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경북 청도 땅, 은행나무가 아름다운 절 적천사가 건너다보이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늘 두 줄기 강물을 곁에 두고 살았다. 징검다리가 놓여 있는 마을 앞 강물과 이야기 대장이었던 동네 할머니와 그런 할머니 곁에 모여들던 또 다른 동네 할머니들이 끝없이 흘려보내던 이야기의 강물. 초등학교 2학년 때 경남 밀양의 강변 마을로 옮겨와 상동초등학교와 상동중학교를 졸업하고, 이어 서울에서 철도고등학교를 3년간 다녔다. 대구기관차사무소 승무원으로 아주 잠깐 근무하다가 사직했다. 바로 입대하여 산정호수 들머리 공병부대에서 눈만 떴다 하면 ‘보로꼬’ 쌓고 ‘공구리’ 치면서 31개월을 버텨냈다. 그 후 경남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거제, 김해, 밀양 등지에서 국어 교사로 근무했다. 전교조 운동 말석에 끼어 잠시 학교 바깥으로 쫓겨나기도 했지만, 어쨌든 중학교 아이들과 글을 읽고 쓰고 시를 외우며 27년간 국어교사로 살았다. 지금은 퇴직하여 잠시 먼 남쪽 바닷가 마을에 머물고 있다. ‘불편하게 살아야 편하게 살 수 있다’가 생활신조다. 자동차 운전도 해 본 적이 없고, 스마트폰도 다룰 줄 모르고, 술, 담배도 안 하고, 밤나들이도 즐기지 않아 남들은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하지만, 본인은 무덤덤하게 잘 지낸다. 곁에 많은 물건을 쌓아두지 않으려고 애쓰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요즘은 늘그막에 어쩌면 남에게 폐를 좀 끼칠 수도 있겠다 싶어 여러 가지 연습을 해보는 중이다.
그랬습니다. 긴긴 겨울방학도 지나가고, 짧아서 달콤한 봄방학마저 다 까먹고 말았습니다. 나는 주뼛거리며 마침내 4학년 교실을 찾아갔습니다. 본관 3학년 교실을 올려다보니 조금 맘이 짠했지만, 복도에 내걸린 ‘4-1’이란 팻말을 쳐다보니 어깨가 으쓱해지며 기분이 은근히 좋아지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4학년은 이제 저학년이 아니라 고학년이었으니까요. 고학년, 이 얼마나 듣기 좋은 이름입니까? --- p.11
너무나 맑은 밤하늘에 너무나 많은 별들이 또록또록 눈을 뜨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별이란 별은 모조리 윗도곡의 하늘로 몰려온 것 같았습니다. 정말 혼자 보기 아까운 찬란한 별밭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우르르 우리를 데리고 그 멀고 높은 동네 윗도곡까지 갔다 온 진구였지만, 그 뒤로 하는 행동을 가만히 보면 꼭 금옥이와 사귀는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금세 진구의 입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또 다른 여학생 이름이 튀어나오곤 했으니까요. --- p.146
우리는 높다란 철둑을 구르듯 달려 내려와 동네 안길에 붙어 있는 어느 집 문짝 없는 헛간으로 뛰어듭니다. 그런데 또 이상합니다. 잠시 전까지만 해도 분명 우리 동네 친구 하나가 내 옆에 붙어 있었는데, 이제는 헛간 안에 덜렁 나 혼자뿐입니다. 어딘가에 알아서 숨었겠지, 에라 모르겠다, 나는 바닥에 흩어져 있는 헌 가마니짝 밑을 파고 들어가 몸을 숨깁니다. 잠시 뒤, 왁자지껄해지는 헛간 앞 골목길. 가마니 틈으로 가만히 엿보니 아 글쎄, 언제 뛰어내려 왔는지 시커먼 옷을 입은 기관사가 큰 소리로 외치면서 나를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