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적으로 소신은 폴리아나 경이 기사를 그만두고 행정관이나 서기관으로 전하께 봉사하는 걸 추천합니다. 그편이 그녀 본인에게도 이득일 겁니다. 전시에 마흔을 넘기기 힘들고, 생존해도 찬바람 불면 뼛골이 시리는 게 기사입니다. 폴리아나 경의 신체적 조건은 그리 좋지 않습니다. 어설픈 놈들이야 싸워 이길 수 있지만 제대로 된 기사와 붙으면 반드시 패배합니다. 그리고 여자니까 남자보다 몸을 더 아껴야 한다고 사료합니다.” 나중에 애도 낳아야죠. 결혼도 하고. 기사 관두라는 얘기도 기가 막히지만 막판에 나온 얘기는 더 심했다. 좋은 말 했다가 바닥으로 떨어트리는 상관 덕분에 폴리아나의 뜨겁던 가슴이 차갑게 식었다. 바우팔로 경은 유부남다운 주책을 멈추지 않았다. 막히지 않고 줄줄 나오는 것이 처음 해 본 생각은 아니었다. “솔직히 저 얼굴론 귀족 데려오기 글렀으니까, 일단 머리부터 기르고 치마 좀 입고, 제 부인이 아주 현숙한 귀부인들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녀들에게 부탁해 예의범절을 가르쳐 내놓으면 혈통에 눈 먼 평민 사내는 데려올 수 있을 겁니다. 그도 아니면 재취로 들어가서.” “아버지도 참. 제 혼사나 걱정해 주시죠!” 아버지의 주책을 견디지 못한 하우 경이 바우팔로 경의 말을 끊었다. 바우팔로 경이 무심히 말했다. “넌 알아서 잘 가겠지.” ‘난 알아서 못 간다 소리네.’ 시집 못 갈 거라 소리는 하도 들어서 괜찮은데 뒤에 나온 얘기들은 처음 듣는 버전이라 또 새롭다. 시집 갈 생각 옛날에 버렸는데 남의 입에서 이런 얘기가 나오면 화가 난다. 그런데 바우팔로 경이 줄줄이 내뱉는 말엔 약간의 애정이 섞여 있어서 폴리아나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다 아들, 아니 딸 같아서 하는 말이다.” 일방적인 비난은 들었어도 일말의 애정이 섞인 참견은 처음이라 폴리아나는 대답하기 곤란했다. 여자는 검을 들어선 안 된다는 많고 많은 이유 중에서 가장 다정한 이유였다. 여자에게 난롯가와 부지깽이를 강요하는 건 그녀들이 추운 밖에 나와 동사하거나 거친 짐승에게 공격당하는 걸 막기 위해서다. 여자는 모자란 성별이라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사람이 있으면, 여자는 연약하기에 보호하기 위해 그래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여자가 처녀로 죽으면 원혼이 되어 겨울바람 분다는 미신이 내려오는 아크레아 남자다운 반응이었다. 여자면 결혼은 해야지! 애는 있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