徐瑾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경제사를 분석하여 오늘날 중국 경제의 현황과 미래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과 전망을 제공하는 젊은 경제학자 겸 칼럼니스트이다. 중국 『파이낸셜타임즈』 주간으로 재직하며 『위기와 전환(危機與轉型)』 『중국 경제 괜찮은가(中國經濟??了)』 『케인스의 중국 모임(凱恩斯的中國聚會)』 등 인문학과 경제학, 역사를 넘나드는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역자 : 권하정
중국 상하이교통대학교 한어과와 서울외국어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중과를 졸업했다. 현재 번역 에이전시인 (주)엔터스코리아의 중국어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힐러리 이야기: 힐러리의 사랑과 꿈과 열정』 『작은 이야기 큰 깨우침』 『역사 이야기로 떠나보는 중국 여행기』 『빨리 철들자』(출간예정)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경제 갈등의 배후에는 언제나 정치가 버티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 잉글랜드은행은 휘그당 당원들이 설립했다. 반면 남해회사는 토리당의 지지를 받았다. 토리당이 정권을 잡았던 시기만 해도 정부는 수천만 파운드에 달하는 부채를 안고 있었고, 자금을 지원해줄 이가 절실했다. 이때 지원사격을 하기 위해 탄생시킨 조직이 남해회사다. 기자 대니얼 디포 등 많은 유명 인사들이 남해회사를 홍보하고 위상을 높이는 일에 적극 동참했다. 이들에게 남해회사는 정부의 대출 업무를 독점하는 잉글랜드은행을 견제하고, 나아가 휘그당을 공격하는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 pp.62-63「18세기: 중앙은행 VS 유럽의 패권 전쟁」중에서
당시의 자료를 찾다가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붕괴가 시작되기 전 시장에 대한 전망은 대체로 낙관적이었다. 정치가와 경제학자, 큰손과 개미들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시장이 혼란에 빠질 때면 누군가는 꼭 나서서 모든 상황이 정상적이며 문제없다고 이야기했다. 붕괴가 시작되기 전, 경제학자 어빙 피셔는 “주가는 영원히 하락하지 않을 고지대에 도달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폭락 직후인 10월 25일 금요일 허버트 후버 대통령은 “미국 기업이 내놓는 제품의 생산과 분배는 완전하고 발전된 기반 위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 p.124「20세기: 대공황 VS 위기 극복」중에서
게임의 ‘칩’인 금은 미국에 집중적으로 쌓여갔다. …… 당시만 해도 금은 여전히 부의 초석이고, 금본위제도도 금융 체제 안정의 초석이므로 세계는 하루빨리 금본위제도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이 주류를 이루었다. 중앙은행 총재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국제금융 체제의 재건을 논의할 때도, 많은 부분에서 이 생각이 주로 반영되었다. 이들은 국제외환시장의 안정과 자금 유동의 자유화 등을 강화해 경제를 회복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금을 다시 구제한 대가는 세계 파멸이었다. --- pp.151-152「중앙은행가: 파멸과 기사회생」중에서
위기가 도래할 때마다 극단적인 보수주의자들은 경제 주기에 따라 위기는 나타나기 마련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시장에는 자체 필터링이 있으며, 파산하는 금융 기관은 바로 이 과정에서 걸러진다고 믿는다. 문제는 현실 세계에서 경제 운영과 공공 정책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가 바닥을 친 뒤의 ‘뼈를 깎는 듯한’ 비용 지출과 길고 긴 회복의 시간을 모든 정부가 수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장기적 시각에서 본다면, 정부가 이러한 정책을 시행하면 모두가 공멸하고 만다. --- p.229「금융위기의 계시록」중에서
“신용 대출은 그저 돈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유혹이 숨어 있습니다. 신용 대출은 바로 그런 유혹이라는 특성을 사회 전체 구성원들이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죠. 하지만 그들에게 이 같은 방임의 대가를 감당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죠. 신용 대출이 전국적으로 모든 계층에게 ‘이제부터 불을 끄겠습니다. 누구든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요. 당신이 무슨 짓을 하든 알아볼 사람들은 없으니 안심하세요’라는 메시지를 보낸 거죠. 불이 꺼진 곳에서 사람들이 빌린 돈으로 각자 이루고자 하는 소원은 모두 천차만별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