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그렇군 옛날 궁중에선 궁녀들에게
목욕도 못하게 했다지,
빨가벗으면 성욕이 일어난다고
평생 옷을 못 벗게 했다지
빨가벗고 목욕하는 것은
왕이 예뻐하는 여자들의 특권이었다지
그래그래, 빨가벗으면 확실히 본능이 꿈틀거려
부자연스럽지 않아, 신비스럽게 자유로워
내 빈약한 육체조차도 대견스러워 보여,
날아갈 것 같아
---「빨가벗기」중에서
동양도 싫고 서양도 싫다.
한국도 싫고 미국도 싫다.
동서양을 한데 섞어 잡탕을 만드는 게
훨씬 더 낫다. 훨씬 더
아름답다. 훨씬 더
평화롭다.
---「민족주의는 가라」중에서
예술의 찌꺼기여, 쾅
하느님의 찌꺼기여, 쾅
역사의 찌꺼기여, 쾅
민중을 짓밟는 부르주아의 찌꺼기여, 쾅
자유민주주의의 찌꺼기여, 쾅
‘악의 꽃’의 찌꺼기여, 쾅
백남준 사기극의 찌꺼기여, 쾅
내 생명의 가쁜 호흡이여, 쾅
사랑하는 사랑하는 나의 피아노여, 쾅
정말 좆 같은, 씹 같은
이제야 속 시원히 까부숴진 피아노여, 쾅
---「나의 애인이 한 말」중에서
빨가벗고 몸 하나로 뭉치자
팬티도 브래지어도 필요 없다
겉옷은 더욱더 필요 없다
조상이 누군지도 모르는
제기랄 놈의 성씨(姓氏)
우라질 놈의 가문, 학벌, 직업
벌써 좆돼버린 너와 나의 과거
다 필요 없다 사랑 하나면
다 필요 없다 섹스 하나면
이 밤, 그대여 빨가벗고 뛰어서 오라
---「빨가벗고 몸 하나로 뭉치자」중에서
나는 황진이어요
나는 오직 야한 여자였어요
시도 지을 줄 몰랐고 춤도 못 추었어요
물론 악기도 다루지 못했구요
그런데 후세(後世) 선비들이 나를
무슨 예술의 천재인 것처럼 만들어 놓더군요
아마도 지네들이 나의 섹스 기교에
넘어갔던 사실이 부끄러웠던가 봐요
---「황진이」중에서
철학, 인생, 종교가 어쩌구저쩌구
세계의 운명이 자기 운명인 양 걱정하는 체 주절주절
커피는 초이스 심포니는 카라얀
나는 뽀뽀하고 싶어 죽겠는데, 오 그녀는 토론만 하자고 하네
가자, 장미여관으로!
블루스도 싫어 디스코는 더욱 싫어
난 네 발냄새를 맡고 싶어, 그 고린내에 취하고 싶어
네 치렁치렁 긴 머리를 빗질해 주고도 싶어
네 뾰족한 손톱마다 색색 가지 매니큐어를 발라 주고도 싶어
가자, 장미여관으로!
---「가자 장미여관으로」중에서
노예들을 방석 대신으로 깔고 앉는
옛 모로코의 왕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돌아온 날 밤
나는 잠을 못 잤다 노예들의 불쌍한 모습에 동정이 가다가도
사람을 깔고 앉는다는 야릇한 쾌감으로 나는 흥분이 되었다
내겐 유일한 자유, 징그러운 자유인
죽음 같은 성욕이 나를 짖눌렀다.
노예들이 겪어야 하는 원인 모를 고통에 분노하는 척 해보다가도
은근히 왕이 되고 싶어하는 나 자신에게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역시 내 눈 앞에는 왕의 화려한 하렘과
교태 부리는 요염한 시녀들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왜 나는 순수한 민주주의에 몰두하지 못할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