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지친 몸으로, 그것도 여자가 안간힘을 쓰는 장면이 그리 보기 좋진 않았다. 그래도 지금은 꼭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구조의 손길이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가급적 체력을 아껴야 했다. 기를 쓰는 오수진을 보며 최준혁이 격려했다. “잘하고 있어.” “해볼……게요.” 최준혁도 알고 있었다. 어디를 봐도 발 디딜 틈은 없었다. 다만 살려는 의지 그 하나만을 독려할 뿐이었다. 그건 자신에게 하는 격려이기도 했다. 잠시 지켜보던 최준혁이 위를 향해 소리쳤다. 이 순간 예의를 갖춰 말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언제 내려와, 이 개새끼들아!” “내려가고 있어!” 메아리처럼 답이 들렸다. 너무나 지쳐 최준혁은 미처 위를 올려다볼 힘도 없었다. 지금 위를 올려다보려 한다면 힘이 빠져 그저 오수진을 놓고 싶은 마음이 들 것 같았다. ‘순간 같은 영원’이라는 책 구절이 생각났다. 사람은 고통스러울 때 시간이 한없이 느리게 흐른다고 느낀다. “훗. 꼭 이럴 때.” 좌절하기 전에 외려 자일을 잡은 팔에 힘을 불어넣었다. 어느 순간 최준혁은 현실도 잊고 모든 것을 다 잊었다. 그저 자일만 잡고 버틸 뿐 머리가 텅 빈 느낌이었다. 째깍째깍. 지금은 손목시계의 초침이 마치 천둥소리같이 들리는 순간이다. 순간순간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픈 마음이 들자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머릿속에 박힌 좌우명이 절로 떠올렸다. “죽을 때 웃고 죽는다.” 차가운 잇소리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