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에 북한의 조선예술영화촬영소에서 제작하기 시작한 다부작 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의 한 시리즈인 ‘카프 작가 편’은 혁명시인 이찬을 주인공으로 하여 동경 카프 지부의 문인들이 대거 등장, 그들의 삶과 사랑과 문학과 투쟁을 극적으로 그리고 있는 대하드라마이다. 배경은 1930년대 동경과 서울, 그리고 6·25전쟁 중의 서울과 평양인데 여기 등장하는 문인들은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지어 ‘혁명시인’이라는 칭호를 받은 이찬 외에 조명희, 이기영, 최서해, 강경애, 송영, 박세영, 박팔양 등 카프 문인들과 춘원, 월파, 그리고 홍난파 등이 등장하고 있다. 최서해, 김소월, 김우진과 윤심덕의 죽음이 배경으로 비중 있게 처리되고 이상화가 자주 언급되며, 한설야, 임화, 김동인도 잠깐씩 등장한다. 이들 중 이기영, 한설야, 송영 등은 특히 카프 해산에 동조하지 않았던 이른바 카프 비해소파의 중심인물로 ‘이념적 강경파’에 속한다고 볼 수 있고, 동경파는 카프 내부에서도 급진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었던 만큼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카프의 급진적 이념적 강경파들이 주류를 이룬다고 할 수 있으며, 그 기관지인 『문학 건설』이나 『예술운동』 발간과 카프 해체 등이 중요 모티브로 그려져 있다.
그런데 이야기 전개의 큰 줄기는 남녀 간의 사랑을 토대로 하여 전개하고 있으니 연정시를 즐겨 쓴 이찬과 김경란의 사랑, 최서해와 ?보석반지?(『시대일보』, 1925. 7)의 여성인 혜경(숙향)과의 지순한 애정 등 사랑에 관한 내용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사랑을 통해 조국과 민족으로 더 가까이 가게 되는 설정으로, 문학작품에서 그려지는 사랑이 예외 없이 혁명적 사랑이긴 하지만 그만큼 대중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문학적 장치로 작용하면서, 빈번한 시의 삽입, 낭송과 함께 일단 인간적이고 유화적인 인상을 주는 데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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