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부산외국어대학교 한국어문학부에서 근무한 지 30년이 넘었다. 1984년 젊은 시절 대학에 들어와서 우암골을 오르내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세월은 참으로 빠르게 흘러 어느덧 이순의 나이를 넘기고 말았다. 학과의 이름도 국어국문학과에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 전공을 넣은 한국어문학부로 바뀌었고, 내년부터는 다문화교육전공이 신설되면서 한국어문화학부로 이름이 또 바뀌게 된다. 국어국문학의 영역이 점차 축소되기에 개인적으로 씁쓸한 일이지만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는 것 같다.
올해 초 우리 대학도 우암동에서 금정산 자락의 남산동으로 옮겼다. 초창기부터 추진해 온 숙원 사업이 마침내 해결되어 참으로 기쁘다. 금정산의 풍광과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건물과 연구실은 나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주고 있다.
이제 삶의 한 굽이를 지나게 되었다. 일찍이 두보는 「곡강(曲江)」이란 시에서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고 하였다. 인생에서 칠십은 예로부터 드문 것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물론 두보가 인생을 즐기며 살자는 뜻으로 인생에 대해 달관한 모습을 보여준 시이다. 요즈음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수명이 길어져서 큰 병이 없으면 80세까지는 무난하다지만, 필자가 그렇게 오래 살지는 모르겠다. 60세가 지나자 삶이 다소 쓸쓸해지고 뭔가 허전한 마음이 자꾸 든다. 학문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의욕이 줄어들고 삶의 무의미함을 많이 느낀다. 마음의 수양이 부족한 때문인지 모르겠다. 차츰 퇴임 시기가 다가오니 나름으로 노년의 삶에 대한 준비도 해야겠고, 새로운 출발을 위한 무언가도 해야겠다.
그동안 단행본을 출간하고 남아 있던 묵은 원고들을 정리하면서 내 학문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베일을 벗는 듯하여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동안 쓸데없는 일들에 매달리어 학자의 본연인 학문 연구를 소홀히 한 것에 자책감마저 들었다. 그럼에도 지난 시절 내 학문의 흔적들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에 용기를 내어 이 책을 펴내게 되었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제1부는 개화기(근대 계몽기) 소설과 문학론에 관한 논문이며, 제2부는 근·현대 소설 중 김동리, 채만식의 소설과 노년 소설에 관한 논문이다. 제3부는 근대 소설의 교육에 관한 논문인데, 이 논문들은 주로 우리 대학의 교육대학원 평가를 위해 쓴 것들이다. 원래는 제4부를 넣어 지금까지 쓴 평론들도 정리하고 싶었는데, 책의 체재상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에 수록된 논문들은 이른 시기에 쓴 것도 있고, 근래에 쓴 것들도 있다. 그래서 치기 어린 설익은 논문들도 있고, 필요에 따라 억지로 쓴 논문들도 있다. 최근에 쓴 논문들은 싣지 않았다. 필자가 15년 가까이 관심을 기울인 이주홍 문학에 관한 몇몇 논문들과, 최근 새롭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외국어로서의 한국 문학 교육에 관한 논문들은 제외하였다.
퇴임 전까지는 새로운 연구 영역보다는 이 두 영역에 매진하기로 다짐해 본다. 이주홍에 관해서는 그의 일제 말기 문학을 정리하고 싶고, 외국어로서의 한국 문학 교육에 대해서는 강의할 만한 교재라도 한 권 펴내고 싶다. 특히 후자를 염두에 두는 건, 우리 대학의 학부와 대학원에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 전공이 개설되어 있는데 한국 문학 교육론을 위한 마땅한 교재가 없어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자리를 빌려, 오랜 기간 동안 함께 지내 온 우리 학과의 김상돈, 박경수, 우형식, 최경환, 송향근, 권오경, 정명숙, 배도용, 조위수 교수님들께 감사드린다. 내가 큰 과오 없이 무탈하게 지낸 것은 우리 학과의 교수님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김상돈, 박경수 교수와는 학과의 초창기부터 어려울 때나 즐거울 때나, 형과 아우로, 친구로 함께 생활해 왔기에 각별한 정을 느끼게 된다. 그들이 항상 건강하고 밝은 미소를 지니기를 기원한다.
우리 학과의 동료 교수들은 여느 학과들과 달리, 교수들이 지닌 개성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학과를 위해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며 잘 화합해왔다. 앞으로도 이런 좋은 학과 분위기가 계속 이어지고, 모두 건강하고 학문적으로 큰 성취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그리고, 작년에 함께 갑(甲)을 맞은 강릉원주대학교의 최병우, 아주대학교의 송현호, 중국 연변대학교의 김호웅 교수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나이 들어 학회에서 만나 인간적 정과 함께 학문적 담론을 나누었다. 앞으로도 계속 만나 함께 좋은 이야기를 주고받고 싶다. 또한 나의 삶의 한 축인 한풀난회 회원들, 외대차회 회원들, 문화를 사랑하는 모임의 회원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그들은 가정생활과 대학 생활을 제외한 영역에서 또 다른 삶의 활력과 즐거움을 나에게 안겨주었다.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도 좋은 동반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오랜 원고들을 정리해준 대학원의 손지혜 양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아울러 출판계의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이 책을 출간해 주시는 한봉숙 사장님과 원고를 깔끔하게 편집해 주신 김선도 대리에게도 고마움을 표한다.
끝으로, 언제나 내 곁에서 삶의 힘이 되어 준 아내 다온(茶?) 김순자와 은결, 은솔이에게 크나큰 감사와 진실한 사랑의 마음을 전한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