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당마을은 강릉 경포호수 남쪽 가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마을이 들어선 곳은 아주 오래 전 바다와 강이 만나는 운정천 어귀에 길쭉하게 해안을 따라 형성된 모래 언덕이다. 경포 호숫가로부터 모래언덕을 감싸고 있는 소나무 숲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고 솔숲 밖으로는 물길이 감싸면서 휘돌아 나간다. 이곳은 또 태백산맥 준령에서 시작된 능선이 남대천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다 동해 바닷가에 와서 멈춘 춘갑봉의 아랫자락이기도 하다. 이 모래언덕이 생긴 것은 무척 오래전의 일이다. 빙하기가 끝나고 해수면이 상승하여 남대천 일대가 익곡, 내만의 상태에 이르렀을 때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늦어도 6천 5백년 전 무렵부터는 초당마을 사구지대에 사람이 살았다는 증거가 나오고 있으므로 모래언덕이 만들어진 것은 확실히 그 이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초당마을의 사구지대에는 지난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의 거주가 끊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지금의 초당마을 지하에 깔려 있는 유구와 유물들이 마을의 오래된 역사를 말해주는데 이곳에는 신석기시대의 마을유적으로부터 시작하여 철기시대의 마을, 그리고 삼국시대의 마을과 고분유적이 중첩되어 분포한다. 아주 가까운 과거로부터도 초당마을은 많은 기록과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근세에 이르러 마을에는 초당영어학교라는 신식교육기관이 들어섰다. 강릉에서 3·1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지도자들 중에는 초당마을사람이 많았다. 초당동에 사시던 감리교회 교인들이 서로 연락하면서 만세운동의 거사를 준비하고 이끌었다고 한다. 해방 이후 안타깝게도 남북분단체제 하에 좌우의 갈등을 겪으면서 초당마을 사람들에게는 깊은 상처가 마음속에 새겨지게 된다. 그때 뜻하지 않게 좌우의 대립에 휘말렸던 분들은 그 아픔에 대한 이야기를 아직도 쉽게 꺼내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