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섶 시인의 작품들에는 바람처럼 움직이는 비유들로 가득하다. 시인의 비유들은 무게나 크기나 생김새나 인상이나 기분이나 방향 등을 규정할 수 없는 바람처럼 무한하게 변주해 가을 들판에서 책장까지, 감나무에서 양로원까지, 한 켤레의 신발에서 장수하늘소까지, 줄기에서 자라나는 오이에서 공중그네 곡예단까지, 파도에서 목수까지, 하늘에서 눈밭까지 등에 이르고 있다. 그 속에서 구름이 땅으로 내려오고, 눈물이 깊고 동그란 집을 짓고, 나사못이 젖을 빨고 싶어 오물거리고, 느티나무가 그리움을 달래며 장기를 두고, 시래기가 그늘 농사를 짓고, 가지에 매달린 홍시가 자식을 기다리고, 가로수가 새벽마다 잔기침을 하고, 장화가 댓돌 위에서 두 귀를 세워 바람 소리를 듣고, 바람이 풀과 꽃과 나무들에게 이메일을 보낸다. 그리하여 시인의 비유들은 역동적이면서도 뿌리가 든든하고 눈길이 깊고 손길이 따스하다. 꼽추를 산(山)사람이라고 여기면서 “평생 정복하지 못할 산밑에서 오래도록”(「꼽추」) 울고, 손을 봐야 할 피아노 앞에서 “가슴이 아프다며 앓는 소리를”(「피아노」) 듣고, 절대강자가 없는 무림의 세계에서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는 고드름을 바라보며 “오늘도 벼랑 끝에서 죽어나가는 사람들”(「고드름」)을 떠올린다. 늙고 외롭고 슬프고 아프고 가시가 많은 존재들을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시인의 비유들은 이 세계의 본질이며 이치며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인간 가치를 자각시키고 있다. 맹문재(시인,안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