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야기들은 모두 신화다. 그렇다고 해서 전부 완전히 허구라는 뜻은 아니다. 신화는 거짓말이 아니라 인식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강력한 이야기다. 종교개혁에 관한 모든 신화가 허구라고 믿기보다는 모두 진실이라고 믿는 편이 더 안전할 것이다. 종교개혁에 대한 철저히 탈신화한 서술을 내놓겠다는 것은 달성할 수 있지도 않거니와 바람직하지도 않은 목표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 작은 책은(…) 종교개혁이 어떤 종류의 현상이었는지 설명하는 한편 종교개혁이 삶의 종교, 정치, 사회, 문화 영역에 두루 끼친 영향과 근대 세계에 남긴 유산의 성격을 평가하려 시도할 것이다. --- p.12∼13
그리고 종교개혁이 ‘불가피했다’는 가정은 중세 후기 가톨릭교의 유연성과 정신적 활력을 강조하는 새로운 연구를 고려하면 적어도 논박이 가능해 보인다. 가장 중요한 점은, 한때 16세기 종교개혁의 시작이자 끝으로 보였던 것, 즉 독일에서 전개된 루터의 운동이 실은 훨씬 더 큰 전체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는 주장을 이제 학계에서 두루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 p.15∼16
학자들은 각자의 문화적 편견을 부지불식간에 객관화하여 잉글랜드에서 종교개혁의 승리는 불가피했고, 1550년대에 반전을 꾀한 메리 튜더의 시도는 역사의 조류를 거슬러 헤엄치려는, 실패하기 마련인 시도였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메리의 치세에 장기적으로 가톨릭교를 되살릴 토대가 놓였다는 주장, 잉글랜드가 훗날 신교 국가가 된 것은 잉글랜드인의 종교적 DNA가 아니라 여왕의 때 이른 죽음 때문이었다는 주장이 널리 인정받고 있다. --- p.105
종교적 소수파를 마지못해 공식 용인한 것이 종교 분쟁의 혼란스럽고 실용적이고 예기치 못한 결과였다 할지라도, 종교개혁은 더 직접적이고 자의식적인 방식으로 정치적 권위의 기존 위상에 도전하기도 했다. 상이한 종교적 신념을 가진 신민들이 통치자에게 항거한 것은 그 자체로 보면 정치적 사실이었지만, 내심 그들은 자신들이 취하는 조치가 법적,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느끼기를 원했다. 그 결과 또하나의 중대한 국면이 전개되었다. --- p.119
일찍이 그리스도가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너희 곁에 있다”라고 경고하긴 했지만, 종교개혁기는 빈자들과 나머지 공동체의 관계를 재규정하고 그들을 구제할 실질적 해결책을 고안하는 문제에서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개념으로서의 가난과 구원 드라마의 참여자로서의 가난한 사람들은 중세 가톨릭 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가난은 성스러운 것이었고, 사도들의 유산이었으며, 가난한 사람들은 비록 이번 생에는 고통받을지언정 다음 생에는 그리스도의 총애와 보상을 받을 터였다. --- p.132
종교개혁의 가장 중요한 결과들은 실은 역설의 연속이라고 말할 수 있다.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과 가톨릭 종교개혁은 사회적, 종교적 균일성의 창출을 지향했으나 목표와 달리 다원주의의 형태들을 산출했으며, 그 형태들은 뒤이어 세계의 가장 먼 지역들에 수출되어 모방되었다. 종교개혁은 국가의 정치적, 정신적 권력을 강화하겠노라 약속했지만, 국가의 권위에 도전할 수 있는 문법과 어휘를 낳아놓았다. 종교개혁은 이단과 그릇된 믿음을 뿌리 뽑고자 했지만, 예전에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정도까지 주춤주춤 오류를 용인했다. 종교개혁은 사회 전체를 신성화하겠다고 나섰지만, 장기적으로 사회가 세속화될 여건을 조성했다.
--- p.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