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2000년 이후,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 사회가 몹쓸 신자유주의 속에 빠진 이후 연극을 공부하면서 겪어야 했던 고통과 고독의 적바림, 그 산물이다. 대학도, 연극예술 동네도 자율성을 빼앗겼거나 버렸고, 작가와 연극 실천가들은 자존감을 잃거나 내팽개쳤다. 연극예술의 몰락과 젊은 연극 실천가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개인의 무능과 무책임으로 떠다박질려지는 모습들을 눈 뜨고 보아야만 했다. 패악스런 삶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연극의 근원에 대하여 묻는 일일 뿐이었다. 이 책 제1부 연극론의 중심 주제는 ‘연극과 기억’의 담론들이다. 기억은 과거를 질서화한다. 공연은 과거를 재분류하고 해석하면서 자기 스스로를 부풀리는 재현이다. 고대연극에서부터 현대연극에 이르기까지 요소[member]와 같은 기억을 재[re]위치시키는 재현[re/member, re/presentation]의 문제는 연극론의 핵심 주제이다. 삶을 기억하는 연극, 연극의 본질과 같은 몸과 말, 글과 이미지는 기억하려는 기제이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같은 현대소설에서도 기억은 매우 중요한 창작의 요체이다. 이를 기억의 글쓰기라고 일컫는데, 구체적으로 새로운 언어의 탄생, 기억 복원의 힘, 온전한 역사의 재구성을 뜻한다. 한 작가는 “내 소설에는 두 가지 주제가 있다. 하나는 ‘자유’고 하나는 ‘기억’이다. 기억이란 지난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살아 있게 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잃어버린 그 자유에 대해 항상 깨어 있었고, 그것은 내 책 속에서 언제나 되살아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기억이란 비판적 휴머니즘의 입장에서 증언자로서의 글쓰기를 구현할 수 있게 하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 문학의 고전인,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의 핵심은 과거의 사건을 후대에 전달하는 데 있다. 그것들이 대부분 운문으로 쓰인 것은 운율을 통하여 전수할 문화적 내용을 쉽게 기억시키려고 했기 때문이다. 운문은 기억의 원초적인 서술 방식인 셈이다. 서양에서 18세기 후반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한 자전적 소설은 자신의 정체성을 조망하고 서술하려는 자전적 기억의 산물이다. 동서양 연극의 매력은 오랫동안 과거의 사건을 항상 현재 시제로 재현할 수 있는 데 있었다. 그것은 연극이 과거의 단순한 저장이 아니라 항상 새롭게 기억하고 기억을 재생산하는 장르의 예술이기 때문일 터이다.
연극은 기억의 변증법적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기억의 고리가 하나씩 새롭게 형성될 때마다 삶의 사슬은 과거로 옮겨간다. 연극에서 기억의 저장 장치는 공간으로서 극장과 배우의 몸이고, 희곡에서 기억의 저장 장치는 글을 비롯해서 인물들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극적 장치들은 모두 기억의 공간을 생성한다. 필자에게 기억의 가치들을 알려준 것은, 최근에 가본 스페인과 베트남 여행 경험이다. 1부에서 다룬 스페인 시민전쟁과 연극, 베트남 전쟁과 연극에 관한 글들이 그 산물이다. 이는 나중에 한국전쟁을 중심으로 한국현대사와 연극을 관계 맺는 글들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다.
연극의 본질은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이고, 그다음으로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와 같은 문제가 뒤따른다. 여기에 동시대성, 삶의 가치, 극장의 역할, 연극하는 작가들의 선언과 같은 내용들이 구체적으로 구현된다. 그 최후의 발언이, 연극이여 말하라, 기억이여 말하라 같은 제목의 글이다. 그것은 비극에 있어서 기억과 망각의 문제, 기억하는 고통의 문제, 기억의 공간, 보이는 현실과 보이지 않는 기억의 거리와 차이, 망각할 수 있는 권리와 기억해야 하는 의무의 사이 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2부는 오늘날 연극을 읽는 글쓰기의 문제, 이론의 문제, 상품으로서 연극의 문제, 공화국에서 연극을 위한 정책에 관한 것이다. 날로 연극의 지위는 낮아지고 있다. 추락까지는 아니겠지만, 연극은 문학과 더불어 점점 제 위상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연극을 공부하는 이들도 불안하고, 연극 그 자체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생은 필멸이지만, 연극은 그 필멸에 대한 성찰이다. 연극의 불안은 필멸하지 않을 것 같은 생에 대한 염려이고, 필멸에 대한 성찰의 부재가 낳은 야만의 형태이다. 우리 시대의 연극이란 어떤 모습인가? 이론과 비평은 왜 필요한가?를 거푸 묻고 답하는 글들은 곧 우리 시대의 삶의 위기, 연극의 불안을 반영하고 있다. 3부는 연극에 대한 헌정이고, 연극을 공부하고 실천하다 생을 마감한 동시대 학자, 비평가, 연출가, 배우에 대한 헌사이다. 결국 살아 있는 존재의 글쓰기는 이들의 사상을 잇는다. 돌이켜보면, 연극보다 연극하는 이들이 더 가깝고 위대해 보인다. 그들의 꽃과 같은 연극 이념, 연극 철학을 잘 몰라도, 그들을 숭배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그것은 연극하는 그들의 괴로움을 가까이 혹은 멀리서 얼추 보았기 때문이다.
---「머리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