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경기중 · 고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했고 대학 재학 중에 행정고등 고시 14회에 합격하여 과학기술부 등에서 28년 동안 근무했다. 미국 디트로이트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고대 문헌과 사료를 중심으로 철저한 고증을 추구하는 것이 역사 저술의 기본자세라고 생각하며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식민사관’에 젖어 있는 주류 사학계에 뼈아픈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조선총독부에서 한국을 영구 지배하기 위해 만든 식민사관을 바로잡는 일에 남은 인생을 걸고 있으며 『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 고대사』,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등의 책을 썼다.
『화랑세기』를 보면 화랑 조직이 단순히 무사를 기르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전인적인 인격을 갖추게 하여 국가를 이끌어갈 인재를 양성하는 핵심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 서문에, “옛날에 화랑은 신을 받드는 일을 주로 했으나, 귀족의 자제들이 줄지어 무리에 든 이후 화랑은 도의를 서로 힘썼다.”고 했다. 말하자면 화랑은 신라의 미래를 짊어진 젊고 유능한 엘리트 배출의 산실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신라의 역사를 보면 이름 높은 재상과 충신, 장군들 가운데는 화랑 출신이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신라 말의 대학자 최치원은 화랑인 난랑의 비석문에서, 화랑들이 받드는 우리의 신선도(神仙道)를 풍류(風流)라고도 하는데 유교·불교·도교의 세 가르침을 내포한 오묘한 도라고 했다. 또 단재 신채호 선생은 화랑의 국풍이 사라지고 유교적 사상이 만연하게 된 것을 탄식하여, 국풍의 부활이 민족의 독립과 발전을 위하여 절실함을 강조하였다.