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도시정책의 성공사례로 불렸던 일들이 실패작으로 판명 난 것은 뉴타운만이 아니다. 인천 구시가지 재개발사업의 대명사 ‘루원시티’는 보상금만 수조 원 투입한 채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에 놓였다. 금방이라도 대박이 날 것처럼 화려한 조감도가 돌아다닌 용산역세권 개발도 비슷한 상황이다. 수도권의 대규모 택지개발사업들도 미분양에 몸살을 앓고 있다. 연예인들을 동원해 대대적인 광고를 펼쳤던 대형쇼핑몰 가든 파이브도 본말이 전도된 실패작이다.
이런 사태들은 그저 부동산 경기가 급락했기 때문일까?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세계 경제 침체만 아니었다면 지금도 성공한 모델이 될 수 있었던 일인가? 만약 그렇지 않고 이미 도시성장의 토대가 바뀌었고, 도시발전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뀐 것인데 모르고 있었던 것을 아닐까? 이 책의 문제의식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불과 1~2년 전까지만 해도 전국적으로 100층 이상 초초고층이 무려 12개가 지어질 참이었다. 만약 다 지어진다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초초고층 건물을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가 된다. 50층 이상 주거용 초고층 건물(예: 타워팰리스)로 치면,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 4위권에 들어와 있다. 지난 20여 년간 우리나라 건축물의 높이는 평균 두 배가 되었다(조명래, 2009b). 부동산 붐과 함께 건물은 하늘로 끝없이 치솟았던 것이다. 길게는 지난 20여 년간, 짧게는 2003년 이래 지속된 경기호황 속에서 초고층을 넘어 초초고층 짓기 경쟁은 전국적으로 펼쳐졌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물려 경기불황이 들이닥치면서 대부분의 초고층빌딩 건축계획은 표류하거나 무산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롯데그룹만 국가 안보를 희생시켜가면서 잠실에 제2롯데월드(123층) 건립을 추진하고 있을 정도다.
앞으로는 환경적 지속가능성, 민주적 의사결정, 사회문화적 가치, 계층 통합적 가치를 반영함으로써 개발사업의 ‘다목적’ 통합성을 높여야 한다. 이러한 통합적 발전전략을 통해 더 견고하고, 활력이 있으면서 더 평등주의적인 도시(egalitarian city)로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전략은 투자 관점에서는 각 도시가 소유하고 있는 다양한 자원과 자산에 토대를 두고 투자를 유도하는 중규모 차원의 도시정책이다. 그리고 관계 측면에서는 외부와의 연계에만 초점을 두고 외부로만 출구를 여는 것이 아니라, 도시 내부에서 서로 밀접하게 연관을 맺고 있는 다양한 자원집합을 바탕으로 도시의 상대적 자율성을 굳건히 하는 전략을 말
지금까지의 도시개발사업은 토지소유자, 시공사, 개발업자, 지자체장, 정치인 등 발언권과 영향력이 있는 주체들이 합리적인 선택을 하면 그 결과도 최선일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추진되어왔다. 그러나 제도적으로 보장된 참여자들의 합리적 선택의 총합은 사회적 공익에 기여하지 못하고 많은 문제점을 낳아왔다. 특히 세입자나 임차상인, 기타 도시 내에서 활동하는 주민들은 시장에서 또는 제도적으로 발언권을 갖지 못한 채 도시개발 과정에서 배제되어왔다. 그 결과 대다수의 세입자, 임차상인들, 도시의 거주자들은 종전보다 더 열악한 주거생활, 영업활동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았다. 도시개발이 도시의 발전을 위한 개혁의 과정이라면 저성장시대의 도시개발은 더 많은 주체들의 참여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도시의 지속가능하고 창의적인 미래를 함께 계획하고 학습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난 50년의 개발중독증에는 누구를 비난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경제가 압축성장하는 과정에서 그만한 공간적 토대 역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자본과 기술이 부족한 상태에서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우리 특유의 경쟁력, 즉 저렴한 노동력이 충분히 공급되어야 했다. 서울과 공업도시로 몰려든 농촌인구야말로 우리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던 셈이다. 이들을 위해 서울에서만 30년간 매일 200채의 집이 추가로 필요했다. 또한 집뿐만 아니라, 주거단지 형성에 필요한 길, 상수도, 하수도도 따라야 했다. 나아가 종전 농업사회에 적합하도록 구성된 국토공간도 새로운 산업과 도시적 용도에 맞춰 고치지 않을 수 없었다. 산업생산에 소요되는 물동량을 위해서는 도로, 철도 등 근대적 물류 체계도 필요했다. 일제가 구축해 놓은 산업기반으로는 새로운 압축성장 과정을 뒷받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