 나에게 여행은, 내 발로 걸어 나가 세상과 인연을 쌓는 일이다. 제주올레와 맺은 인연이 8년째가 되고 규슈올레와 닿은 인연이 4년째가 되는 까닭이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여행은 아날로그일 수밖에 없다. 어떤 형태의 여행이든 제 몸을 부려야 완성되기 때문이다. 걷기여행이 늘 옳다고 믿는 까닭이기도 하다.
길은 사람이다. 사람이 길을 내고 사람이 길을 걷는다. 하여 길은 인연이다. 사람은 길을 걸어 사람을 만난다. 길이 사람이어서 인연이므로, 길을 걷는 여행은 사람을 만나러 가는 여행이고 인연을 맺는 여행이다. 길을 낸 사람을 만나는 여행이고, 길을 걷는 사람을 만나는 여행이고, 길바닥에 주저앉는 사람을 만나는 여행이다. 2006년 서귀포 여자 서명숙이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걷고서 제 고향에 낸 길이 제주올레다. 이웃 나라에 제주올레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서 일본이 제 나라에 낸 길이 규슈올레다. 길이 길을 낳았고, 그 길이 또 다른 길을 낳았다. 길이 길을 낳는 지점에 사람이 산다. 당신이 규슈올레에서 만나야 하는 풍경이다. (19쪽)
“길은 오로지 두 종류입니다. 걷기에 좋은 길과 그렇지 않은 길. 길에서 받는 느낌은 저마다 다르지 않을까요?” 나는 안은주 국장의 답변을 역사에 얽매이다 보면 걷기 여행 본연의 의미를 놓칠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안 국장의 말마따나 걷기 여행의 주인공은 길이다. 굳이 무엇을 보겠다고 나서는 걸음은 걷기 여행이 아니다. 길섶의 풀 몇 포기, 땀을 식히는 바람, 흔들리는 나뭇잎도 길에서는 주인공이 된다. 길은 걷는 자의 것이다. (92~93쪽)
사실 다카치호 코스는 2012년 2월 규슈올레 첫 개장 때 탈락한 바 있다. 포장도로가 너무 많은 게 문제였다. 탈락 소식을 들은 다카치호의 담당 공무원이 “왜 우리가 떨어졌느냐”며 눈물로 항의했다고 한다. 그 담당자는 코스를 짤 때 먼저 주요 관광 명소를 정하고 이들 명소를 잇는 길을 찾았다. 다카치호 코스 초반 2km 안에 다카치호의 양대 명물이라는 다카치호 신사와 다카치호 협곡이 몰려 있는 까닭이다. 여기까지만 걸었을 때, 다카치호 코스는 다카치호 여행의 압축판이라 할 만하다. (153~154쪽)
1966년 발표한『료마가 간다』로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다.『료마가 간다』 후속 작품이 산케이 신문에 연재했던『언덕 위의 구름』이다. 이 역사 소설도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찬성하기가 어렵다. 러일 전쟁을 소재로 다룬 이 소설은 전쟁의 원인을 조선 내부에서 찾는다. 그렇다고 시바 료타로를 군국주의자라고 비난할 수는 없다. 그는 군국주의를 ‘귀태 鬼胎’라는 표현을 써가며 힐난한 적도 있다. 흥미로운 건, 본심이 무엇이었든 간에 그가 제주도만큼은 끔찍이 아꼈다는 사실이다. 제주도를 여행한 뒤『탐라기행』을 발표하기도 했다. 인연이란 건, 늘 우발적이다. (172~173쪽)
“지금 여기에 계신 분들은 다음 생에서도 친구입니다.” 아마쿠사ㆍ시마바라의 난이 낳은 소년 영웅 아마쿠사 시로가 겁에 질린 농민들에게 남긴 당부의 말. 학정에 맞서 일어선 농민들이 하라 성에 90일이나 갇혀 해초로 연명할 때, 아니 3만7000명 농민이 제 목숨 걸고 12만 정부군을 감당할 때, 신의 아들이 세상에 내린 눈물겨운 복음. 어쩌면 길은 거대한 이야기다.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는 지점에서 다른 이야기가 시작하는 것처럼, 하나의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다른 길이 이어진다. 제주올레가 규슈올레로 이어진 것처럼. (195쪽)
그는 서문에서 가이드북이라기에는 불친절하고 공식 기록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주관적이라면서 길을 잃었다고 고백한다. 그의 지나친 겸손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베테랑 여행 기자의 전문성, 문학 담당 기자로서의 인문 학적인 체취, 도보 여행을 진정 사랑하는 개인 여행자의 소소한 관찰, 그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었기에 통섭의 시선으로 써내려갔다고 나는 생각한다. 규슈올레를 곧 떠날 여행자는 물론이거니와, 예전의 나처럼 여행의 갈증을 책으로 대신 달래려는 이들에게도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 서명숙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
규슈올레에 대한 손민호 기자의 애정을 알기에 누구보다 먼저 규슈올레에 관한 책을 출판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한다. 이 책은 일반 가이드북이 아니다. 단순한 여행정보를 제공하는 차원을 넘어 규슈올레의 역사와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 부디 많은 분이 이 책을 읽고 규슈의 참모습을 만나는 기회가 늘어나기를 기대한다. - 이시하라 스스무 사단법인 규슈관광추진기구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