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3 : 제주도 사투리는 다 어디로 갔을까. 나이 든 분들과 대화를 나눠봐도 억양과 어미에 흔적이 조금 남아 있을 뿐, 알아듣기 어렵다는 현란한 사투리는 좀처럼 들을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시장에 들어서자 그들이 그동안 날 속여왔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내 앞에선 짐짓 시치미를 뗐지만, 자기들끼리 이런 곳에 모여서 실컷 사투리 라이프를 즐기고 있었던 것이었다.
P.24 : 사는 곳을 낯설게 보는 걸 조금이나마 배운 건, 어느 긴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이었던 것 같다. 목적지에 가기 위해 빨리 지나치면 그뿐이었던 집 앞 이면도로가 제법 근사해 보였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골목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물론 그렇게 배운 일상에 대한 새로운 감각은, 여행지에서 사 온 군것질거리보다 더 빨리 사라져버리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P.86 : “와아, 돌하루방!”
조수석에 앉은 S양이 창밖을 보며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뒷자리 B군의 맞장구가 어정쩡하게 느껴진 건 내 기분 탓이었을 것이다. 저건 진짜가 아니란다, 석재상에서 깎아다 내놓은 거야, 그리고 돌하‘루’방이 아니라 돌하‘르’방이란다, 라고 굳이 흥을 깰 필요가 있겠는가 싶어 잠자코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제주도 하면 누구라도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가 돌하르방이었다는 사실과, 너무 흔하고 낡은 표현이라 이젠 웬만해선 돌하르방으로 제주도를 이미지화하는 일은 드물다는 사실과, 때문에 요즘엔 아무도 돌하르방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사실과, 그 모든 걸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한꺼번에 깨달았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