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의 현실에 반대하여 돈키호테가 추구한 새로운 세계는 “‘네 것, 내 것’이라는 두 단어를 모르고 살았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했”으며, “모두가 평화로웠고, 우애가 넘쳤으며 조화로웠”던 ‘황금시대’입니다(1-131). 이는 도시 문명과 반대되는 자연에서, 목동을 비롯한 자유인들이 자치하며 살아가는 사회예요. 그것이 그의 유토피아입니다.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고, 공유하며 평화로우며, 정의만이 지배하여 재판이 아예 필요 없는 세상이지요. (……) 작품을 읽어나갈수록 돈키호테는 점차 풍차 에피소드 같은 처음의 실수에서 벗어납니다. 그리고 진정한 자유인으로서 정의감, 정신성, 인류애에 충실한 인간이 되어 가지요. 이처럼 자유인으로 되어 가는 과정이 인생이고 문학일 터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러한 과정을 완전히 생략하고, 조금만 이상하면 바로 광인 취급을 하고 철저히 매도합니다. 돈키호테 시대와 다를 것 없어요. 그러니 지금도 억압의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프롤로그』
『돈키호테』 제1편은 제법 인기를 끌었으나 당시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 비해서 그다지 성공을 거둔 편은 아니었습니다. 이 책은 처음 출판된 1605년에 6판을 찍었고 1612년에는 영어로, 1614년에는 프랑스어로 번역되었어요. 그러나 갑자기 등장한 58세의 세르반테스는 당대 스페인 문학계에서 환영을 받기는커녕 돈키호테처럼 시대착오적이고 이상한 존재로 백안시되었습니다. 또한 『돈키호테』의 판권을 출판사에 양도한 탓으로 책이 널리 팔렸음에도 불구하고 세르반테스에게 돌아간 돈은 별로 없었고요. 당시 아내와 딸, 그리고 여동생 둘과 질녀까지 다섯 명의 여성을 부양했던 그로서는 언제나 가난에 허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세계적인 작가로서 평가받지도 못했고요. 그러나 세르반테스는 자기 작품이 후세에 길이 남으리라는 것을 예견한 듯합니다. 『돈키호테』 제2편 제16장에서 돈키호테가 길에서 만난 녹색 외투의 신사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것을 보면요. “그리하여 여러 가지 용감하고 기독교적인 행적으로 말미암아 제 얘기는 거의 세상 모든 나라에서 출판이 될 만큼 공적이 인정되었습니다. 내 실기는 3만 부가 출판되었는데 하늘이 막지 않으시면 3억 부는 더 출판될 예정입니다(2-486).”--- 『돈키호테』의 성공과 실패』
『돈키호테』는 텍스트가 다양하다는 특징도 갖습니다. 가령 제1편 제1부 제1장처럼 돈키호테에 대해 세르반테스가 서술하는 형식이 있고요(1-37). 같은 장에서 주인공의 정확한 이름이 무엇인지를 논하는 부분에 이르면 “이 귀족에 대해 글을 쓰는 작가들”(가령 시데 아메테 베넹헬리)이 언급됩니다(138). 그다음에는 돈키호테의 혼잣말이 나와요(1-43). 마지막으로 제2편 제59장에는 다른 작가가 쓴 『돈키호테』의 가짜 후속편이 언급됩니다. 여기서 세르반테스와 시데 아메테 베넹헬리는 동일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해도, 돈키호테의 생각과 행동이 작가의 것과 똑같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세르반테스가 아닌 다른 작가가 쓴 ‘돈키호테’도 다를 수밖에 없고요. 따라서 『돈키호테』에는 적어도 그 내용이 다른 3개의 텍스트가 존재하는 셈입니다. 또한 문체도 다양하지요. 하나는 돈키호테의 호언장담과 미사여구를 특징으로 하는 언어로서 초월적이고 관념적입니다. 또 하나는 산초 판사의 민중적인 비속의 언어로 이것은 매우 일상적이고 구체적이에요. 이 두 사람 외에도 소설에 등장하는 6백여 명 등장인물이 각기 다른 기질이나 개성, 지위와 계급, 환경 등에 따라 다양한 언어를 구사합니다.--- 『돈키호테』에는 다양한 텍스트가 있다』
여기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세르반테스가 중세적인 신분이나 혈연·지연 따위를 중시하지 않고, 개인의 삶의 진실을 강조하는 근대적인 태도를 분명히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이미 서문에서 작가는 독자에게 자신의 책을 자유롭게 평가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그대의 영혼은 그대 자신의 몸속에 간직되어 세상에 누구 못지않게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고”, “이런 모든 것이 그대를 배려와 의무로부터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한 바 있거든요(1-10). 물론 이런 태도를 주인공 돈키호테에게서 곧바로 찾아볼 수는 없지만, 뒤이어 돈키호테가 자신의 이름을 비롯하여 여러 이름을 짓는 장면은 돈키호테 역시 중세적인 신분구조와 관계없이 사는 근대인임을 보여주지요. 돈키호테는 앞으로 기사가 되어 멋진 모험담을 펼칠 자신에게 그에 어울리는 근사한 이름을 붙이고 싶어 하는데요. 그는 우선 나흘 동안 고민하다가 말의 이름을 ‘고귀하고 듣기에도 좋’게 ‘로시난테’로(1-42) 고칩니다. 그리고 여드레 만에 자신의 이름을 ‘돈키호테 라만차’로(1-43) 정하지요. 마지막으로는 그가 사랑하는 여인을 ‘둘시네아 델 토보소’라고 부르기로 결정합니다(1-44). 이처럼 주인공의 이름을 짓는 것부터 시작하는 소설은 세르반테스 이전에는 물론 이후에도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장면이 품은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당시의 사회상을 좀 더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오늘날 대부분 소설에서는 주인공의 이름이 딱히 그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르반테스의 시대에 이름은 신분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담았어요. 문학작품에서도 대개 주인공의 이름을 통해 신분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므로 돈키호테가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결정하는 장면은 주인공을 그 시대의 사회적 전통으로부터는 물론 문학적 전통으로부터 해방했음을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가 그 첫 장부터 다른 무엇보다도 자유를 강조했다고 보는 이유입니다.--- 『모든 이야기는 ‘자유’로부터 시작한다』
여하튼 제4장으로 돌아가서, 고향을 향해 계속해서 길을 가던 돈키호테는 톨레도의 상인들을 만납니다. 그들을 편력기사로 오인한 그는 그들에게 둘시네아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임을 인정하라고 무작정 강요해요(1-70). 상인들은 그녀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여주면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합니다. 이에 돈키호테는 “중요한 것은 그녀를 보지 않고도 믿고, 고백하고, 확신하고, 맹세하고, 받들어야 한다는 사실이다”라고 윽박지르며 당장 결투를 요구해요(1-70). 이 말에서 저는 둘시네아가 성모 마리아, 성경, 나아가 기독교라는 절대적 존재를 상징할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즉, 세르반테스가 살던 시대에는 성경을 읽지도 않고, 믿고 “고백하고, 확신하고, 맹세하고, 받들어야” 했기 때문이에요. 이에 대한 반발로 에라스뮈스의 비판이 나타났고, 이어 종교개혁이 일어났잖아요? 이런 시각에서 보면 여기서 돈키호테는 중세 가톨릭이나 반종교개혁 가톨릭의 화신으로 풍자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자 상인들은 당시 가톨릭에 대한 비판 세력인 프로테스탄트를 상징하듯이 “비록 우리에게 보여주신 초상화 속의 여인이 한쪽 눈이 애꾸이고, 다른 한쪽 눈에서는 피고름이 흘러내린다고 해도 저희는 기사님 편”이라고 비꼼을 섞어 답해요. 이에 돈키호테는 “내가 사모하는 여인의 아름다움에 대해 그토록 불경스럽게 말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외치면서 그들에게 달려듭니다. 하지만 갑자기 로시난테가 넘어지는 바람에 돈키호테도 같이 고꾸라져 오히려 상인들에게 폭행을 당하지요. 아이러니한 장면에도 역시 기사소설에 대한 풍자가 들어 있네요.--- 『모두가 미쳤나? 아니면 연극인가?』
돈키호테는 길을 가다가 “두툼한 쇠사슬에 목이 얽혀, 마치 염주처럼 목과 목이 서로 연결되고 두 손에는 수갑을 찬 남자 열둘”과 마주칩니다. 그가 이 기이한 일행에 관해 질문하자 산초 판사는 “이 자들은 국왕 폐하의 명으로 강제로 갤리선으로 노 젓기 노역을 가는 죄인들”이라고 대답해요. 그러자 돈키호테는 “강제로라고? 아니 국왕 폐하께서 무슨 일을 강제로 시키는 게 가능하단 말이야?”라고 되묻습니다(1-266~267). 돈키호테의 이 말은 설령 왕이라 할지라도 백성에게 강제로 일을 시킬 수 없다는 것을 뜻해요. (……) 돈키호테는 죄수 한 명 한 명에게 어떤 죄를 지었는지 물어봅니다. 첫 번째 사람은 빨래 바구니에 든 옷을 훔치다 현장에서 잡힌 탓에 곤장 100대를 맞고 3년 도형(徒刑), 즉 갤리선에서의 노역에 처해졌어요. 두 번째 사람은 고문을 견디지 못해 가축을 훔쳤다고 자백하고 곤장 200대와 6년 도형을 선고받았고요. 세 번째 사람은 돈 10두카도(금 36그램의 값)가 없어서 5년 도형을 선고받았다고 하는데, 이는 곧 관리에게 줄 뇌물이 없어서 벌을 받게 되었다는 비아냥거림입니다. 네 번째 사람은 뚜쟁이라는 죄목에 더해 마법사 같은 차림으로 다녔다는 죄48로 4년 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다섯 번째 사람은 친척 누이 둘을 비롯한 4명의 여성을 희롱한 죄로 6년 도형에 놓였고요. 세르반테스가 이러한 죄수들의 죄를 상세하게, 풍자적으로 언급한 이유는 그들에게 가해진 처벌이 가혹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당시의 사법체계를 비판하기 위해서입니다.--- 『죄수 탈출과 자유』
‘포로의 이야기’는 세르반테스가 알제리에서 겪은 포로생활을 연상시키는 자전적인 이야기입니다. 비록 작중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무어인 처녀 소라이다가 실존인물인지는 알 수 없지만요. (……) 당시 이 이야기는 종교의 영원한 진실이라는 의무에 따르기 위해 혈육의 정마저 희생한 비극으로 찬양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슬람에 대한 기독교 우월주의에 빠진 제국주의적 이야기라고 봐요. 이른바 시대적 한계랄까요? 당대 서구 문명의 이슬람 혐오적인 분위기는 이 전 장면에서도 군데군데 드러납니다. 가령 오스만 튀르크 사람들의 “전대미문의 잔혹함”이 그러한데요. 작중 묘사된 바를 보면 “거의 매일 아주 사소한 이유로, 아니 까닭도 없이 이 사람, 저 사람의 목을 매고 찔러 죽이고 귀를 자르기도 했는데, 오스만 튀르크 인들은 그냥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런 짓을 저지르는 것이며, ‘전 인류의 살인자’라는 타고난 성질 탓이라고 여기고 있었”다고 해요(1-552, 553). 또한 무어인 여인인 소라이다가 쓴 편지에 “모두 악당들이니 무어인이라면 그 어느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제가 가장 괴로워하는 일입니다”라는 부분도 그렇고요(1-558). 그리고 이에 대답하는 포로의 편지 역시 “기독교도는 약속한 일을 무어인보다 훌륭하게 지킨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라는 구절을 통해 자신의 종교가 더욱 우월함을 드러냅니다(1-560). 아마도 이 중 가장 극단적인 장면은 소라이다가 자기의 아랍 이름을 버리고 마리아로 불리고자 하는 부분일 거예요(1-526, 561). 『돈키호테』보다 약 1세기 뒤에 쓰인 다니엘 데포(Daniel Defoe, 1660~1731)의 『로빈슨 크루소 Robinson Crusoe 』(1719)에는 로빈슨 크루소가 식인종 중 한 명을 구해주는데요. 크루소는 그를 발견한 날이 금요일이라는 이유에서 ‘프라이데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에게 기독교를 가르칩니다. 이는 영국이 모든 문명의 기준이고 다른 민족은 야만으로 본 제국주의적 사고를 그대로 드러낸 장면으로 후대의 비판을 받았어요. --- 『‘포로의 이야기’와 제국주의』
먼저 제42장 ‘산초 판사가 섬나라를 다스리러 가기 전에 돈키호테가 준 충고 및 기타 심각한 사건들’에서 돈키호테는 드디어 총독이 되어 섬을 통치하러 가는 종자에게 이렇게 충고합니다. “자네의 비천한 혈통을 기뻐하고 농부의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말게. …유덕하고도 가난한 것이, 지체 높고도 죄를 짓는 것보다 훌륭하다고 생각하게”, 따라서 “덕을 수단으로 삼고, 유덕한 일을 행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을진대 왕자와 대공으로 태어난 사람들을 부러워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게. 혈통은 상속하는 것이나 덕은 습득하는 것이며, 덕은 혈통이 갖지 못하는 본질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네.”(2-635) 두말할 필요도 없이 여기에는 인간에 대한 평등사상이 담겨 있어요. 비록 잘난 집안 출신도 아니고 제대로 교육을 받지도 못한 산초 판사라 하더라도 훌륭한 통치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더욱 주의할 점은 여기서 돈키호테가 통치에 있어서는 지배보다 덕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점입니다. 그런데 주의할 게 있어요. 세르반테스가 말하는 덕성이란 도덕이나 윤리와 같은 개념이지만, 똑같은 덕성이라는 말을 마키아벨리는 사람들을 조종하고 길들이며 강제로 굴복시키기 위한 규칙의 합리적인 효율성과 숙련된 응용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르반테스의 정치사상은 르네상스 정치철학을 대표하고 오늘날까지도 정치학에서 흔히 인용되는 마키아벨리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총독 산초 판사』
마지막 장은 이 소설의 전체 장들은 물론 세계문학 중에서도 가장 감동적이라고 꼽힙니다. 그만큼 유명하지요. “모든 인간사, 특히 인간의 생명은 마지막 종말에 도달할 때까지 처음부터 쭉 시들어가는 무상한 것”(2-806)이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장은 작품이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독자가 느껴온 재미를 부정하는 듯이 보입니다. 우선 돈키호테가 그동안 1,500쪽에 걸쳐 행한 기사도에 대한 망상에서 깨어납니다. 그는 고향에 돌아오자마자 마음의 병을 얻어 앓아눕는데, 정신이 들자 다음과 같이 말해요. “나는 불행하게도 그 구역나는 기사담을 줄곧 읽어서 그만 그런 무지가 생겼던 거지. 이제야 나는 그것들이 무의미하고 거짓말이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 단지 슬픈 것은 너무나도 뒤늦게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내 영혼을 밝혀줄 다른 책을 읽어서 보충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2-807).” 그의 죽음을 예감한 가정부와 조카딸은 슬퍼하고, 그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산초 판사도 눈물을 흘립니다. 이어 유언이 낭독되는데 약간의 유산이 산초 판사에게 주어져요. 돈키호테는 미친 자신을 따라준 산초 판사의 순박함과 충성심에 감사하며 그를 멋대로 끌고 다닌 데에 용서를 구합니다. 그러자 산초 판사는 울며 말해요. “이것 보십쇼. 그렇게 게으름을 피우지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가 결정한대로 양치기처럼 차리고 들판으로 나가십시다. 혹시 어떤 생울타리 뒤에서, 마술에서 풀린 그림처럼 예쁜 둘시네아 아가씨를 볼지도 몰라요(2-808).”--- 『마지막 장면』
앞에서 저는 『돈키호테』에는 제국주의적인 요소도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서양의 고전이란 모두 비판적으로 재조명될 필요가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고전이 지니는 보편적 가치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돈키호테는 특권을 지닌 유한계급이나 패거리 귀족에 속한 자가 아니라 자유로운 정신의 고독한 귀족이에요. 그는 타산적인 이성이 아니라 조건 없는 순수의지로, 개인적 이익이 아니라 사회적 공익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끝없이 자신을 회의하는 인간이라는 보편적인 인간상을 보여주지요. 그러므로 『돈키호테』를 읽을 때는 작품 속에 드러난 제국주의적인 요소를 솔직히 비판하면서, 인간의 자유라는 보편적 주제를 솔직히 인정하는 자유로운 겹눈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를 통해 그런 자유로운 겹눈으로 읽을 수 있는 다양성, 복합성, 종합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셰익스피어보다 위대한 작가입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에 비하면 세르반테스는 우리나라에서 형편없이 무시되고 있어요. 영어와 스페인어의 차이 탓일까요? 영국과 스페인의 국력 차이 탓일까요? 그래서인지 스페인은 자주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가령 스페인을 태양과 투우의 나라라고 여기면서, 스페인의 정신을 격정적이고 비이성적인 광적 환상으로 보고 그 대표적인 예로 돈키호테를 꼽는 경향이 있지요. 하지만 저는 『돈키호테』를 읽을 때마다 그러한 격정적인 비이성과 동시에 냉정한 이성으로 직시한 현실을 함께 읽게 됩니다. 『돈키호테』나 다른 스페인 작품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의 작품을 읽든지 간에 그런 겹눈의 시각을 갖춰야 하지 않을까요?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